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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Dec 28. 2020

#7 생활밀착형 자기주도학습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놀라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가르쳐준 적 없는 숫자나 글자를 아이가 읽는다든지 혹은 어디서 주워들은 외국어를 정확하다 못해 원어민 수준의 발음으로 말한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 역시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두 돌이 채 되기 전에 ‘뗐다 붙였다 하는 찍찍이 글자판’으로 자신의 이름을 조합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냅다 카메라를 켜고 그 영상을 찍었더랬습니다. 아이의 놀랄만한 업적(?)을 아빠에게도 알려야 했으니까요. 아이는 자신의 어려운 이름의 초성, 중성, 종성 모두 정확히 붙였는데 그 모습을 본 저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 건, 바로 ‘우리 아이가 지능이 높은가?’ 어쩌면 ‘특별한 재능이 있나?’ 였습니다. 미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콤럼버스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아이의 재능을 발견한 저는 어떻게 하면 아이의 재능을 더 살려줄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지난 후 번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내가 방금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지?’하고 말이죠. 


  저는 아이가 다른 또래에 비해 조금 빨리 한글을 깨치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아이의 재능을 ‘언어’라는 영역으로 국한시키려는 오류를 범할 뻔했던 거였습니다. 아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축소하려 했던 거죠. 하마터면 아이를 제가 임의로 정한 틀 안에 가둘 뻔한 거였습니다. 만약 그때 저의 생각을 실행해 옮겼다면 어땠을까요? 


  저희 아이는 책 근처에도 가지 않고, 책과 책상을 거부하며, 학습이라는 말에 치를 떠는 아이로 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이를 제 생각의 방에 가둔 채, 저는 간수로 아이는 죄수로 저의 기대와 계획에 맞춰 아이를 다그쳤을지도 모릅니다. “니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아? 너는 두 돌이 되기도 전에 한글을 읽고 붙였던 아이라고!”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아이는 그 감옥 같은 곳에서 자발성을 상실한 채 서서히 시들어갔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담 제 아이는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읽고 붙일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건 순전히 자발적인 호기심에 의해서였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한글을 배울 때 어려운 단어, 사용하지 않는 단어, 책의 단어를 습득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장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가족의 이름, 특히 엄마 아빠의 이름이나 자신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글자로 써주거나 알려주어서 아이가 먼저 습득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는 그저 ‘궁금해하는 것’에서 시작한 것뿐입니다. 그리곤 주변 어른들에게 연신 ‘묻는 것’을 한 거고요. 마침내는 글자를 이해하고 붙이는(아직 쓸 줄은 모르니) 것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 것입니다. 아이의 행동력의 과정, 이해되시나요?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기심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이는 생판 모르는 것에 흥미를 갖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죠. 마치 마인드맵을 하듯이 말입니다. 자신이 즐거웠던 경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행동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동기는 더욱 적극적인 자발성을 동원해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기대대로 그 경험이 꼭 교육적이진 않습니다. 주로 생활적인 부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부모의 목소리라든지, 어린이집에서 준 이름표라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뽀로로를 보기 위한 수단의 리모컨의 숫자라든지. 이런 생활적인 부분의 소소한 즐거움에서부터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흥미나 동기는 결코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하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물론 나중에 흥미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서 어떤 결과물을 낼 때까지의 끈기는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엉덩이를 떼지 않는 힘에 있습니다만. 지금 아이들에게 이런 고난이도부터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겨우 축구공을 만져본 아이에게 축구선수급의 기술을 반복적으로 가르쳐준다고 손흥민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손흥민 역시도 공차기가 즐거웠던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거. 그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자기 주도성이라는 건, 더더군다나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건 자발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주도 학습 학원에 간들 자기주도가 되겠습니까? 그건 부모의 기대로 바램 일 뿐입니다. 말 그대로, 처음 말을 배울 때, 말 배우기 학원에 보내는게 아니라는 걸,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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