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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Jul 06. 2022

무심하게 트랜드를 넘어서는 법

오리지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부캐 활동의 시너지


동네서점에서 유튜브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가, 미술학원 선생님, 서재관리자, 실리콘 몰드 제작자 등등, 동네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들이 모여 소소하게 각자의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모임 이름은 '혼자 하면 안 할 것 같아 만든 유튜브 모임' 입니다.


그 모임에서 유튜브에 관한 책을 매달 한권씩 읽고 있는데요.. 이미 네권째입니다. 책의 내용들은, 알고리즘에 대한 매우 자세한 분석부터 필자의 개인적인 역사에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결국 공통된 메세지가 하나 있어요.


유튜브 채널을 오래도록 잘 운영하면서 성장하려면, 본인이 누구인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일관성있게, 꾸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요즘 n잡, 부캐가 유행입니다. 보시다시피 저 스스로도 그러고 있습니다. 가끔 콘텐츠 리뷰나 일상에서 겪은 일에 대해 글도 쓰고, 유튜브를 핑계삼아 억지로라도 그림을 그리고(제 유튜브 영상들의 내용은 그림을 그리며 떠드는 거거든요.), 간간히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사진, 그림 같은 것들은 비교적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좋아요. 본캐인 저는 글을 쓰는데요, 글만 써서 충분히 먹고살만큼 자릴 잡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부캐로 아이덴티티를 분리해놓고 각각의 영역에서 소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의 본캐가 주업무에서 성과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목공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목공은 거기에 더해서, 손으로 감촉을 느껴가면서 작업과정을 즐길 수 있고, 완성된 것을 실생활에 사용할수도 있고 직접 손에 쥘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희열을 준 것 같아요.


아무튼, 이런 부캐들의 창작활동이, 어쩌면 하루종일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뾰족한 성과는 한 줄도 없을 수 있는 지지부진한 상태의 글감에서 잠시 한눈 팔게 해주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글을 쓸 때 느끼는 막막함을 좀 상쇄시켜주는 거 같아요.



본캐의 문어발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본캐와 부캐로 나뉜 그런 활동 말고, 본캐가 하는 일에서도 자꾸 곁다리가 늘어나거나 한눈팔게 될 때가 있자나요? 이것저것 다 섭렵하거나 소화하고 버무려서 집대성하고 싶다거나, 여러 감각과 취향이 이끄는 각기 다른 매력과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다뤄보고 싶다거나…


그럴 경우, 내 바운더리가 확장되는 거니까 결국 그건 좋은걸까? 그것은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얕고 넓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해변은 내가 바란 신대륙일까? 깊고 좁은 심연은 나를 고립시킬 뿐일까? 아니면, 과연 그 두 길 밖에 없는게 맞나?


작법을 배울 때 가장 처음 배운 게 소거법이라는 개념인데요, 하나의 주제에 복무하는 요소 이외의 모든 것들은, 그 디테일이 아무리 좋고 그럴듯하더라도 우선 지워내는 걸 말합니다. 소거법이 필요한 이유는 당연히 테마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겠죠.


얼마 전 작가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이 어느때보다 콘텐츠를 만들기 좋은 상황이라는 얘길 하면서, 어디서건 괜찮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애타게 찾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는 이십년 전에도 업계 선배도 똑같이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인기 많은 ip를 사서 각색을 하는 것이 그때도 여전했지만, 동시에 모두들 오리지널을 원했죠.


작가들이 모였기에 관심은 모두 콘텐츠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무엇이 트랜드에 부합하느냐. 무엇이 좋은 이야기이냐. 좋은 이야기는 안목있는 이들에겐 언제나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건 별개의 문제다. 등등의 의견을 내놓다가, 그렇게 작가들이 모인 것을 빌미로 새로이 작가 프로덕션을 만들면 어떠냐는 얘기에서, 그렇게 된다면 그 곳은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곳일지, 창립작을 내놓는다면 뭐가 될지 아이디어 회의로까지 이야기가 번졌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자기는 평생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거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다보면 이해가 가기도 해요. 그의 영화에는 그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습니다. 주제나 소재, 스타일이나 표현에서도, 뭐라  짚어 말할  없는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흐름은 강처럼 점점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좋은 창작자의 작업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바다로 나아가듯 흐름을 타는 것 같기도 해요.


스콜세지가 그렇다고 평생 이탈리아 깡패 영화만 만들었냐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어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소동극을 만들기도 했고,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전기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와중에 세계 곳곳의 유실되고 훼손될 위기에 처한 고전 영화들을 복원하는 사업에 앞장서기도 했죠.  우리나라의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하녀'의 복원에도, 그가 설립한 재단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그가 어릴때신부를 꿈꿨다고도 하죠. 동시에 뉴욕의 이탈리아 이민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독한 영화광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지속하고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고유의 것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분란을 일으킨, '마블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는 사뭇 꼰대스러운 그의 발언도, 어쩌면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스콜세지 다운 당연한 소리를 내뱉은 거겠지요.   


저는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의 그림들도 떠오릅니다. 그걸 컨셉이라고 해야할지 스타일이라고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보다 더 회화에 정통한 분들이라면, 저는 그저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그 겉으로 보이는 것에서, 그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그림이 지닌 시그니쳐가 따로 떨어질 수 없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결국 우리는, 하나의 모티브를 계속 발전시키는 거 아닐까.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저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제작'이 아니라, 필요치는 않지만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만들어내는

'창작'의 영역에서는, 나 자신이, 나의 현재 상태가, 그 현재를 이루게 한 나의 과거와 선택과 앞으로에 대한 고민과 나의 관심사와 가치관과 욕망이 한데 어우러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해야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면, 그것이 '자기표현'이라는 거 겠지요. 그리고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의 트랜드나 유행 같은 건 아닐 거예요.


세상의 변화에 둔감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흐름 안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나의 흐름과 세상의 흐름이 어느 부분에서 같이 흘러가고 어느 부분에서 부딪히는지를 보아야 하겠지요.



흐르다 닿아야 할 곳

 

요즘 각본을 하나 기획개발 중인데, 신기하게도 , 제가 개인적으로 몇년 간 조사를 하면서 오랜 시간 이상하게도 관심이 가서 붙들고 있던 소재와 주제들이, 이 아이템을 놓고 다른 작가와 함께 회의를 하는 지금에야 하나로 엮이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만들 적절한 타이밍이 무르익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머릿속 한켠에서라도 계속 생각을 멈추지 않은 덕분일지도 모르죠.


제가 아는 작가는 십년 전에 모두에게 외면받던 아이템이 지금은 모두가 만들어져야하는 아이템이라고 한다는 얘길 들었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템이 듣도보도 못한 새롭디새로운 이야기인 것은 아니에요. 단지 그걸 쓴 작가를 아는 저로써는, '과연 그 답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결국 창작자가 가장 듣기 좋은 찬사는, 트랜디하다는 말 보다, '너 답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나 다운 걸 찾는 게 관건이겠죠.


작가 모임의 난상토론도 비슷하게 결론났습니다. 자기가 잘 아는 거,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영향을 준 거, 자기가 긴 시간동안 꽂혀있는 무언가. 그걸 드러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결론.


그렇게 만들어 낸 창작물을 통해, 그걸 접한 이들이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쓴 사람을 궁금해 하게 만들거나, 아님 적어도 그걸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보이면, 그리고 다음 작품이 '그 답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게 결국은 모두가 애타게 찾는 'be original' 아닐까요?


그리고, 오리지널해진다면, '트랜드 is 뭔들.'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게 다... 글쓰기 싫어 내뱉는 넋두리입니다.


글을 쓰러 가야겠습니다.

부디, 오늘 밤에 쏟아져서 멋대로 흘러가는 글자들이 꼭 나 같기를.


그럼, 다들 굿나잇 & 굿럭.




위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WqFHGmuH6Y&t=5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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