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명언이 하나 있는데요, 다들 한번씩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말인데, 사실 앤디 워홀은 이런 말을 한 적 없다면서요? 파격과 기행의 아이콘으로 워낙 유명한 앤디 워홀이다보니, 왠지 그가 했을 법하다 여겨지는 이 말도 덩달아 유명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앤디 워홀이 정말로 했다는 말 중 유명한 것으로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미래에는 그 누구라도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고보면, 정말로 그런 세상이 되지 않았나요? 틱톡커가 되든, 인스타 릴스로 히트를 치든, 아니면 트위터에서 순식간에 수천 수만번 리트윗이 되는 트윗을 남겨 반짝 뜰 수도 있구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입니다. 그냥저냥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는 관심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글로벌하게 유명세를 떨치기가 그 어느때보다 쉬워진 요즘입니다.
올해 격투계와 유튜브를 아우르는 핫 이슈가 하나 있었는데요, '로건 폴'과 '제이크 폴'이라는 형제가 벌인 일입니다. 이 두 형제는 각각 수 천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유튜버이면서, 동시에 매우 뛰어난 기량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프로 복싱 라이센스를 취득한 정식 복서이기도 합니다. 이 두 형제는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들에게 끌어모으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의 팔로워 수가 그것을 증명하지요.
그 대표적인 예로, 그 형제 중 형인 '로건 폴'은 예전에 일본의 자살숲으로 유명한 곳을 직접 찾아가 실시간 라이브를 진행하다가, 라이브 도중에 실제로 시신을 발견해서 그 장면이 그대로 방송되어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주요 시청자층이 10대로 알려진 그의 채널이라서, 이 일은 매우 큰 논란을 야기했었습니다. 아무튼 말하자면 이들 형제는 세계적인 클라쓰의 관종 유튜버 형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복싱에 심취하여 굉장히 높은 수준의 트레이닝 캠프를 꾸리더니 사뭇 진지하게 복서로서의 입지를 다져보기로 결심을 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위 말해 '콘텐츠 각' 이 아닐 수 없지요. 아니나다를까, 형인 로건 폴은 대박 콘텐츠를 향한 빌드업을 시작했습니다. 빌드업이래봤자 간단히 말해 그냥 누군가에게 어그로를 끌어 이슈를 만드는 것일텐데, 로건 폴이 누굽니까? 세계적인 클라쓰의 어그로꾼 아니겠습니까? 그가 시비를 걸어 판을 크게 키우려 했던 상대는 바로 '플로이드 메이웨더' 입니다. 그게 누구냐구요?
'플로이드 메이웨더' 는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는 복싱 선수입니다. 그의 전적은 50전 50승 무패이고, 이 기록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합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별명 중 하나가 'pretty boy'인데, 경기가 끝나면 상대의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있지만 그의 얼굴은 기스 하나 안 나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대전료를 받은 선수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경기의 대전료는 우리나라 돈으로 천오백억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리고, 그는 완전무결한 기록을 뒤로 하고 미련 없이 링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그는 돈 냄새를 맡는 능력이 귀신같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복서로 활동하던 당시에 자신의 경기에 대한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쓴 방법도, 폴 형제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고 노이즈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 별명은 바로, 그냥 'money'입니다. 덤으로, 그의 팀 이름은 'TMT(the money team)' 이예요.
그런데, 이런 메이웨더를 상대로, 프로 복싱 경기 경력이 전무한 유튜버가 말도 안되는 도전에 나선 거예요. 메이웨더가 나타나는 행사장마다 쫓아다니며 시비를 걸고 영상을 찍고, 급기야 그가 쓰고 있는 모자를 벗겨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 쓰고 도망치면서, 모자를 찾고 싶으면 복싱 경기 계약서에 사인을 하라는 둥, 어처구니 없는 도발을 한 겁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나버린 이 초현실적인 상황에 몰입했구요. 처음엔 아무도 그 경기가 성사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요. 메이웨더가 미쳤습니까? 유튜버의 장단에 왜 맞춰주겠습니까? 게다가 길거리에서 한판 뜨자는 것도 아니고, 메이웨더를 상대로 링 위에서 복싱 경기라니요.
그런데 말이죠... 결국 이들의 경기가 정말로 성사되고 맙니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메이웨더가 그야말로 시원한 쌍욕을 퍼부으며 그렇게 원한다면 정말로 링 위에서 곤죽을 만들어주겠노라 일갈하며 계약서에 사인하는 장면을 목도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가 같은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입니다.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던 관종 하나가 드디어 이제서야 임자를 만나 참교육을 당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8라운드 스페셜 매치로 진행된 그 경기에서, 메이웨더는 로건 폴을 K.O시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메이웨더가 로건 폴을 신나게 두들겨 패주긴 했습니다. 로건 폴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기 바빴구요. 하지만 로건 폴은 생각보다 복싱을 진지하게 잘 배운 듯 했고, 애초에 로건 폴이 메이웨더 보다 훨씬 체급이 큰 것 또한 메이웨더를 생각보다 힘들게 했습니다. 라운드가 지날수록 메이웨더의 표정은 굳어졌습니다. 그렇게 8라운드가 모두 끝나고, 결과는 무승부로 정리되었구요. 이쯤되면, 로건 폴이야 말로 진정한 승자 아니겠어요?
모름지기 유명해지려면 이 정도 사고는 쳐야 되는 건가 봐요. 유명인이 목표라면, 로건 폴처럼 파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일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교훈일까요? 글쎄요, 교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수백만 조회수는 절대적으로 보장받을만한 기행을 일삼으면,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것을 실행할 깡다구만 있다면, 앤디 워홀의 말마따나 단숨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는 거 말예요.
몇년 전, 뉴스룸에 출연한 이효리 씨의 인터뷰도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던 한 예능 프로그램의 여파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집의 소재가 밝혀지면서,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몰려 와 결국 거처를 옮겼다는 얘길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혀지긴 싫다."
그 말에 앵커가 이렇게 되묻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이효리 씨는 이렇게 답합니다.
"불가능해도 꿈꿀 수는 있잖아요?"
이른바 이것이 유명인들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애초에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크지 않습니다만, 만약 유명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할 것이 있겠거니 가늠만 해볼 뿐이지요.
또 다른 예로, 전성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에 조금은 이른 은퇴를 선언했던 헐리우드의 배우가 떠오릅니다. '카메론 디아즈' 라는 배우입니다.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합니다.
"나는 단 한번도 유명해지는 것을 원하거나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겸손한 양 가식을 떠는 것은 아니다.
내가 유명한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누린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유명세라는 것은, 내 직업이 가진 하나의 속성일 뿐이다.
내가 그것을 목표로 해서 쟁취해낸 것이 아니다."
이 말을 이효리 씨의 말과 함께 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유명인에게 유명세와 그에 따른 불편함과 다소간의 힘듦은 당연한 숙명이지.' 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이 정말로 '유명해지는 것'을 원했을까?
사람들에게 이름이 각인되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을 뿐, 사실 그들은 유명해지는 것 자체를 원한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노래를, 연기를, 한 종목의 스포츠에서의 성과를 이루고 싶어했던 것 뿐인데, 어쩔 수 없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유명세가 따라붙은 것 아닐까?
제가 왜 이런 얘길 하냐면, 우린 종종 이걸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유명세라는 것은 내 일의 하나의 속성일 뿐 목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닌, 아직 그리 유명하지 않은 우리같은 일반인은, 가끔씩 그냥 '잘 나가고 싶어!' 라고 생각하곤 한단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어쩌면 수단이어야 할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가끔씩 그걸 혼동할 때가 있지 않으세요? 원래는, 무언가를 수단으로 하여, 그 수단이 목표를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종종 수단 자체를 욕망해서 결국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바디프로필이 떠오릅니다. '바프'를 찍는 것이 나쁘다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디프로필을 찍는 행위 안에 수단과 목표의 개념을 집어넣어보면, 그 안에 그런 속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겁니다.
바프를 찍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의 순기능이 당연히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바프를 마지막 목표로 운동을 한다면, 프로필 촬영이 끝나는 순간 운동은 종료되는 거잖아요? 이 또한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가요? 비단 바프 뿐만이 아닐 거예요. 우린 또 다른 예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행위나 욕망이 수단이나 동기가 되어서 나의 진짜 목표를 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소의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혼동하지 않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이 나의 수단이 되어주는지, 그 수단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진짜 목표로 삼을 것이 무엇인지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겠지요.
하여, 앤디 워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진품과 복제품의 경계를 흔들어 놓는 파격적인 작업들로 미술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야말로 일약 스타가 되었었잖아요? 바로 그 '허구'와 '진짜'와 '유명세'와 밀접한 관계에 놓인 아이코닉한 예술가로 자리잡은 그가, 앞서 소개한 저 말들을 남겼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 '유명해지는 것' 정도는 누구나 언젠가 능히 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 올 거야..." 라고 마치 지금의 우리를 미리 보고 있기라도 한 듯 내뱉은 말 같지 않나요?
마치 뒤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성공한 누군가가, 짐짓 무게를 잡으며 '성공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예요.' 라고 말하면, 우린 '넌 성공했으니까 그런 소릴 한 번 해보고 싶어지는 거야. 우린 정말로 그걸 원한다고. 이제 그만 입 닫아.' 라며 반발하고 싶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앤디 워홀이 한 말도 어쩌면 그런 뜻을 세련되게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제겐 앤디 워홀이 하다 만 얘기가 멋대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게 끝이면 안 돼. 그렇게 되었을 때 네가 뭘 할지를 생각해. 그제서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무언가를. 그때까지 여전히 지니고 있던 것 말야. 그리고, 그걸 지금부터 품어. 나머지는, 널 어떻게 바꾸든, 널 어디로 데려다 놓든, 단지 수단일 뿐이야."
하지만, 전, 김칫국 드링킹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안 유명하고 조용히 살면서도, 내가 목표한 바가 원활히 이뤄지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유명'이라는 것은, 마치 계좌에 잔액이 많은 것처럼, 내가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이 도움이 될지언정 손해는 아닐 가능성이 높은 가치이다 보니, - 돈이 많은 것이 없는 것보다 대부분의 경우엔 우리를 유리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 유명하다는 것도 어쩌면 그와 마찬가지일 터라서, 그래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유명세나 매우 많은 돈이 있지 않더라도,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게 가능케 하는 삶의 목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떨 땐, 사실은 목표라 생각했던 것이 수단일 뿐일 수도 있겠지요. 혹은, 내가 목표라고 생각한 것에 도달했을 때, 그제서야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그때부터 무엇을 해야할지는 정작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지 않나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수단과 목표를 착각하는 경우 말예요. 그것이 '유명세'일수도 있고, '자산 얼마' 일수도 있고, 아님 막연하게 '성공' 이라는 단어일수도 있구요.
사실은 유명세나 이름값에 대한 굉장히 오래된 우리나라의 뻔한 속담도 하나 있군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말이, '그러니까 넌 유명해져야 한다.' 는 뜻은 아닐 겁니다. 어떤 이름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 너는 어떻게 평가받을 것이냐? 이걸 묻는 말 아닐까요?
이야길 하다보니, 제가 원하는 건 결국 이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목표로 정진하다보니, 명성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오는 것.'
그리고, 제가 존경하거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얻은 명성도, 결국은 그렇게 그들에게 쥐여진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그린 이 사람은 놀랍게도 앤디 워홀인데요, 이 양반이 너무나도 유명한 것이, 이 말을 하고 있는 제게는 별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군요. 안 닮았다고 욕을 먹을 거 같거든요.
아무튼,
굿나잇 & 굿럭.
위의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면...여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fWZ9gNkneso&t=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