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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Oct 23. 2022

바나나 하나를 30분 동안 먹다 남기면 생기는 일

우리는 도대체 왜 잠자코 가만있지를 못하는 걸까?

갓길에 서면 알아차리는 것들


제가 예전에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재활하면서 요가를 다녔었어요. 거기서 여러가지 스트레칭 방법과 요가 자세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중에 신기한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음식 명상' 이라는 것입니다. 음식물을 섭취하면서 하는 일종의 명상이에요. 


제가 다니는 요가원에서, 저는 바나나를 가지고 그 음식명상을 한 번 해보았습니다. 바나나를 엄청 천천히 거의 녹여먹으면서 바나나 생각만 하고 앉아 있어보는 겁니다. 아무튼 그게, 제가 명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첫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되게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빌 게이츠가 읽고 나서 강추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라는 책입니다. '앤디 퍼티컴' 이라는 사람이 저자인데요, '대체 명상이란 게 뭐야?' 싶은 분들은 한 번쯤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인상 깊은 내용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여러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흘러다니고 그 생각을 도무지 멈출 수 없고 잠도 이루지 못할 때, 그럴 때 명상을 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명상을 한다고 앉아있는다고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명상을 하면서,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럼 우린 또 그 집중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잖아요? 결국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떠오르게 된단 말이죠.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자신도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스승에게 배웠다는 방법을 말해줍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멈추지 못하는 상태를 이렇게 바꿔봅시다. 우리가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막 달리고 있는 상태인데, 도로변에 차를 잠시 멈춰세우고 도로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란 거예요. 그럼 내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데 나는 가만히 멈춰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럼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차든, 차선을 아무렇게나 바꾸며 마구잡이로 운전을 하는 차든, 그건 내가 아니라 내 옆을 지나가는 차일 뿐이란 겁니다. 


'그렇게 지나가도록 내버려둬라.'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맹렬히 달려가는구나. 저 트럭은 졸음운전을 하고 있구나. 방금 저 세단은 사고를 가까스로 피했구나. 저 차는 색깔이 특이하구나. 


이런 식으로, 도로를 벗어나, 한 발 떨어져서 도로 안 사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차들은 다 지나갑니다.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흘러가게 두면 지나간다는 거예요. 도로에서 차를 다 치워버릴 수는 없지만, 흘려보낼 수는 있다는 거죠.


명상을 하면, 그런 식의 생각을 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생각이 안 들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흘러가게 두기 위해서 나의 생각과 상태에서 한 발 떨어져 보는 것 말이예요.


예를 들어, 이런 얘기가 있잖아요? 사람들한테 '핑크색 코끼리를 절대 떠올리지 마세요.' 라고 하면, 그 전까진 생각도 안 해본 '핑크색 코끼리'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잖아요. 그러니, 생각을 없애버리려고 할수록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마련이겠지요. 그러니, '나에게 지금 이런 감정이 솟아나고 있구나. 내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구나.' 라고 인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그게 바로 '알아차림'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아차림' 이라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거리두기를 해서 떨어뜨려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비 올 걱정


그러다보면, 이런 게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아, 이건 내가 어찌저찌 해보면 바뀔 수 있는 문제구나.' 라거나, 혹은 또 어떤 문제는 '이건 내가 어떻게 한들 어찌할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일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 대다수가 하는 '걱정'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소위 '비 올 걱정' 이라고 봐요. 비가 오면 어떡하시려구요? 비를 막으실 작정입니까? 그건 아닐테지요. 네, 뭐, 내일 날씨가 추울지 더울지를 두고 걱정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뭐, 추우면 어떡할 겁니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어야지요. 더우면 부채질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걸 미리 걱정한다고 우리가 뭘 바꿀 수 있나요? 그런데 우리는 모든 일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당연시 하지요.


미리 알아서 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우리에겐 어떤 일을 미리 알게 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인해, 나의 선택에 굉장한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가 발생할 것이므로, 내 능력으로 문제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소리가 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전 그 생각에 반박하고 싶어요. 


첫번 째로, 우리가 모든 것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일에 실패할 때 돌아오는 자책과 후회와 괴로움이 훨씬 커진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예요. 모든 걸 다 계획하고 완비한 상태로 시작했다고 확신하는 일들 중에도, 제대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나요? 이 불확실성을 인정하잔 말이지요. 심지어 내가 굉장한 권위자의 위치에 있는 나의 전문 분야에 있어서도, 내가 모르는 어떠한 변수가 개입하여 나의 예측을 벗어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두번 째로,  '이 일은 매우 중요하니 모든 것을 예측하고 대비해 두어야 한다.' 라고 할 때, 이 주장의 기저에는, '모든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잖아요? 근데, 제 생각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우리 선택의 대부분은, 그냥 관성대로 따르거나, 아님 취향의 문제입니다. 모든 선택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입견과 습관과 기타 다른 모든 익숙한 전제를 벗어나 제로 베이스에서 그 순간에 집중하여 선택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램이나 예상과는 달리, 우리의 대부분의 선택은 관성이나 지금껏 형성된 취향과 가치관을 따라 거의 자동적으로 이뤄집니다. 


쉽게 말해, 우리 인생의 선택의 기로는 대부분, '오늘 점심은 짜장면? 아님 짬뽕?' 정도의 문제라고 봐요. 이 말은, '인생 별 거 없다.'가 아니라, 잘못된 선택의 결과라는 건 '에잇, 짬뽕 먹을 걸..' 정도의 후회이며, 이 이상의, 미리 걱정하고 전전긍긍하고 대비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이 극히 드물다는 의미입니다. 뭐, 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당연히 굉장히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런 순간일수록,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자기의 기질대로 선택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을 잘 판단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앞서 말했듯, 폭풍에 휘말려 헤매는 자신에게서 거리유지를 하고 시간도 확보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차려'야 그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선택 전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명상적 사고' 라고나 할까요, 굉장히 높은 파고를 오르내리는 나의 기분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스태디한 태도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김경록 선수의 경우


제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택견을 수련하는 황인무 선생님이 여러 무술가들과 만나 교류하고 인터뷰하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그 영상들 중에, MMA격투기 선수인 김경록 선수가 나온 영상이 있어요. 그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 '프로 MMA 선수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언제입니까?' 였습니다. 김경록 선수는 격투기 선수가 되기 전에 실업팀에 소속된 우슈 선수였습니다. 그때는 나름 생계가 유지되어서, 격투기 선수로 전향하고 나서는 그때와 비교해서 경제적으로 힘들 때가 많았다고 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걸 관두면, 훗날 내가 과연 이것을 하러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답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난 지금 이걸 하고 싶으니까, 지금 난 이걸 해야 해.'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우리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하곤 합니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지르기 위한 자기 합리화로 저 문장을 자주 쓰곤 하지 않나요? 전 그래요. '지금 안 사도, 어차피 내일 다시 와서 살 거 같애. 그러니까 그냥 지금 지를래...' 그런데, 김경록 선수는 오히려 반대의 상황에서 이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너무 힘든데 이걸 과연 계속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평범하게 습관대로 생각을 계속 이어간다면, 이런 식으로 자문했을지 모릅니다. '계속 할 수 있을까? 언제 상황이 괜찮아질까? 내 상황이 반전되는 순간이 오긴 할까? 어떡해야 하지? 그런데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잖아.'


그 결과, 우리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좌절하고,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음에 스트레스를 받고, 이렇게 기분이 다운되고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채로, 좌절감을 주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확고하게 만드는 생각을 지속하다가, 결국 단념하고 관두는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습니다. 


그런데, 김경록 선수는 그 순간에, 거리를 두고 생각을 좀 더 해본 것 같아요. 맹렬하게 달리는 자동차들이 가득한 도로에서 벗어나, 달리는 차들을 흘려보내면서, 자신의 목적지와 여정과 이를 위한 계획을 차분하게 지켜본 거지요. 자신의 기질과 상황과,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와, 정말로 걱정해야 할 걱정거리를 나눠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경록 선수는 오히려 우리 같으면 '여기서 중도포기하는 것이 맞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기 쉬운 상황에서, '이걸 그만두면 나중에 다시 안 돌아올 수 있을지' 에 대한 질문을 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나는 아무리 이 일이 힘들다해도 다시 돌아올 것 같아.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거야. 다른 일을 해서 아무리 잘 되더라도,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 후회할 것 같아. 그러니, 어차피 힘들거라면, 지금 이 힘듦을 돌파하자. 어차피 난 이걸 하러 돌아올 거니까.'


이런 생각으로 계속 나아가기를 선택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한, 자기 중심이 잡혀있는, 자신의 기질과 목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정말 맞는 말 하나


요지는 이렇습니다. '라인홀트 니버' 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는 책을 쓴 저자로 매우 유명합니다. 요즘, 그 분의 기도문이 다시금 핫해졌습니다. 유튜버 '밀라논나'님도 매일 밤 잠들기 전 이 기도를 한다고 하시더군요. 


'평온을 비는 기도' 라고 알려진 그 기도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옛말 틀린 거 없다고, 저 기도문은 정말 맞는 말 같아요. 



덧1. 

그래서 그 바나나는 어떻게 되었나.


그래서, 전 요가원 매트에 앉아 바나나를 입 안에서 녹여 먹으며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처음에는 온갖 생각을 다 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허리가 작살이 나서, 체중은 이렇게나 불어나고..어쩌고저쩌고...' 

'창문이 열려 있으니 바람이 시원하구나.'

'그 와중에 햇살이 엄청 따뜻하네.'

'그런데 바나나 껍질은 왜 이렇게 생긴걸까?'

'가만보니 색깔 정말 신기하네.'


점점 그렇게 바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바나나를 일부러 최대한 천천히, 냄새도 맡아보고 만져보고, 촉감도 미세하게 느껴보고, 요가 선생님이 말해준 것처럼 눈 앞의 순간순간에 집중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새삼 신기한 거예요. 아니 정말로 말예요. 어쩜 이렇게 생긴 것이 있고, 이런 맛이 나는 건가 싶은 거예요. 그렇게 천천히 입에 조금씩 넣어 씹다보니까, 몸 속에, 이 바나나가 주는 기운이랄까요, 에너지랄까요, 아님 열량? 칼로리? 아무튼 그런 게 있지 않겠어요? 그런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렇게 천처히 꼭꼭 씹어 맛보면서, 정말 별 생각이 없어지는 단계에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바나나를 최대한 천천히 먹으면서 명상을 해보라고 시켰던 요가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 저를 혼자 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1 PT 시간이 얼추 끝났을 것 같은데도, 선생님이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바나나를 먹다보니 이상하게도 배가 너무 부르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나는 여러 개였는데, 하나를 먹다말고 심지어 다 먹지 못하고 남겼습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봤어요. 그때 마침 선생님이 제가 있는 방으로 올라오다가 서로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선생님이 안 올라오시길래 내려가보던 중이라고 말했더니 선생님은 신기한 눈으로 한동안 저를 쳐다봤습니다. 아래층 로비에 있던 다른 수강생 분들과 안내 데스크에 있던 다른 선생님도 저를 흥미롭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드신 줄 알았어요. 어차피 그 방엔 다음 수업이 없어서, 좀 더 계시게 두자 했다가 지금 올라가보려고 했던 거예요.' 


제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이미 저희 수업시간은 끝났거든요. 바나나를 먹기 시작한지 삼십분도 훨씬 지났어요. 어떠셨어요? 좀 주무셨어요?'


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뇨, 좀 전까지 계속 먹다 내려왔어요. 배가 불러서 다 못 먹고 남겼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엄청 놀라며, 인도에라도 수행을 하러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제대로 명상을 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전 선생님이 보여준 시계를 보며 더 놀랐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정말 신기한 것이, 바로 그 순간에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선, 내 위장이 너무 커서 많은 양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게 아니구나. 바나나 하나를 30분 동안 씹으니 이렇게 배가 부르구나.' 소화기관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요즘도 뭔가 생각이 복잡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아님 식습관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아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바나나를 삽니다. 방구석에 요가매트를 펼쳐놓고 바나나를 씹으면서, 제발 내 머릿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을 그만하길, 그리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용기내서 시작하길,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바나나를 하나씩 처치하곤 합니다. 



덧2.

또 다른 맞는 말 하나 더


두서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늘 그림과 문구로 대충 마무리지어보겠습니다. sns의 어디선가 추천해준 짧은 릴 영상에서, 배우 '윌렘 데포' 가 이런 대사를 치더군요. 그 문구를 쓰기 위해 딥펜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구 옆에는 그를 그려보았는데, 뭐, 제가 보기엔 꽤 닮았습니다. 


"I try not to 

 live in the past,

 and I try not to 

 think too much about the future.

 

 Call me a hippie.

 What ca I say?

 Be here now, baby."


그럼, 

굿나잇 & 굿럭.





위의 내용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면...여기로~

https://www.youtube.com/watch?v=2f7hNsO0nsM&t=58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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