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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골방을 위한 미장센

결코 정리될 리가 없을 공간을 정리하겠다며

by cpt

닫힌 문


비우면 변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비워야할 바로 그것을 비우는 것이나, 변해야할 그것을 지금 변화시키는 것이 버거울 때, 우린 복잡한 역학관계와 플로우를 설계한다. 가상의 '비움 엔진'의 설계도를 입수하여 그 작동원리를 모조리 섭렵하면 그 엔진이 나를 싣고 목적지를 주파할 거라 믿는다. 배에 달린 스크류가 사막을 횡단할 수도 있을 거라 여긴다. 비움은 궁극의 엔진이니까. 비우는 건 비우는 것일 뿐인데 비움으로 야기되는 결과를 제 멋대로 기대한다. 복권을 사고, 당첨이 되지 않아 화를 내는 것과 비슷하려나.


이제 남들이 어떠한지도 상관없는 단계가 지나고, 내가 변한 것과 그럼에도 변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보이는 단계가 도래한다. 비우는 것은 비우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 돌연 실감이 난다. 말 그대로 그건 그냥 그 뿐인 것이다.


이 때 쯤, 비단 미니멀리즘 뿐만이 아니라, 지나고보면 자연스러운 관심의 확장으로 여겨지는 여러 가지 것들이 연결된다. 물건의 양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당연한 깨달음과, 여태 줄어든 물건이 도와준 결과로 얻게 된 나름의 가치관들은, 실제로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릇에 음식을 플레이팅하는 것이 식생활을 바꾸듯, 한 가지 색의 발목양말을 신는 것이 업무 미팅에 가서 맘에 없는 소릴 하거나 내가 할 마음이나 역량이 없는 것에 대해 부풀려 말하는 것을 멈춰준다. 실체없는 평판보다 자주 만나는 이들에게 선뜻 시간과 정성을 쏟고 보람을 얻는다.


방 한 켠이 비어있어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음악을 자주 듣고, 중고 카메라로 사진을 더 자주 찍고, 그림을 그리고, 아침일기를 쓰고, 샐러드를 새벽배송시키던 것이 쓰레기가 많이 나와 아무래도 맘에 걸리니 자주 장을 보게 된다. 이왕이면 오래 쓸 것을 사고, 이왕이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인다. 나에게만 의미있는 일에서 남에게도 도움되는 일을 조금은 생각하게 된다. 안 하던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소소한 성공의 경험이 축적되고 인간관계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겸허하게 남을 돕기 위해 시간을 쓰고, 솔직하게 남에게 내 시간과 기분을 존중해달라 말한다. 살아가는 전반에 각각의 프로토콜이 새로 정립된다. 좀 더 지혜롭고 느긋하게 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다소 건조하지만 의뭉스럽진 않은 성격이 되어가는 것이 스스로 맘에 들게 된다. 조금씩, 나 자신보다 더 큰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유도 생긴다.


그러다가 돌연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

여전한 문제는 여전하다. 하지만 본령을 피하고 곁가지들에 천착한다. 곁가지로 우회했다는 혐의를 피해보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가동한다. '비움 엔진' '미니멀라이프 프로토콜' '마음챙김 루틴' 뭐라 이름 붙이든, 효과를 본 것들을 다시 죄다 점검한다. 모닝루틴이 완전치 않은 것일까. 문제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저녁 산책일까. 아니, 더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위장을 진정시켜줄 양배추와 식물성 단백질일까. 잠자리를 다시 손볼까. 청소가 밀려 그런 것일까. 얼마전부터 듣기 시작한 목공수업을 새로운 가시적 프로젝트로 연결시켜내지 못한 것이 문제일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것이 무용하게 느껴져서일까. 일회용품을 아무리 줄여봤자 자급자족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 한계가 느껴지는 것일까. 한국해비타트에 후원을 하는 것으로 난 착하게 훌륭하게 살고 있다고 퉁치는 건 아닐까. 결국 비건이 되지 못하는게 문제일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운동화 하나가 더 생긴 것이 문제일까.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영장을 가지 못하는 것이 이리 큰 영향을 주는 것일까. 나는 왜 집에서 홈트를 그만둔 것일까. 아령말고 이지 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도 뭔가 사고 싶은 건 아닐까. 아니, 뭘 사는게 죄는 아니지 않나. 이것 대신 그럼 이걸 해보자. 이걸 비우고 이렇게 해보자.


전 글에 언급한 영화과 학생들의 술자리 비유를 바꿔볼 수 있다. (이번 비유는 아마 그보단 짧을 것이다. 부디.) 영화과 학생 몇몇이 밤새 편집과제를 하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씩 들고 1교시 촬영수업 시작 전 장비실 앞 로비에 모여앉아 담배를 피며 세상 진지하게 담소를 나눈다. 전공자답게 전문적인 소릴 밑도 끝도 없이 서로 뇌까리기 시작한다. 아나모픽 렌즈와 마스터프라임 렌즈와 표준 단렌즈와 번들 줌렌즈의 활용도와 가성비, 세틀러 트라이포드와 중국산 모노포드의 간극, 캐논의 최신 풀프레임 카메라의 8K raw촬영의 실체와 4K 해상도의 충분함과 그 옛날 흑백필름의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아무래도 결국은 필름 때깔이 짱이라는 말과, 그럴 바엔 아이맥스로 찍지 그러냐는 비아냥과 아날로그 갬성을 운운하려면 학부시절 필름깡에 담배 좀 비벼 꺼본 자만 입을 열라는 일갈, 그건 그렇고 자연광에서 찍는 것이 아무래도 개쩌는 것인지, 결국 영화는 빛의 예술이란 말은 조명을 잘 치란 얘기라던가, 혹은 CG합성을 위한 그린매트 촬영은 이제 한물 갔고 이제는 LED screen wall에 직접 소스를 프로젝션 후 실촬영을 하는 것이 낫다던가, 컬러그레이딩을 아무리 해보았자 어느 모니터로 보냐에 따라 다르니 다 헛짓거리란 얘기나, TV 주사율이 60hz인 것과 120hz인 것은 천지차이라던가, 이제 영화도 죄다 60프레임으로 찍어야된다던가 그게 게임이지 영화냔 얘기와 커져만 가는 레졸루션을 어떤 시스템의 스토리지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와 VR이 대세라던가, 이젠 스낵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시대이니 그에 걸맞는 네러티브를 새로 개발해야된다거나, '너 넷플릭스에서 나온 인터렉티브 무비 그거 봤냐'라던가, '그걸 본다고 해야하냐 해봤다고 해야하냐'라던가, 애초에 이제 게임이 시네마틱함마저 자신들의 것으로 한지 오래라던가, 기획이라던가 아이템이라던가 테크놀로지라던가 4차산업이라던가 영상이 영화인지 영화가 게임인지 네러티브가 짱이니 결국 콘텐츠가 핵심인데 그게 대체 그러니까 뭐냐라던가, 누굴 만나 뭔가 해보기로 했다던가 등등..(안 짧네...)


그때 쯤, 일찌감치 배우 의상 피팅과 분장까지 마치고 제작부는 이미 로케이션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은 연출자가, 그날 촬영을 위해 장비실 문을 따려다 그들을 발견한다. 스타렉스에 장비가 다 실리길 기다리며 한동안 잠자코 이들의 토론을 지켜보던 그가 한마디 한다.


'니네, 촬영 안 나가?'



책상의 경우


나는 단 한 번도 내 책상 위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적이 없다. 얼핏 보이는 지난한 작업과정을 암시하는, 적당히 포커스 날린 인스타 갬성 사진 등을 찍어본 적은 있으나, 내가 앉아서 내 머릿속 생각을 굴리는 공간의 구석구석을 남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1도 없다. 온갖 포스트잇과 대충 찢은 메모지에 갈겨 써 둔 활자들, 한창 탐닉하고 있는 책들이나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기사 스크랩에 끼얹어놓은 단상들, 발상의 ㅂ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뭔가 마음이 동해서 써갈긴 글자들, 인덱스카드로 정리 중인 답 안나오는 플롯들, 딥펜으로 정성스레 써놓은 오글거리는 각종 문구들, 그로 인해 유추해볼 수 있는 나의 낡은 다짐들, 틀려먹은 미래를 위한 허황한 계획들 따위는, 오로지 나만 보면 된다.


그러니 이 공간에 대해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식의 허세를 위해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만만한 허들을 놓고 뛰어넘기 시연회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시 말해, 나는 책상 공간의 미니멀리즘이나 최적화에 대해, 전적으로 '지금''여기''나'만을 생각해왔다고 자부했다는 말이다.


다들 마음 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자기만의 이상적인 공간이 있지 않은가. 버지니아 울프가 우리에게 그토록 맹렬히 주장하던 '자기만의 방' 을 가만히 곱씹으면, 다들 머리에 자동재생되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십자모양의 살이 있는 간유리창 아래 화분 몇개와 좋아하는 책 몇권, 그리고 소파와 쿠션. 혹은 오성급 호텔을 능가하는 침대 위에서 푹신하고 거대한 베개에 기대 앉아 음악을 듣는 상쾌한 아침. 고개를 돌리면 아직 분주해지기 전 대도시의 긴장되는 해돋이가 보이면 더 좋을 것이다. 아주 커다란 원목 테이블과 애프터눈 티 세트, 눈 앞에 보이는 벽난로, 카페트 위에서 졸고 있는 골든 리트리버의 배 아래 넣어둔 맨발의 따뜻함과 창 밖의 설산. 뭐가 되었든.


나의 경우엔 이미지 중심에 항상 책상이 있다. 굳이 물어본들 답은 뻔한 그 모습으로. 마호가니 앤틱 책상에 까만 가죽의자.


을지로에 있던 것은 MDF합판으로 만든 상판에 흰색 철제 프레임과 다리가 달린 몇 만원짜리 책상이었다. 인터넷에서 따로 유광 흰색 칸막이를 사서 앞을 가렸다. 몇 만원짜리 바퀴달린 사무용 의자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굿즈로 제작된 쿠션과 허리받침대를 장착하고 배가 책상에 닿게 바싹 당겨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리 거슬리진 않았다. 오디오테크니카의 5만원짜리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다른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 책상이 마호가니 책상이 아니라서 별로였단 얘기가 아니다. 나는 한 3년, 거기 앉아서 A4 1000장 정도의 글자를 썼다. 워드나 한글에 양식에 맞게 쓰여진 글 말고도 스크리브너, 에버노트, 메모장, 때때로 노트에 수기로, 쉬지 않고 끄적였다. 가끔은 그림도 그렸다. (전화통화를 하든, 앉아서 멍 때리든, 습관적으로 끼적이는 몇가지 그림이 있다.) '작업'을 하는게 아닐지라도 '작업실 책상'에 가서 앉았다. 조용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을 때도 지하철을 한 시간 타고 가 거기 앉아서 보았다. 결국 작업실을 관두고 나서도, 의뢰받은 일을 할 땐 굳이 작업실에 있는 동료들에게 키를 우편함에 두고 가 달라고 부탁한 뒤 저녁에 그 책상에 앉아 아침에 나오곤 했다. 월급을 받으며 목동의 사무실을 출퇴근하면서도 한동안 그 책상에 앉으려 종종 들렀다. 그러니 책상의 재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업실을 오가는 3년을 끝내고 나서 집 한 켠을 작업실로 꾸며놓고도, 아니 심지어 멀쩡한 사무실의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내 자리, 나의 허리 상태를 염려한 선배이자 동료이자 성실한 대표님이 사준 매우 좋은 의자와 널찍한 책상을 두고도, 나는 계단을 오를때마다 공용화장실에서 새나오는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는(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예전 작업실 건물에 들어가 창가의 빈 책상에 앉았다. 타이핑을 하다보면 손이 시릴만큼 난방이 형편없는(전열기 하나와 라디에이터를 켜놓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키면 차단기가 내려가곤 했다.) 그 자리에 앉아 뭔가 쥐어짜내려 발악했다.


내가 지난 글에, 요가 수업 때의 이완상태를 재현하려고 집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했던 것을 써둔 대목이 있다. 작업실의 책상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결론적으론, 거기 앉아 있는 동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월세를 청산하고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이 매거진의 첫 글에 등장한 여러 일들과 마음 속 응어리가, 바로 그 을지로 3가 10번 출구 옆의 작업실 건물에서 먼지처럼 쌓였다. 하지만 그 곳에서,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여러 번 써냈다.


그 때 그 상황이 다시 오길 바라지도 않고 그걸 다시 재현할 수도 없지만, 그 책상에 다시 앉을 수는 있지 않나. 실험실의 연구원처럼, 통제할 수 있는 변인을 염두하며 과정을 다시 복기하면, 불가해해보이는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파헤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웃기지도 않은 짓인데, 우린 이런 짓을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인 양 자주 실행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사실 간단한 문제라고. 이쯤되면 깨달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내가 뭔가를 피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앉아 갈 수 있는 거리


초중고를 모두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학교에 다녔다. 한 동네에 8-9개의 고등학교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겨울이면 각 학교마다 서울대학교에 30-40명이 합격했다는 플랜카드를 붙였다. 이 동네에서만 매년 서울대에 300명 쯤 들어간다고? 이게 말이 되나? 1등부터 꼴등까지 평등하게 빠따나 싸대기를 계속 맞으면서 영어사전을 외우고 있으면 궁금증은 가신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입학과 동시에 입학성적 순으로 130명을 끊어내 두개의 반을 만들었다. 65명 씩 순서대로 A반과 B반이 되었다. A, B반은 아침 7시까지 등교해서 9시 전까지 수업 하나와 자습 한시간이 추가되었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11시 반까지 자습을 했다. 나는 믿기지 않게도 A반 실장이 되었고, 한학기 만에 B반조차 들지 못했다. 나는 도서관 3층에서 뛰어내렸고, 여차하면 또 뛰어내릴 생각이었고, 대신 담임에게 학원을 가겠다고 했고, 집에는 자습을 계속한다고 했다. 학원비는 잘 모아두었다가, 저녁시간이 시작되면 곧바로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광안리로 튀어가 시원소주를 사먹거나, 수첩에 노랫말이랍시고 되도 않은 글자들을 써갈기거나, 아님 동성로 구석구석으로 춤을 추러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동네를 싸돌아다니며 가로등 아래 서서 '택시 드라이버'나 '죽은 시인의 사회'나 '방세옥'이나 '사망유희' 대사를 따라했다.


그렇지만, 내키면 자습실에 갔다. 자발적으로 꽤 자주 갔다. 거기엔 3면이 가로막힌 내 책상이 있다. 교복 상의 팔 안으로 이어폰을 집어넣어 소매 밖으로 빼낸 뒤 귀에 꽂고 손으로 가린 채로 라디오를 듣던 그 책상. 칼로 새겨놓은 carpe diem도 거기 있다. 문방구에 코팅을 맡긴, 디카프리오와 맥 라이언을 연필로 그린 곳도 그 책상이다. 자작한 노래가사도, 마카를 사서 컬러로 그린 만화도, 친구 몇몇이 돌려가며 쓴 무협지도 거기서 썼다.


그 책상에서, 당시 나오던 세계사 교과서 세 가지를 다 사서 읽었다. 세계사 문제는 수능에 몇 문제 나오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정일, 정비석, 이문열, 고우영이 팔목이 빠지게 써놓은 수백명의 삼국지 등장인물 중에,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두 셋 밖에 되지 않았다. 후한말부터 진나라에 이르는 지랄발광 100년사는 반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교과서에 몇 페이지나 등장하는 인간들은 그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간들이길래? 인터넷이 없던 때다. 궁금한 인간, 대단해 보이는 인간이 보이면 세계사 선생님에게 책을 추천받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선생님이 책을 던져주면 그걸 읽으러 자습실에 갔다.


나는 그 책상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라디오도 듣고 책도 읽고 손톱도 깎고 비듬도 털고 잠도 잤지만, 주로 가만히 앉아 상상을 했다. 대단한 인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내 미래를 계획했다. 들떴다. 좌절했다. 분노했다. 낙담했다. 설레었다. 이래나저래나 세계사에 손톱자국이라도 내리라 생각했다. 그럴 거라 믿었다.


그때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자고, 그게 아니라면 이야깃거리라도 되자고 생각했다.


싸돌아다니다가, 별에 별 걸 보고 기억해두다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꾹꾹 담아놓았다가, 책상으로 돌아와 보따리를 풀어놓고 끄적였다. 계속 끄적였다.


자습실 의자는 딱딱하고 책상은 지금 내 것의 반도 안된다. 그런데 거기 가만히 앉아서 혼자 가본 곳들이 내 일생 중 가장 멀리 가 본 곳들이다. 아무 대책도 대비도 계획도 의심도 자조도 교만도 없이. 상상하는대로.


그리고, 상상은 정리가 안 된다. 이해되거나 정리가 되면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촘촘하고 짜임새 있다고 잘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물건에 한정된 말이다.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고 정교하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취급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어떤 것들은 그야말로 '공간'이 필요하다. 여백이나 여지라던가, 구석이라던가, 파고들 곳이라던가. 물리적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닫힌 문, 벽이 아니라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파티션을 두는 것을 좋아한다. 꼭 파티션을 사서 세워두지 않더라도, 공간이 구분되고 나뉘고 각각의 공간에 고유의 구석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좋다. 높낮이가 계단 두 턱만큼만이라도 다르면 더 좋고, 벽에 모조리 달라붙어 있는 가구를 어떻게든 방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놓아 동선이 이리저리 구불거리게 되는 것이 좋다. 그 모든 공간에서 가장 구석 중의 구석, 안에 처박혀있기 가장 좋은 골방 중의 골방은 언제나 책상자리였다. 매트리스가 방 한가운데 있게 되더라도, 방이 아니라 책상 보관함처럼 보이게 되더라도. 책상을 벽에 붙여놓을 때는 가장 좋은 벽, 가장 말끔하고 넓은 벽 앞에, 벽과 직각이 되게 창문 옆에 둘 때는 가장 햇빛이 잘두는 곳에, 만약 햇빛이 거슬린다 싶으면 창문 틈새까지 모조리 골판지로 막아놓은 방 하나를 오로지 책상에게.


나는 나름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책상으로 상징되는 나의 영혼을 위한 골방에는 어떤 식으로든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셈이다. 그렇다면 실험을 지속해보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책상 옆의, 언제든 손에 닿을 책장이 문제일 수 있다. 언제든 편히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바로 옆에 있는 것이 문제일수도, 눈 앞에 보이는 너무 많은 것들, 혹은 재미없게 생긴 공산품이 책상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문제들이 순식간에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책상 앞의 벽이 문제라던가, 벽에 붙어 있는 것들이 문제라던가, 스탠드의 위치, 햇빛이 드는 정도, 의자의 높이, 의자의 크기, 프린트가 놓인 자리, 에어컨 바람이 책상으로 불어오는 방향, 어쩌면 책상 앞에는 무용해보이는 텅 빈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 방 한 가운데 책상을 두고 그 앞의 텅 빈 공간에 러그만 깔아두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애써 피하고 있던 본질적인 문제로 고개가 아주 조금 돌아갔다. 책상은 언제나 아웃풋을 목표로 한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당췌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싶어도 그냥 참고 읽어주길 바란다. 생각해둔 매거진의 마무리를 위해 잘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아무튼간에 중요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뻔한 이야기다.)


순도 높은 아웃풋을 위해서는 인풋의 공간과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여전히 이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다. 인풋과 아웃풋을 분리하고 아웃풋의 공간을 정리하겠다니. 장을 보는 것과 요리를 분리하고, 요리하는 내내 싱크대를 닦고 냉장고를 청소하겠다는 말. 본질은 요리에 있다는 것까지는 용케 다가갔으나, 여전히 아직 나는 무엇인가를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난, 이제 이 공간을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이어리의 서너 페이지를 할애하여 '영혼의 골방을 위한 미장센'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우 그럴싸한 논리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는 보기에 매우 깔끔하고 정돈된 책상, 그리고 최적이라 생각되는 책상의 위치, 그리고 또 다시 새로이 생겨난 루틴과 또 다시 필요하게 된 최적의 물건들의 리스트였다. 이 뿐 아니라, 지금 이 집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이사를 가서도 유지되어야 할 특정 공간의 구성방식과 공간을 사용하는 순서까지 적어두었다. 그리고, 이 '정리'는 지금은 모조리 폐기되었다. 하여 상세히 기술하고 싶진 않다.

(2019년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어두었고 내가 정리한 이 내용을 신이 나 Y에게 말했을 때, Y는 처음으로 나의 미니멀라이프에 대해-사실은 강박증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그 '정리'는, 그야말로 '세부사항의 하위 세부 사항의 도그마의 원칙의 기본 이념의 핵심의 본질'을 찾아보고자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니까, 강박증의 결과다. 강박증에 관해서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저것의 원인일 것'이라고, 혹은 '이렇게 하면 저것이 저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만의' 비합리적인 공식이 생겨나는 것. 강박증을 앓게 되면, 보통은 강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그 현상을 통제해가며 치료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다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나는, 결코 정리될 수 없는 것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었다. 책상을 어디 두고 어떤 물건을 거기 두어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님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내가 정한 세부사항을 지키면서 실험의 성과를 기대했다.


나는 벽에 부딪힌 것이고, 그 벽을 깨부실 단단한 망치, 혹은 뛰어넘을 사다리를 정교하게 설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허들을 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보여지고 싶거나 되고 싶은 모습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벽을 넘어야 살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도전과제를 맞닥뜨린 것이 아니라, 과제를 해치우고 다음 레벨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벽을 뛰어넘어 도달한 어떤 상태가 되어야만 모든 것이 가능해 질 것이고, 지금은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내가 전 글에 두번째 고문기술자의 이름을 일러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이것만 되면'


그리고, 단번에 벽을 뛰어넘을 도약이라도 하는 듯, 굳이 급하지 않다고 여겨 잠시 제쳐두었던 다른 영역도 말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박증에 관한 이야기가 전문적이거나 맞는 말이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팟캐스트의 패널로 출연하며 심리상담에 관한 코너를 전문가 선생님과 반복하여 녹음하고, 본인도 상담을 지속하며 겪은 바, 강박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 개인적인 생각을 적었다. 사실, 이 글을 적기 전까진, 저 메모가 강박증의 결과라고까진 생각하진 못했다. 오히려 저 내용을 옮겨적으며 이 글을 이어가려는 생각에 작년 다이어리를 꺼내놓은 것인데, 쓰다보니 이런 전개가 되었다. 사실은 침구세트와 벌인 전투처럼 책상의 변모과정에 관해서도 자세히 그 과정을 하나하나 기술하고 싶었지만, 전체의 흐름 상 어울리지 않아 보여 생략했다.



덧2

그래서 지금은 책상이 어떠냐고? 뭐, 그때그때 다르다. 책상이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두는 것이 유일한 원칙이다. 대신 마음 속에 하나의 대전제가 있다. 그 대전제가 없이도 '그때그때 다르고, 변치않을 원칙 따위는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대전제가 뭔지는 뒤로 미룬다. 그걸 쓰고 나면 더 쓸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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