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월 흐림
Arzua-O Pedrozou 19km
8:00 출발. 12:30 도착.
간밤에도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활기차게 출발한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오면서 조금씩 마음 한구석에서 흥분감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렇게 흔하게 봐왔던 표지석과 노란 화살표가 이제 애잔하다.
이 길을 또 언제 다시 걷는 날이 있을까?
참한 카페에서 거하게 아침을 먹고 나선 길이 한갓지고 여유롭다.
길에는 한국 사람이 넘쳐난다.
순례객도 어제보다 확 늘어나서 걷기에 불편한 경우도 생긴다.
카페나 바르도 흔해졌고 대수롭지 않은 기념품이나 조악한 수제 장식품들을 파는 노점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초행길의 한국인들이 왁자하게 대화한다.
연령대가 뒤섞이고 존대와 하대가 오고 가는 걸 보면 오는 동안 친분이 쌓인 관계들인 것 같다.
며칠 전부터 표지석에서 보이는 변화가 있었지만 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사정을 알고 나서 기가 막혔다.
산티아고 표지석에는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과의 거리가 주석판에 새겨져서 표지석을 세운 주, 즉 갈리시아 주 표식과 함께 붙어있는데 이 거리판이 며칠 전 100킬로 미터쯤을 남긴 이후로 계속해서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이다.
비바람에 떨어져 나간 것이고 곧 보수를 하겠거니 했는데 이 거리 표지판을 순례객이나 관광객들이 떼어 간다는 것이다.
<아래 표지석은 아직(?) 거리표가 남아 있는 멀쩡한 표지석. 그래도 낙서 없이 깨끗한 표지석은 거의 없다.>
표지석 말고도 포장된 도로 바닥에는 역시 주석으로 큼지막한 가리비 모양의 형상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데 심한 경우 이 가리비 표지까지 떼어 간다고 한다.
분명히 기념이 될만한 물건이겠지만 이것은 절도이고 순례자가 해서는 안될 범죄행위이다.
많은 순례자에게 길잡이가 되는 이 물건들을 남이 안 볼 때 떼어다가 자기 집 거실이나 방안에 두고 바라보면 행복할까?
심지어 가리비 주석 표식은 산티아고 도착 후 기념품 가게에서 정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씁쓸하게 웃으며 거리 표시가 떼어진 표지석을 지나쳤다.
간밤에 종아리가 뭔가에 물린 것 같았는데 점심 먹으면서 보니 엄청나게 여러 군데를 옹기종기 물려서 부어있다.
모양을 봐서는 베드 벅인 것 같은데 가려움증이 없다.
약국 흔한 스페인이라 그중 큰 곳에 들러 물린 자국을 보여주니 가렵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니 그럼 그냥 견뎌보고 더 심해지면 다시 오라고 한다.
내일 입성을 앞두고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