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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마침내 산티아고!

6.18 화 비

by 이프로

O Pedrozou-Santiago de Compostela 19km


6:30 기상. 7:10 출발 11:30 도착.

대망의 산티아고 입성일이다.

세 번째 산티아고!

이번에는 어떤 감흥일까?…. 를 생각해보려 했으나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가 감상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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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걷기에 불편했다.

비에 젖은 흙길을 걷노라니 상인들이 비 오는 날인데도 이런저런 물건들에 비닐을 덮어 상점 앞 켠에 내놓았다.

순례 완주라는 목표가 보이자 거리에서 팔리는 기념품 아이템도 바뀌는 듯하다.


한 카페에서는 이제까지 걷고 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커다란 판형에 출력해 주고 있었다.

그 카페에서 바깥에 전시해 놓은 여러 순례자들의 기쁘고 벅찬 미소를 담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두근거린다.

오늘도 성큼성큼 발이 빠른 요아킴과는 아까 헤어졌으나 오늘 저녁에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만나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우리보다 며칠 먼저 도착해 있던 요르그와도 연락이 닿아 내가 도착할 즈음인 12시 정오에 대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번에 산티아고 성당까지 내질러 걷기에는 계속 맞은 비에 몸이 젖었고 목도 말라서 산티아고 비행장 못 미쳐서 만난 카페에 들어갔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콜라를 한잔 시켰는데 이제는 확연히 달라진 카페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순례길이 아니라 그냥 관광지의 카페였다.

여럿이 와서 많이 팔아주는 테이블과 그렇지 않은 고객과의 응대 속도와 서비스 질이 달랐고 가격도 이제는 착한 스페인 가격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가격이었다.

임대료도 비싸고 인건비도 만만치 않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산티아고 비행장을 지나고 산티아고 로컬 방송국을 지나 산비탈을 내려오니 산티아고 도심 진입로이다.

6년 전 프랑스 길을 걸을 때의 기억이 살아났다.

사실 지난 며칠 동안 프랑스 길과 합쳐진 멜리데 이후 길에서 프랑스 길을 걸을 때 묵었던 알베르게나 순례길 풍경이 떠오르지 않아 의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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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 구 도심으로 진입하자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단 부분이 가까이 보였다.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좁은 인도와 차도였지만 오로지 산티아고 성당만 바라보고 걷자니 곧 수도원이 나오고 멀리서 백 파이프 연주 소리가 산티아고 순례객들을 맞아주었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전부터 계속 내린 비를 맞고 추적추적 걸은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기쁘고 벅찬 얼굴이었다.

지난 두 번의 산티아고 순례에서는 대성당 우측 터널 길에서 성가를 불러주던 버스킹 가수의 청아한 음성이 순례자들을 맞아주었는데 이번에는 백파이프 연주였다.

지치고 힘든 우리를 환영하고 그동안의 고행을 위로해주는 고마운 봉사였다.


도착하는 순간을 걸으면서 동영상으로 찍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터널을 지나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걸으면서 내 음성으로 도착 시간과 날짜를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잠깐 울컥 해서 목이 메었다.


광장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멎었다.

몇 년에 걸쳐 대성당은 말끔하게 외관을 단장했다.

첫 번째 방문 당시에 성당은 그동안의 오랜 세월에 찌든 다소 검게 변한 외관이었고,

두 번째 방문 때는 아예 보호막을 씌워버려서 외관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표면을 닦아냈는지 아주 깨끗하고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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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복판에 이르러서 모르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서로 축하하고 격려했다.

여러 가지 언어가 난무했고 여기저기서 손을 내밀고 손뼉을 치고 어깨를 감싸 안고 바닥에 누웠다가 배낭에 기대어 앉았다가 다양한 몸동작으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입성과 대성당 광장을 온몸으로 느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성당을 배경으로 화상통화를 하는 사람, 열심히 셀피를 찍는 사람, 그룹으로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갖고 온 깃발과 표식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런 우리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관광객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요르그가 다가왔다.

며칠 만에 만난 요르그는 핼쑥해진 느낌이었다.

요르그와 광장에 누워 사진을 찍었다.

구도심 어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서 함께 점심을 함께 먹으며 그동안의 얘기를 나눴다.

요르그는 아직도 언제 자기 나라 스위스로 돌아갈지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산티아고에서 취리히로 가는 직항이 생겨서 편하게 돌아갈 수 있다니 새삼 부러웠다.


식당에서 나와서 미리 예약해 둔 세미나리오 수도원 알베르게로 가는 길에 루마니아 순례자 보그단을 만났다.

며칠 루고에서 혼자 하루 먼저 떠났던 그도 어제 도착해 있었다.

또다시 의기투합해 옆에 있던 바르 들어가 와인을 주문했다.

한잔씩만 마시고 숙소로 가서 여장을 생각이었는데 계속 쏟아지는 비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한 병을 비우고 우비를 다시 뒤집어쓰고 일어났는데 오늘 묵을 숙소를 정하지 않은 요르그는 보그단과 내가 묵는 세미나리오 알베르게로 함께 이동해서 취소분을 요청하기로 했다.


세미나리오 알베르게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레온이나 부르고스,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보다 같았다.

도착 후 아내와 가족들에게 동영상을 보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비로소 침대에 기대어 누워 한참 동안 알베르게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난 40여 일간의 여정이 이제 마무리되는 것이다.

감격은 반복된다고 크기가 작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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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요르그와 요아킴을 만나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동안의 무사함을 서로 축하하고 치하했다.

이제 이상 걸을 길이 남아있지 않음을 애석해하면서 건배를 했다.


요아킴은 숙소로 돌아가고 다음날 점심 식사를 할 때 만나기로 했다.

요르그와 나는 와인을 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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