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수 흐림
Santiago de Compostela
어제 산티아고 대성당 도착 후 얘기도 많이 하고 그러면서 와인도 많이 그리고 늦게까지 마셨다.
오전 내내 세미나리오 알베르게 1인실 침대에 쓰러져 있다가 한껏 게으름을 피우면서 샤워도 느긋하게 하고 한국 뉴스도 와이파이로 시청하고 커피도 마셨다.
이제 더 이상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침낭을 걷고 배낭을 다시 꾸리는 일상은 없다.
그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나는 속옷 두벌과 양말 세 켤레, 티셔츠 두벌로 살아야 했고 간밤에 비에 흠뻑 젖었기 때문에 오늘 입을 속옷과 양말 이후로는 대책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이제 더 이상 손빨래와 덜 마른 속옷을 입는 일은 그만 하고 싶었다.
순례길 중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은 비데 없는 화장실과 매일 빨래를 해야 하는 속옷과 양말 사정이었다.
오늘은 꼭 속옷과 양말, 바지와 티셔츠를 구입하자고 마음먹고 외출 준비를 했다.
요아킴을 만나 한시에 점심을 먹었다.
요아킴이 자신 있게 안내한 식당이었는데 가보고 나니 나도 예전에 왔었던 식당이었다.
10유로인데 갈리시아 해산물이 넉넉하게 나오는 인기 있는 맛집으로 순례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요아킴은 부지런히 아침에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순례 증명서도 받아왔다고 한다.
내가 좀 보자고 하니 주머니에서 꺼내 준다.
순례자들이 애지중지 가보로 삼기도 하는 그 증명서를 요아킴은 그냥 네 번 접어서 주머니에 구겨 넣고 있었는데 그의 순례 경력과 그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점심 식사 후 그동안 내게는 큰형처럼 많은 위안과 의지가 돼주었던 요아킴과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요아킴이 느릿느릿 엉성하게 말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미안해. 그리고 굿바이. 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안부를 전해다오."
주소나 전화번호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나나 그런 게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린 길에서 만났고 길에서 서로 즐겁게 지냈다.
그는 그의 산티아고를 나는 나의 까미노를 걸었다.
둘 다 목적지에 몸성히, 그리고 유쾌하게 도착했으니 이제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식사 후 공사 중인 성당 내부를 들어가서 둘러보고 나와서 대성당 옆에 있는 순례자 박물관에 들러 산티아고 순례자 역사를 돌아보았다.
산티아고 다운타운의 유니클로와 자라에 가서 속옷과 양말, 티셔츠와 바지를 샀다.
마트에 들러서 음료와 과일도 사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 200유로를 인출했다.
갖고 있던 돈과 200 유로면 3, 4일간 여비로 될 것 같았다.
돌아가는 항공권과 관련해 트립 닷컴에 연락해서 라이언 항공 문의 전화를 했다.
보딩패스 출력을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제대로 진행이 안되고 있다. 스트레스를 조금 받다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내일 다시 해보는 것으로 하고 정리했다.
알베르게에서 다시 뒹굴거리다가 저녁 식사를 어디서 어떻게 할까 구글링을 해봤다.
한식당 마루는 포르투갈 길 마치고 하룻밤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주인장 내외를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식당이 꽤 멀었다.
그냥 근처 식당에서 좀 제대로 갖춘 해산물 요리를 먹는 것으로 정했다.
그동안 너무 싼 가격대의 식사나 가성비 위주로 식사를 한 나에게 한 끼 정도는 잘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식당이었는데 생각만큼 맛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