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 화 흐렸다 맑음
Comillas-Bustio 26.9km
6:40 출발.
역시나 아침에는 호텔 앞 대로변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유럽 여행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한국에서는 참 어려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빵이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특히 독일이 아주 인상적인데, 동네마다 이른 아침부터 베이커리 문을 열고 빵을 구워 판다.
새벽에 거리로 나와 산책 겸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동네 빵집에 들른다.
멀리서도 느껴지던 고소한 빵 굽는 냄새의 주인공인 각종 빵들이 가게에 한가득 진열되어 있다.
세상에 갓 구운 빵처럼 유혹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
향긋하게 내린 커피와 함께면 든든하고 맛난 아침 식사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민 대다수가 아침을 밥이 아닌 빵 같은 간편식으로 아침을 해결하는데도 이놈의 빵이 모조리 빠* 바게*나 뚜*주르같은 재벌 빵 공장에서 독점을 하고 있다.
제대로나 만들면 모르겠는데 빠*바게*에는 정작 브랜드 이름으로 쓰고 있는 바게트 빵은 아예 없는 업소가 부지기수다.
설탕에 마늘을 덕지덕지 발라 놓은 괴상하고 이상하며 맛도 없는 빵을 바게트라고 만들어내면서 소규모 자영업 동네 빵집을 멸종시키고 있으니 애석한 일이로다.
암튼 어제같이 알베르게가 만석이 되어 침상을 찾아 헤맸던 참사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걸었다.
더군다나 오늘의 목적지의 알베르게는 5성급 알베르게로 명성이 자자한 데다가 침상은 달랑 12개뿐이어서 경쟁이 치열했다.
예약을 해두었더라면 여유 있게 걸었을 텐데 나는 그때까지도 알베르게를 예약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두 차례의 산티아고 유경험자로서 한 번도 알베르게를 예약한다는 일에 대해 듣도 보도 못했었던 것이다.
알베르게 예약은 최근 수년 사이에 순례자가 급증하며 생긴 새로운 산티아고 문화였던 것이었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순간까지도 알베르게의 예약 문화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알베르게는 온전히 '걸어온 자의 것' 이어야 하고, 미리 전화를 건 순서가 아니라 온전히 선착순으로 걸어온 순서대로 침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을힘을 다해 걸어왔는데 유창한 스페인어로, 혹은 현지 상황에 익숙한 이가 걸어둔 예약 때문에 침상이 없어서 다음 마을까지 걸어야 하거나 비싼 일반 숙소로 옮겨야 하는 것은 산티아고 순례자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렇게 예약 문화가 자리를 잡으니 정보력이 부족하거나 언어가 어려운 순례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예약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테고 예약을 해야만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선별적으로 받으면서 일반 순례자들의 알베르게 침상을 선착순으로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구간에는 바르나 카페 같은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르가 네 시간 동안 한 번도 안 나왔다.
결국 6시간 10분 만에, 한 번의 카페 콘레체와 또르띠야 휴식과 한 번의 짧은 코크 휴식만으로 부스티오의 12개 침상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세명은 문이 잠긴 알베르게 입구에서 배낭을 순서대로 세워두고 잡담 중이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캐나다 젊은이는 이후로 오는 이들 모두와 알베르게 할머니들 한 명 한 명에게 자기가 어떻게 지갑을 잃어버렸는지를 설명했는데 그를 수상하게 쳐다보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부녀 커플은 그를 조심하라고 내게 귀띔 했다.
지갑남은 계속해서 나와 다른 이들에게 묻지 않은 자기 사정을 늘어놓았는데 자신은 영화감독에 작가이고 펭귄 출판사와 계약이 진행 중이라는 말까지 덧붙여 결정적으로 나의 의심을 얻었다.
착하디 착한 알베르게 할머니들은 불쌍한 지갑남에게 5유로를 건넸다.
선한 사마리아인!
할머니를 제외한 우리는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지갑남을 외면했다.
알베르게는 정말로 5성급이었는데 각방은 2인실로 개별 침대가 있었고 방마다 따로 샤워와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감격적으로 침상마다 빨래망이 놓여있어서 빨래를 담아 내놓으면 할머니들이 빨아서 건조까지 시킨 후 돌려주었다.
알베르게는 조식도 제공했는데 나는 새벽에 출발하느라 먹지 못했다.
숙박요금은 기부제여서 각자 알아서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