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수 맑음
Bustio-Llanes 29.11km
5:40 출발.
이제 한낮의 햇볕은 겁이 날 정도로 강렬해서 좀 일찍 출발하고 대신 천천히 걸으며 해안길의 풍광을 충분히 만끽하기로 했다.
그래도 해뜨기 전 캄캄할 때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하기는 이번 까미노에서 처음인 듯하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터벅터벅 걸으며 남들이 다 하는 알베르게 예약을 한번 시도해 보았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의 수훈 갑이라고 할 수 있는 ‘부엔 까미노’ 앱으로 오늘의 도착지 야네스에 있는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예전에 기차역사로 쓰였던 건물을 알베르게로 리모델링했는데 침상도 넉넉했고 도심과도 가까워서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았다.
예약을 하고 나니 어제와 같이 치열하게 걷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런 예약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순례자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한결 가볍게 걷다가 풍광 좋은 바닷가 언덕에서 멋진 피크닉 테이블을 만나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을 쉬었다.
테이블 옆에는 큼지막한 오토바이 두대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잠시 후 한 커플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다.
오토바이 임자인 이들은 독일 커플로 오토바이로 이베리아 반도를 일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들은 나를 보고 나는 그들을 보고 놀란다.
오토바이로 스페인 일주를 한다고?
걸어서 스페인 일주를 한다고?
우리는 서로를 경배하고 격려하고 미리 완주를 축하해 주었다.
한시에 야네스 시내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크고 아담한 중심가가 예뻤다.
알베르게는 시내 끝부분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이어서 많은 식당에서 테이블을 거리에 내놓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몇몇 식당과 메뉴를 스캔한 후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가 순례자 메누를 주문하고 흡입했다.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커서 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널찍한 홀이 있었고 별도로 주방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저녁은 대신 가볍게 빵으로.
홀에서 체크인 때 잠깐 지나친 중년 한국 여성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까미노에서 거의 처음 만나다시피 한 한국인과의 대화에 내가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이 여성이 알베르게에 들어서면서 갖고 온 가방이 배낭이 아니라 여행용 슈트케이스여서 좀 의아했던 것이다.
나중에 스스로 밝힌 그녀의 사정은 프랑스 길을 마치고 스페인이 너무 좋아서 북쪽 길을 거꾸로 산티아고에서부터 버스로 이동하며 바욘까지 여행 중이라는 것이다.
대개 프랑스길을 마치면 포르투갈로 여행을 가거나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분은 좀 특이한 여행을 즐기는 것 같다.
버스로 이동하니 늘 너무 일찍 도착하고 알베르게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입장해서 시내 구경을 한다는데 돌아가는 날도 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자유로운 영혼이신 듯.
내일 목적지의 알베르게가 애매했다. 정보가 충분치 않았고 그나마 앱이나 책에 나온 알베르게는 모두 침상이 10개 이하쯤인 소규모 알베르게들이다.
나 말고도 모두들 이것저것 찾아보는 품새가 알베르게 걱정으로 생각이 많은 듯하다.
다시 만난 독일 아가씨 리사에게 알베르게 어떡할 거냐고 묻자 한 곳을 알려 준다.
북쪽 길에서 독일인들은 프랑스길의 한국인만큼이나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부엔 까미노 앱 말고 예외 없이 독일어 버전의 노란색 산티아고 가이드 책을 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실시간 상황이 올라오는 애플리케이션보다 이들의 가이드 책이 훨씬 더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리사가 준 정보로 내일 알베르게 예약을 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