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백수일기 #2
#2. 퇴사하면 좋은 점
월요일 아침. 눈을 떠서 휴대폰을 확인한다. 시간은 여덟시 반. 그런데 더 잘 수 있어. 안 일어나도 돼. 세상에나 이렇게 행복한 일이. 이불 속에 몸을 파묻는데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잠은 이미 다 깼지만 이 여유를 좀 더 즐겨보기로 한다. 뒹굴뒹굴거리다 11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평일 낮에는 티비에서 이런 걸 하는구나'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리며 커피를 마신다. 운동 겸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나간다. 고요한 거리. 따스한 햇살. 미쳤다 미쳤어. 퇴사하길 잘했다. 낮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거였어? 평범한 거리마저 한 폭의 수채화로 보인다.
퇴사하고 좋은 점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거다. 아무리 짜증나는 일이 생겨도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하루 24시간 중 온전히 ‘내 시간’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이 없었다. 새벽 여섯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아홉 시. 씻고 대충 저녁을 챙겨먹으면 열 시. 내게 주어진 건 고작 한두 시간의 여유뿐이었다. 그마저도 업무 때문에 회사 사람에게 연락이라도 오면 짜증 수치는 폭발. 그래서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흘러가는 일분일초가 아쉬웠다. 나의 시간을 방해하는 모든 건 짜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난 지금은 넘치는 시간에 웬만한 일에는 짜증을 내지 않는다. 강아지가 산책을 하다 냄새를 오래 맡고 싶어하면 몇 분이고 기다려줄 수 있다. 버스를 놓쳐도 바람이 선선하니 괜찮다. 커피가 맛이 없어도 이곳은 내 입맛과는 맞지 않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시간’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늘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게 시간을 낭비하는 그런 큰 죄를 지을 수 있냐며 궁둥이를 뻥뻥 차는 사회.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볼 기회 없이 ‘사회’라는 큰 톱니를 돌리기 위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들.
나는 사람들이 낮의 햇살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도로 한쪽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제 몸집의 두세 배나 되는 먹이를 열심히 옮기는 개미를, 집을 짓기 위해 열심히 물고 간 나뭇가지가 떨어져 당황한 듯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는 까치를, 따뜻한 햇살에 기분이 좋은지 몸을 뒹굴거리며 하품하는 고양이를 보았으면 좋겠다. 노력에도 때가 있다지만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더 노력해’란 말 대신 서로 ‘조금 쉬었다 해’란 말을 건넸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