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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17. 2019

꽃길만 걷게 해 줄게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한남대교를 건너던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중독성 강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나.


꽃길만 걷게 해줄게

네 맘에 쏙 들게 할게

널 알게 된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온통 너뿐이야

항상 널 웃게 해줄게

(데이브레이크 “꽃길만 걷게 해줄게” 가사 일부)


찬란한 봄 햇살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좋~을 때라고. 근데 그거 다 뻥이라고.

찾아보니 축가로도 많이 불리는 모양이다. 어디 축가뿐이랴. 고백에도 프러포즈에도 쓰이겠지.

마음을 다치고 다친 이 아줌마 가슴에도 설레는데, 지금 막 눈에서 하트 뿅뿅인 연인들에게는 오죽할까.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말은 안 했지만 그가 나에게 비슷한 고백을 했던 그때, 나도 다짐이라는 걸 했었다.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다고. 

우리 집 밥주걱 살 때, 친정엄마 것과 시어머니 것을 같이 사는 그런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 사랑받고 살겠다고. 


딸 없이 아들만 키우셔서인지 그냥 종이나 말 잘 듣는 사람 인형이 필요하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부모님과 나는 시종일관 결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소소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불편했던 순간의 대부분의 순간마다 신랑은 시동생과 밖에 나가고 없었다. 아마 그도 당연히 별일 없으리라, 자기에게 자신의 집이 편안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느끼리라 여겼던 듯하다.

시아버지와의 신경전이 극에 달하던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내게  반찬을 좀 더 가져다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앉은 자리와 내가 좋아하는 반찬과의 거리가 멀었다. 그냥 손도 멀고 굳이 가져다 먹기도 불편해서 적당히 알아서 먹고 있었는데 그게 남편 눈에 보였나 보다. 

“네. 그래주면 고맙고요.”라고 답을 하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는 그래서 안된다. 

어-디 시댁에서 불편하게 그러고 앉아서 남편을 시키느냐-

다행히 나도 드릴 말씀이 있었다.

“아버지, 아범은 저희 친정에서 물 한 잔도 스스로 안 떠 마시는데요.”


그랬다. 물도 내게 떠 달라고 부탁하고, 화장실도 집 밖 멀리 있는 상가로 다녀오는 사위가 내 남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불편해서.

자기는 우리 집에서 그렇게나 불편해하면서, 어떻게 내가 당연히 자기 집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지 지금도 이해가 힘들다. 



딱딱 떨어지는 우리

(데이브레이크 “꽃길만 걷게 해줄게” 가사 일부)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그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내게 부족하다 싶은 부분을 그가 갖고 있었고, 그에게 나 역시 그러했다. 딱 떨어져도 어쩜 이렇게나 잘 맞을까 싶었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하늘이 세쪽이나도 서로 손 놓지 않고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는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있다. 

마음으로나마 놓지 않고 꼭 잡고 있다.

딸 같은 며느리는 애초에 글러 먹었고, 자신의 부모님과 이 악물고 싸우던 아내를, 그 아내가 암에 걸리고 투병을 하는 중에도, 그는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비록 전형적인 가부장제에 익숙한 그는 자신이 내 손을 잡고 가고, 그보다 개화된 나는 그와 손을 잡고 나란히 가고 있다고 여기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제는 단둘이 스카이리프트를 타도 꼭 양쪽 끝에 앉는다. 

리프트의 균형을 위해서라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날도 더운데 뭐 하러. 

맞은편에서 딱 붙어 올라오는, 시작하는 연인들을 보며 

“덥지도 않은가 봐.”

“좋~을 때다.” 떠드는 우리는 결혼 6년 차.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어, 편안하고 웃긴 한 편 좀 씁쓸하다.

딸 같은 며느리를 꿈꿨던 곱디고운 새댁의 마음은 어쩌다 만신창이가 되고, 네 맘에 쏙 들게 하고 늘 웃게 해주겠다던 새신랑의 진심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은 저 남자에게 데이브레이크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여줄까.

아니다. 나훈아의 사랑을 들려주는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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