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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21. 2019

수족관 속 산낙지 부부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

그러게나 말이다. 저 하나의 결정에 열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었던 떼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도무지도 모르겠다. 분명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한 선택이었는데.
무엇이 우리의 첫 마음을 옥죄고 결혼을 힘들게 만들었을까.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라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거라 여겼기에 이 모양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변화와 진보는 다소 과격한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색하고 혐오스럽기도 한 표현방식도 새로운 변화에 일조하는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들어봤다. 하지만, 과격하게든 온건하게든 부당하고 불편하다고 모여 성토만 하면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오히려 으레 ‘시댁’은 그러다 하고, 관념적으로 더욱 공고해져 시집살이가 아닌 시댁살이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종종 의심이 들곤 했다.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리뭉실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잃은 채 퍼질러 않는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 호스로 뽀글뽀글
하루 분의 산소를 불어넣어준다

...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유하. 체제에 관하여


또 한 번의 관습이 변하고 있는 과도기, 게다가 제도가 앞서 나간 세상에 살고 있는, 배울만큼 배운 우리는 왜 이 황금 같은 시기에 무얼 하며 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큰 의심 없이 전통과 가정의 평화와 현숙한 여인의 삶이라는 가스라이팅에 순응하고 있지는 않은가.
헌재는 전통은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아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님께 단 한 번도 거역하지 않는 것,
부모님께 순종하는 만큼 처자식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
처자식보다 부모형제가 우선하는 삶,
결혼도 일도 모두 효도의 방편인 삶이 과연 가부장적이고 전통적 효자의 상일까.
최근 읽은 칼럼에서 글쓴이는 그러했던 자신의 전 남편을 “효자가 아닌 미성숙한 인간”이었다며, 딸에게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묵직한 당부의 글을 남겼다.
게다가 더 이상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부모님께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서류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었는데, 왜 우리는 느닷없이 현모양처 효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결혼과 동시에 전통이라는 수족관에 갇힌 채 관념이라는 산소를 주입받으며 연명하는 산 낙지 부부가 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낙지도 낙지가 살던 뻘에서는 제법 자유로웠을 텐데 말이지.



참고 및 인용

[효자가 아니라 미성숙한 남자와 이별이었다.]- 조선일보 2019년 6월 15일




+. 더하는 글

[효자가 아니라 미성숙한 남자와 이별이었다.]- 조선일보 2019년 6월 15일


'나처럼 살지 마라'는 어머니의 말은 딸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내 실패에 겁먹지 말고 원하는 길을 가라는 어머니의 말은 더 크고 강인한 사랑입니다. 자기 비하와 편견 없이, 자신의 실패를 돌아본 사람만이 갖는 지혜일 겁니다. 홍여사


열 시쯤에나 들어올 줄 알았던 딸이 오늘은 어쩐 일로 저보다 먼저 퇴근해 있습니다. 그럴 듯한 찌개냄새까지 풍기며 살갑게 문을 열어주니 웬일인가 싶더군요. 실은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녀석은 원래 밖에서 눈물 빼고 들어온 날 유난히 깔깔대며 썰렁한 애교를 부리는 아이거든요.


딸이 차려준 저녁밥을 먹으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습니다. 너, 무슨 일 있어? 그 댁 어른들한테 무슨 말씀 들은 거니? 그러나 그 말은 입속을 뱅뱅 돌다 도로 삼켜지고 맙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 며칠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 걱정이었습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온 뒤라 더 마음에 걸렸지요. 당일의 아이 표정은 더없이 밝았는데…. 부모 노릇이라는 게 결국은 끝없는 기다림이라던가요? 저처럼 혼자인 부모는 그 인내심도 두 배로 필요한 듯합니다. 아이가 속을 터놓을 때까지 기다려주되 괜한 상상, 섣부른 지레짐작으로 불안해하는 건 금물이지요. 저는 시치미 뚝 떼고 맛있게 잘 먹은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너 당장 시집가도 엄마보다 잘 해먹고 살겠다. 인정!"


"엄마. 사실은 나 이 결혼, 좀 자신 없어졌어."


본론은 그렇게 설거지까지 끝나고야 나왔습니다. 딸은 마치 '아까 그 찌개 좀 짰어'라고 말하듯, 덤덤한 얼굴이더군요. 나 역시 사과 한 조각을 건네주며 심드렁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처음 해보는 결혼인데?"


그렇게 쿨하게 말해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딸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면전에서는 결혼을 서두르시더라는 그 댁 부모님이 이후에 아들을 통해 결이 다른 말씀을 하신 건 아닌지, 행여 이혼 가정의 아이라는 점을 새삼 문제 삼으신 것은 아닌지…. 그러나 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오빠네 가족은 너무… 화목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빠가 진짜… 효자인 것 같아."


화목한 집안의 효자! 그 순간 난 할 수만 있다면 쿨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효자가 어때서? 난 불효자 사위는 싫은데.' 그러나 그 말이 목에 걸려 잘 안 나오더군요. '효자'라는 말 속에 담긴 딸아이의 커다란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제 아빠를 떠올리고 있었던 겁니다. 부모님께 단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던 효자 아빠. 부모님께 순종하는 만큼 처자식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던 권위적인 아빠. 처자식보다는, 부모·형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던 사람. 결혼도, 일도 모두 효도의 방편처럼 생각하던 사람….


그 사람과 17년을 살고 끝내 헤어졌습니다. 큰딸이 열여섯, 둘째 딸이 열두 살 때였죠. 한참 민감한 두 딸이 행여라도 '엄마가 아들을 못 낳은 탓에 배겨나지 못했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더군요. 그래서 저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유를 분명히 말해주었습니다. 아빠를 아빠의 가족들에게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요. 엄마가 너희에게 두 몫의 부모 노릇을 하려면 그 집을 나와야 했다고요.


그 뒤로 정말 열심히 살았고, 두 아이는 하늘에 감사할 만큼 잘 자라 주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직장에도 열심히 다녀서 대견했지만, 결혼할 사람이라며 남자친구를 데려왔을 때 제일 기뻤습니다. 인상도 훈훈한 청년이 딸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주더군요. 그 덕에 딸아이의 마음도 활짝 열린 듯했고요.


그런데 오늘 딸아이는 그런 말을 합니다. 효자와의 결혼은 자신이 없다고. 아마도 그 말은, 엄마처럼 살 자신은 없다는 소리겠지요. 하긴. 누구 못지않게 불행하고 힘겨웠던 결혼생활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효자 남편 때문이었을까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고 세월이 제법 흐른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죠. 남편은 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에게 정신적으로 얽매여 있는 미성숙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남자가 어머니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자기 여자에게 어떻게 할지 알 수 있다는 말. 이제 보니 맞는 말입니다. 남편은 어머니와 수직 관계였기 때문에 저에게도 그런 일방적 관계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괴로웠던 것은 효행의 고단함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에게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사랑과 존중을 못 받고 일꾼이나 도구 취급을 받는다는 점이었죠. 남편만 내 편이 되어주었다면 그보다 더한 고생도 참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내 고달픔을 안타깝고 미안하게 여겨주기만 했더라도….


제 이혼은 효자와의 헤어짐이 아니었습니다. 내게 무자비했던 미성숙한 남자와의 이별이었고, 그를 끝내 사랑으로 품을 수 없었던 내 작은 그릇과의 결별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딸들에게 늘, 늘 말해왔습니다.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 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라고요. 잠깐 봤지만, 딸의 남자친구는 천성이 다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개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녀에게도 헌신하지요.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을 볼 줄 몰랐습니다. 유능하고 똑똑하고 잘생긴 청년을 무턱대고 골랐죠. 그러니 딸만큼은 사람을 잘 보고 결혼했으면 좋겠습니다. 학벌과 인물에 혹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효자니, 장남이니, 흙수저니 하는 꼬리표 때문에 좋은 인연을 놓칠까 봐도 걱정입니다. 엄마의 실패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을까 봐 더욱더….


"네 아빠는 똑똑하고 잘생기고, 


여러모로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절대 효자는 아니었어."


"엥?"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봅니다. 그 까만 눈을 보니 갑자기 목이 멥니다. 어느덧 솜털을 벗고, 둥지 밖으로 날아오르려는 내 새끼에게 엄마의 진짜 실패담을 들려줘야겠지요. 세상에 대한 원망, 불운에 대한 푸념이 아닌 진짜 실패담을.


"엄마는 말이야…."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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