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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n 28. 2019

에필로그 - 글의 마무리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6년이 걸렸다.


딸 같은 며느리 사랑받는 큰 며느리가 되겠다는 새댁의 꿈이 무너지고, 예쁨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제발 남의 집 귀한 딸인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 달라는 바람이 바람처럼 듣는 이의 귓가를 지나갔던 그 시절의 실망과 분노를 덤덤하게 풀어낼 수 있게 되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은 21세기에 여전히 개화기를 사시며 당신의 며느리상을 강요하셨던 시아버지께, 내 부모님보다 10살이나 넘게 젊으셨던 그분께, 나를 집안의 가장 낮을 서열인 며느리가 아닌 당신 아들과 혼인한 인격체로 존중해 달라는 바람의 역설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힘주어 말해봐도 그분께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어디 그분뿐이랴.

아무리 힘주어 말해봐도 그의 식구들 귀에는 그냥 귓가를 스치는 기분 나쁜 바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생각에 힘을 더해야 했다.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시절 새댁의 분노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걱정으로 변해있었다. 

부디 내 딸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 

내 딸이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될 그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인격적이고 합리적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 말이다.

… 

30여 년 전, 내 부모님도 이런 바람을 가지셨겠지.


6년이 걸렸다.

성공적인 결혼이 되기에는 첫 단추부터 틀렸다는 새댁의 좌절과 실망과 나를 백치로 만들어 자신들의 평화를 지키려 한다는 분노가 이성을 거쳐 글로 나오기까지.

그 시절, 잊지 않으려고 끼적였던 생각의 골격 사이사이를 메꾸어 글로 풀어내기까지 딱 6년이 걸렸다.


마음에 바람을 담아 글을 닫는다.

언젠가는 이 남자와 같은 시간대의 결혼생활을 할 날이 오기를.

내 딸은 훗날 부디 나 같은 마음고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시집 장가가 아니라, 결혼이다.



출처. 조선왕조실톡 (무적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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