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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15. 2019

주옥같은 판결문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이 구구절절 너무나 훌륭하고 주옥같아서 옮겨보는 일부 발췌.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부분 위헌제청

[전원재판부 2001헌가9, 2005. 2. 3.]



1. 재판관 김효종의 반대의견 중

(4) 호주의 지위

(가) 민법 제778조는 위와 같은 가족제도에 터 잡은 각개의 가(家)에 호주를 두고 있는바, 이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전통문화에 터 잡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즉, 고려의 가족제도는 부계혈족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나, 처(모)가 혼인으로 인하여 본래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분과 부(夫)의 혈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모)족이 존중되고 처(모)의 지위가 열악하지 않았고, 가족관계가 가부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려사 식화지(高麗史 食貨志)에 의하면 호적에는 호주 및 호주와 동거하는 자식ㆍ형제ㆍ질(姪)ㆍ서(壻) 등 친족의 세계(世系)는 물론이고 노비와 그 세계(世系)까지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중기까지는 재산상속에 있어서 자녀의 균분상속이 인정되고 조상에 대한 봉사(奉祀)도 자녀가 윤행(輪行)하는 등 여자의 지위는 남자에 비하여 열등하지 않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호적은 호주의 사조(四祖)와 호주의 처의 사조(四祖)가 기록되고 가족으로서 솔거(率居)하는 자녀와 서(壻) 그리고 노비 등을 기재하도록 하여 근본적으로는 고려의 호적제를 본받았다. 그러나 그 후 점차 성씨제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되면서 수직적 부계혈족주의와 결합하여 부계혈통주의가 강화됨으로써 필연적으로 가족제도의 변천을 초래하게 되어 여자의 지위를 극히 열악하게 하였으며 친자제도를 비롯한 혼인제도ㆍ상속제도의 전반에 걸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조선의 가족제도는 1896년에 ‘호구조사규칙’이 칙령으로 공포되어 새로운 호적제도가 시행되면서 호주의 사조(四祖)만을 기재하게 하여 가족제도가 더욱 남계중심의 부계혈족주의로 진전되었다.

이와 같이 호주의 구체적인 지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지만, 호주라는 관념 자체는 가족제도에 가부장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이는 적어도 가족제도와 더불어 ‘호주’라는 관념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문화적 침전물이라고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헌법 제9조에 의하여 그 계승ㆍ발전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2. 판결문의 전문 이하 이유 중 일부 발췌

나. 헌법과 전통

호주제를 비롯한 가족제도에 관하여는 그것이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박은 전통이므로 이를 함부로 합리성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남녀평등의 도식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그와 같이 하였을 경우 규범과 국민들의 의식 간에 괴리만 부채질하게 된다는 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헌법과 전통, 헌법과 가족법간의 관계에 관하여 살펴본다.

(1) 헌법과 가족법

헌법은 모든 국가질서의 바탕이 되고 한 국가사회의 최고의 가치체계이므로 다른 모든 법적 규범이나 가치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가진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규범으로서 입법ㆍ행정ㆍ사법과 같은 모든 공권력의 행사가 헌법에 의한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사법(私法)상의 법률관계도 직ㆍ간접적으로 헌법의 영향을 받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정치생활의 가치규범으로서 정치와 사회질서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의 규범을 준수하고 그 권위를 보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설파한바 있다(헌재 1989. 9. 8. 88헌가6, 판례집 1, 199, 205).

가족제도는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생성되고 발전된 역사적ㆍ사회적 산물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가족제도나 가족법이 헌법의 우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없다. 만약 이것이 허용된다면 민법의 친족상속편에 관한 한 입법권은 헌법에 기속되지 않으며, 가족관계의 가치질서는 헌법의 가치체계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입헌민주주의에서 용납될 수는 없다.

만약 헌법이 가족생활이나 가족제도에 관하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다른 헌법규정과 저촉되지 않는 한 전통적 가족제도는 가급적 존중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가족생활에 관하여 중립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어떤 이념ㆍ가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족생활ㆍ가족제도에 관한 최고규범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날 헌법은 가족생활관계도 이를 단순히 사인(私人)간의 사적 문제로만 파악하지 않고 그것이 국민생활 내지 국가생활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헌법사항에 포함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국가의 헌법에서 가족생활관계에 대해서도 그 근본이 되는 원칙을 헌법의 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 헌법도 제36조 제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정치ㆍ사회적 변혁기에 새로운 정치ㆍ사회질서, 새로운 가치와 이념을 지향하면서 제정된 헌법(우리의 제헌헌법이 이에 해당한다)의 경우,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전래의 제도를 헌법에 맞게 고쳐나가라는 헌법제정권자의 의사가 표출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법감정이나 정서와 헌법규범간의 괴리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헌법이념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법의 역할은 사회현상이나 국민의 법감정을 단순히 반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최고가치질서인 헌법이념을 적극적으로 계도하고 확산시키는 역할 또한 가족법의 몫이다. 그런데 가족법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는커녕 헌법이념의 확산에 장애를 초래하고, 헌법규범과 현실과의 괴리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러한 가족법은 수정되어야 한다.

(2)전통과 민주적 가족제도:헌법 제9조와 제36조 제1항의 관계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을 강조하고 있으며,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 제9조와 제36조 제1항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 것인지 문제되는바, 그 해답의 단초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특별한 입헌취지에 더하여 전통 내지 전통문화의 헌법적 의미를 조명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제36조 제1항의 연혁을 살펴보면, 제헌헌법 제20조에서 “혼인은 남녀동권(男女同權)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 것이 그 시초로서, 헌법제정 당시부터 평등원칙과 남녀평등을 일반적으로 천명하는 것(제헌헌법 제8조)에 덧붙여 특별히 혼인의 남녀동권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한 것은 우리 사회 전래의 혼인ㆍ가족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남녀평등을 기초로 하는 혼인ㆍ가족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근대적ㆍ시민적 입헌국가를 건설하려는 마당에 종래의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결단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헌법의 의지는 1980년 헌법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양성평등 명령이 혼인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생활로 확장되었고, 양성평등에 더하여 개인의 존엄까지 요구하였다. 여기에 현행 헌법은 국가의 보장의무를 덧붙임으로써 이제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한편, 헌법 전문과 헌법 제9조에서 말하는 ‘전통’, ‘전통문화’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과거의 어느 일정 시점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헌법의 보호를 받는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란 과거와 현재를 다 포함하고 있는 문화적 개념이다. 만약 전통의 근거를 과거에만 두는 복고주의적 전통개념을 취한다면 시대적으로 특수한 정치적ㆍ사회적 이해관계를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보편적인 문화양식으로 은폐ㆍ강요하는 부작용을 낳기 쉬우며, 현재의 사회구조에 걸맞는 규범 정립이나 미래지향적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기능하기 쉽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헌법 제9조의 정신에 따라 우리가 진정으로 계승ㆍ발전시켜야 할 전통문화는 이 시대의 제반 사회ㆍ경제적 환경에 맞고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타당한 전통윤리 내지 도덕관념이라 할 것이다.”(헌재 1997. 7. 16. 95헌가6등, 판례집 9-2, 1, 19)고 하여 전통의 이러한 역사성과 시대성을 확인한바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전통’ ‘전통문화’란 오늘날의 의미로 재해석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의미를 포착함에 있어서는 헌법이념과 헌법의 가치질서가 가장 중요한 척도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고 여기에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의 정신 같은 것이 아울러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ㆍ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자명한 한계가 도출된다. 역사적 전승으로서 오늘의 헌법이념에 반하는 것은 헌법 전문에서 타파의 대상으로 선언한 ‘사회적 폐습’이 될 수 있을지언정 헌법 제9조가 ‘계승ㆍ발전’시키라고 한 전통문화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원리, 전문, 제9조, 제36조 제1항을 아우르는 조화적 헌법해석이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래의 어떤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제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3. 판결문의 전문 이하 이유 일부 발췌

(다)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의 차별

혼인이란 남녀가 평등하고 존엄한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의사의 합치에 의하여 생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어야 하므로 부부관계라는 생활공동체에 있어 남녀는 동등한 지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민법 제826조 제3항 본문에 의하여 여자는 혼인하면 법률상 당연히 부(夫)의 가에 입적하게 되는바, 이 조항은 민법 제789조와 결합하여 다음과 같은 법률효과를 일으킨다.

첫째, 부(夫)가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인 경우에, 부는 법정분가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가에 머무는 반면, 처는 종래 소속되어 있던 자신의 가를 떠나 부의 가의 새로운 가족원이 된다(대개의 경우 친정아버지가 호주인 가에서 시아버지가 호주인 가로의 전입을 의미한다).

둘째, 부(夫)가 호주의 직계비속장남자가 아닌 경우에, 부는 법정분가하면서 새로운 가의 호주가 되는 반면, 처는 부의 가에 입적되므로 입부혼을 제외하고는 그 가의 가족원이 될 뿐 호주지위를 획득할 수 없다. 부부는 혼인관계의 대등한 당사자로서 부부공동체에 있어 동등한 지위와 자격을 누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처의 입적제도는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ㆍ종속적 지위를 강제한다.

처의 입적제도는 호주승계에 있어서 여자의 열등적 지위와 결합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어려서는 아버지(때로는 오빠 또는 남동생)의 가에, 혼인하여서는 남편의 가에, 늙어서는 아들의 가에 귀속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봉건적 삼종지의(三從之義)의 한 모습을 오늘날에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언정 개개의 여성을 존엄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예정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 처의 입적이라는 법률적 제도가 사회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고 깊다. 법률적으로는 단순히 소속 가의 변경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상징적, 심리적 의미는 매우 중대하다. 혼인과 동시에 ‘호적을 파서’ 남편의 호적으로 옮긴다는 것은 이제 친정과의 결별이자 시가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확인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 많은 여자들이 혼인신고 시에 정체성의 혼돈ㆍ상실이라는 경험을 겪는다고 한다. 그러한 공식적 확인을 통해 가족구성원의 인식과 심리에 이제 혼인한 여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내면화되고, 가족관계에 있어 시댁과 친정이라는 이분법적 차별구조가 정착된다. 가족관계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양상은 당연히 남아선호라는 병폐와 연결되고, 사회적 관계에로 확장되었을 때에는 남성우위ㆍ여성비하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ㆍ유지하게 된다.

민법 제826조 제3항 단서는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승계인인 때에는 부(夫)가 처의 가에 입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이른바 입부혼), 이러한 제도를 두었다 하여 본문조항의 남녀차별성이 상쇄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입부혼이 거의 행해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통계를 보면 2000년도 보통의 혼인신고는 368,151건, 처가입적 혼인신고는 24건, 1999년도의 경우 전자는 398,040건, 후자는 34건, 1998년도의 경우 전자는 396,206건, 후자는 6건임을 알 수 있다), 법률적으로도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승계인인 때로 한정하고 있는 점, 처가에의 입적 여부를 부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한 점에서 처의 부가(夫家)입적의 경우와는 분명히 차별적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 보면 입부혼 또한 가계계승의식의 발현으로서, 부계혈통계승의 영속화를 위해 1회적ㆍ잠정적으로 모계를 활용하는 편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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