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은 내가 왜 책을 읽는지, 왜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앞서간 성인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지난간 역사의 흔적을 찾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더듬거립니다.
겨우 100Km도 안되는 생활 반경에 머물면서, 고작해야 하루 몇 명에 지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며 에누리 없는 24시간 중에 그나마 깨어있는 열몇시간 남짓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먹거리를 장만해야하는 원시시대 조상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 삶에서 그다지 큰 보탬이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열중하는 나를 보고있자면 가끔은 한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자각조차도 없이 하라고해서 해야된다니까 했던 과거의 공부에 비하면 얻는 것도 깨달음도 크다는게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합니다. 저는 지식이 학교와 책에 있고, 지식의 총량으로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책 몇 십권을 읽어도 내 삶을 흔드는 한 줄의 글귀를 찾기 힘들지만 우연히 듣게 된 한 마디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달뜨는 걸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배우고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건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더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오히려 질소가스로 부풀린 스낵봉지를 뜯을 때처럼 실망감을 안겨 줄 때도 있습니다. 온갖 지식의 토핑과 허위의 가스로 가득차서 자신조차도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를 말을 듣게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전문가를 자임하면서 실은 자신의 전문영역밖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어떤 문제에 있어 핵심을 들여다보려는 노력보다는 시사거리에 주목해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현란한 수사와 잡다한 논거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데만 열중하는 사람들의 말과 글을 대할 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삶이 그리고 진리가 그리 복잡하고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ᆞ 정신과 의사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어느날 밤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당신이 그 유명한 빅터 프랭클입니까?” “예,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난 지금 죽으려고 한 손에 약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당신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순간 당황한 프랭클은 정신없이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살하려는 행동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화는 끊어지고, 세월이 흘러 그 기억이 잊혀져 갈 무렵, 어느 모임에서 한 여인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빅터 프랭클 선생님이시죠? 혹시 몇 년 전 한밤중에 제가 전화를 했었는데 기억이 나시는지요?” 기억을 더듬어 그 당황스러웠던 한밤중의 전화를 생각해 낸 프랭클은 갑자기 자살하려고 했던 이 여인이 그 때 자신의 어떤 말에 자극을 받아서 자살하려던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그 때 제 말 중에 어떤 말을 듣고 자살하려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지요?” 그런데, 그 여인의 대답은 프랭클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은 그 때 선생님이 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한 밤중인데도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라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으려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오랫동안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앓았다가 지금은 완연하게 회복된 젊은 지인을 만났습니다. 제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요즘 얼굴이 한결 환해지고 건강해보여서 좋습니다" "그런가요. 네. 사실 그렇습니다. 요즘은 저글링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네 개까지는 도전해볼려구요" "딸에게 보여줄려고 그러는군요" "네. 하도 좋아하길래...." "이제 완전히 회복된 것 같은데요? 보기 좋습니다. 딸의 영향이 컸던가보죠" "아뇨. 실은 제 아내의 한 마디가 제 마음을 돌려세웠다고 봐야죠. 온갖 치료를 받고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는데...." "그게 뭔대요?" " 아내가 "나를 위해서 살아달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저를 보다 못한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런거 같아?" 그래서 제가 "내가 왜 살아야 하는 지 모르겠어"라고 했더니 아내가 대뜸 "그럼 나를 위해 살아봐. 당신이 죽고나면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당신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 생각하면서 살아보면 안돼?' 라고 하더군요. 그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야말로 즉효였군요. 혹시 아내분이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아뇨. 안읽습니다. 표지 제목만 보고 골라서 제게 선물한 정도인데요 뭘..." 그는 일기를 빠트리지 않고, 한번에 여러권의 다이어리에다 글을 남기는 대단한 독서가이자 석사출신의 재원입니다. 그날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연애담부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결혼에 대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ᆞᆞ 의사인 빅터 프랭클도, 그의 아내도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여인과 남편을 구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상대의 얘기를 들어줌으로써, 그녀는 남편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을 뿐인데 귀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과학과 지식보다 위대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리 복잡하지도 어렵지 않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