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을 넘겼다. 표지를 덮고 한번 쓰다듬는다. 나만의 의식이다. 오늘 하루 책 1권을 읽었다.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한 일이다. 수시로 잡념이 끼어들기도 하려니와 예전만큼의 집중력도, 눈도 맑은 편이 아니어서 요즘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으니까....
다큐멘터리를 찍던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고위관료의 자살을 소재로 방송을 준비중이었다. 취재를 위해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긴 미망인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역시 심한 짓이란 생각에 고민하고 망설여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모든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던 미망인은 그에게 고인이 쓴 시와 노트까지 제공하며 호의를 베푼다. 방송이후 출판까지 하게 되어 그 책을 전하러 간 고레다 히로카츠에게 그녀가 묻는다. "제가 왜 당신의 취재에 응하기로 했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처음 취재하러 온 날 거기서 쭈뼛쭈뼛 앉아있는 당신이 맞선을 봤을 때의 남편과 무척 닮아서요" 그는 불단의 선향을 피운 다음 현관 앞 다다미방에 앉아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사람은 공기로 사람을 읽는다. 미세한 공기의 떨림과 냄새로 서로를 안다. 밀도를 감지하고 온도에 반응한다. 나는 미망인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공기의 충밀함을 느낀 적이 있다. 카코메티 전시회에 갔을 때였다. 어둡고 둥근 방 한 가운데에 '걷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서있거나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나도 벽에 기댄 채 미끄러지듯 앉았다. 앉게 됐다는게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살점이라고 없는 그 앙상한 봄베이 화산재에 묻혀있던 시체와도 흡사한 조각과 나 사이에는 쇳덩어리보다 무겁고 감히 거부할 수도 없는 공기로 꽉 차 있었다. 농밀하고 오랜 대화가 오갔지만 지금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그 공간 안에서의 공기를 잊지못할 뿐이다.
흐르기도 멈추기도 가라앉기도 그리고 떨리기도 하는 공기. 그 무겁거나 가벼운 공기가 채워진 공간에 사람이 있다. 사람만이 공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공기를 느낀다. 시간이 머물었다 가는 자리도 공간이다 시간은 공간 안을 유영한다. 물리적이거나 환경적인 공간에 제약을 받으면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연다. 사유의 공간이다. 명상으로 시간과 공기를 거스르기도 하고 책을 읽음으로서 공간을 열기도 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니컬러스 카는 말한다. "독서가 열어 준 조용한 공간에서 인간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며,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책이 열어 준 공간에도 사람이 머문다. 책은 내부와 외부세계를 차단해 공간을 만들고 우리는 그 공기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