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나풀거리던 봄이 떠난 자리를 따가운 햇볕이 내려쬔다. 공원길에서 아직은 타지않은 잔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 캠퍼스 잔디를 뒹굴다 고개를 들면 내 눈길은 어김없이 여대생의 봉긋한 가슴에 머물고 거기엔 책 한 권이 안겨있었다. 무슨 책들이었는지 기억에는 없다. 영어 제목이 많았고 표지디자인도 전공서적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가씨 가슴에 안겨있던 책 한 권이 그녀를 지적으로 보이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 자리는 애왼견 차지가 되고 말았다. 책과 애완견. 젊은 심장을 펄떡거리게 했던 책과 연애의 시작이자 매개가 되곤 하는 애완견, 표지가 그럴듯한 책 한권과 이쁘게 단장한 개 한마리가 동심원이 되어 머릿속을 맴돈다.
술 권하는 사회라더니 이제는 책 권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술과 책은 어떤 식으로건 정신에 스며든다. 우울하게도, 희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듯 책을 읽는데는 단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선천적으로 알콜 분해 효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책을 읽는데는 독서 근육을 키우는 후천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술이 받지 않는 사람에게 "한잔 해" 권하는 것처럼 독서가 일상화되지 않은 사람에게 "책 한권 읽어봐"라는 말은 상대를 곤욕스럽게 하는 말이다. 노력에 중독된 시대라서인지 우리사회는 술 한 잔 권하는 것보다 더 쉽게 책읽기를 권한다. 회식에서도 술잔을 엎는 무언의 거부가 통용되는 세상이다. 집에 서가도 없는 사람에게 굳이 책읽기를 권하지 않는 것도 예의다. 혼술이 대세듯 혼독도 좋을 일이다.
절박한 출판계와 독서인구 감소를 우려하는 마음은 더할바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한다고 자신이 자식을 더 낳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지금의 자식를 올바르게 키우고 그들이 그들의 자식을 많이 낳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서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혹은 서가의 책, 여러 권의 책 사진에 별 감흥이 없다. 책에 실린 문장 한 구절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거나 그로 인해 바뀐 자신을 얘기하는 잘 쓰인 글을 만날 때는 반갑다.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을 서점으로 이끈다. 아무리 훌륭한 글도 저자의 것에 머문다면 액자 속 경구에 다름없다. 책이 골동품도 아니고 자신이 골동품상도 아닌데 굳이 사 모으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악세서리처럼 다루어지는 책은 애완견과 다를 바 없다.
젊은 시절 해외 파병도 기피했으면서 남의 나라 전쟁은 부추키는 고약한 인물이 자신을 발탁한 대통령과 국가에 도움 될 리 없는 얘기를 떠벌린 회고록이 화제다. 무릇 책은 깨치거나 뛰어난 사람만 내는 것은 아니다. 독초는 때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해롭거나 허접한 책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다. 귀한 시간을 갉아먹을 따름이다.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남의 시간을 아깝게 여길리 만무하다. 대체로 많은 정치인들이 지능과 암기력은 좋지만 감성은 메말랐고 품성은 천박하고 비열하다.
지난 여름 해남을 여행하다 어느 절에 들렀다. 시원스럽게 미닫이 문이 열려있고 발이 쳐진스님 방을 구경하다 사진을 찍었다. 방 한 가운데 작은 탁자에 놓인 다기도 정갈스러웠지만 벽을 빼곡히 채운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다. 소설부터 경영서적까지 언뜻 산중 생활에 그리 관련 없어보이는 책들이었다. 그 중에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참고서가 꽂혀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가 챙겨간 것일 수도 있다. 주호영이 직장을 무단 이탈해 절간에서 무의도식하며 뒤적거리던 책이 수능 참고서 산문편이라고 했다. 한편 부럽고, 괘씸하고 한심해진다. 하루만 무단 결근해도 시말서를 써야하는 우리네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국회의원이란 직업이, 그래도 1200만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부럽고, 신분도 의무도 책임도 방기하는 그의 행태가 괘씸하고, 그런 인간을 원내대표가 될 때까지 여러번 뽑아 준 우리들이 탄식이 나올 만큼 한심하다. 우리나라에는 전현직 국회의원 수만큼의 자서전이 있다. 그도 썼을 것이다. 새로운 자서전 출간을 위해 초심으로 고교 참고서를 뒤적거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싶은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교수들이 매년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일이다. 왜 그러는지, 무슨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게는 일본만이 쓰고 있는 연호와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연호는 그 나라 국민들이라도 열광한다지만 이 사자성어는 그렇지도 못하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2017년 선정된 사자성어다. 나조차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들어 자주 등장한다. 문희상이 의장시절 윤석열에게 전달한 액자에 담긴 글귀가 파사현정이고, 이를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가 다시 윤석열을 질타하며 꺼집어 낸 사자성어다. 있어뵈고 든 것처럼 행세하는데 고사성어만큼 주효한 것은 없는 모양이다. 교수가, 국회의장이, 검찰총장 그리고 법무부장관이 파사현정을 전하고 받아들고 들먹인다. 정작 그들이 글귀를 새겨 행하는 건 고사하고 액자만큼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는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그들의 파사현정과 주호영의 수능 참고서는 다른 듯 같은 것이다. 먹물로 찍혀 고생하는 고사성어에게 미안하다.
책도 먹물로 쓰여진다. 읽혀지는 문자로만 존재하는 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장식이나 소품으로 쓰여지는 책은 계란판으로 쓰일 조선일보만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