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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간이 박제된 최첨단 도시 탈린

크리에이티브 시티와 빈티지 마켓에서 시간의 유물을 발견하다

by missnow

탈린은 작은 도시 안에 중세 유럽, 냉전 시대의 공산국가, 최첨단 현대 도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사이좋게 공존하는 신기한 도시다. 한나절만 이 도시를 거닐면 거리의 시대 배경이 세 번 정도 바뀌는 걸 볼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탈린에서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올드 타운과 같은 중세시대 관광지만 보면 전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에스토니아는 스카이프를 만든 IT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에이티브 시티는 IT 회사들의 사무실과 함께 감각적이고 독특한 물건을 파는 디자인 샵과 갤러리 등이 있다고 해서 여행 오기 전부터 기대가 컸던 곳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크리스마스 연휴라 닫는 상점들이 많아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역시 25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쉽게도 보고 싶었던 디자인 샵과 갤러리 등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크리에이티브 시티의 벽화와 거리 풍경만을 보며 위안으로 삼았다.

냉전 시대의 잔해가 남아있는 듯한 기차역이나 폐공장, 회색 건물들에 거침없이 그려진 그라피티 아트들은 회색빛 도시 풍경을 장식하는 유일한 컬러라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힙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라 내가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였다면 이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찍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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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헬싱키로 돌아가는 페리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Balti Jaama Turg으로 향했다. 며칠 걸어 다녔다고 이제는 구글 지도를 켜지 않아도 길이 익숙했다. 어제는 25일 연휴라 문을 닫았던 2층 시장이 다행히 문을 열었다.


Balti Jaama Turg는 탈린의 재래시장으로 지하와 1층에서는 과일, 육류 등을 파는 시장이 있고 2층은 빈티지 마켓이 있다. 빈티지 마켓은 크진 않았지만, 옷, 액세서리, 책, 장식품 등 온갖 종류의 물건들을 파는 샵으로 이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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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나절을 구경해도 시간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의 유물들이 두서없이 쌓여 있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핀란드도 빈티지 샵이 유명하지만, 핀란드 빈티지 샵은 주인에 의해서 한번 선별된 물건들을 팔고 있어서 좀 더 쇼핑하기 편하고 제품의 퀄리티가 있는 반면 가격이 비싸다. Balti Jaama Turg 빈티지 마켓이 좀 더 물건이 다양하고 저렴하고 편이었다. 말 그대로 고물상과 보석상 그 중간의 묘한 매력의 장소였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폐기물이 가득한 고물상으로 보일 것이고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한발 한발 쉽게 땔 수 없을 정도로 먼지 쌓인 보물이 가득한 보물 창고로 보일 것이다.


탈린은 중세도시의 풍경을 간직한 도시로만 기억되기엔 좀 아쉬운 곳이다. 발걸음이 선뜻 향하기 쉬운 여행지는 아니지만, 탈린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올드타운부터 크리에이티브 시티, Balti Jaama Turg까지 발걸음을 남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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