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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Feb 14. 2024

#15. 우리는 언제 "친구"가 됐을까?

내가 돌아선 순간 이어진, 네가 돌아서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어질 인연

선진이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 일기장 속 고민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던 친구였다. 

선진이가 내 앞 학번이어서 전공수업에서 같은 반에 배정받는 일 많았고, 자연스럽게 나와 선진이 그리고 같은 반이었던 3명이 함께 어울려 다니게 되었다.

학번이 붙어 있어서 나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선진이는 나보다는 다른 친구들을 좀 더 편하게 대했다. 사람마다 잘 맞고 안 맞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친구와 더 잘 맞는 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선진이와 거리를 좁혀 보려고 나름 노력했다.

혼자 있는 걸 잘 견디는 편이고 남들에 비해서는 외로움을 덜 타는 나였지만 같은 과 동기가 아니라 "친구"가 마음 둘 곳이 필요했고 아무래도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던 선진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선진이는 다른 친구들한테는 편하게 보이는 모습을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당사자는 느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마 다른 친구들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았다면 나도 선진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내 일기장 속 고민의 주인공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 왜 나한테만 그래? 라고 할 정도로 티가 나진 않았지만...

가끔 보는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면 될 텐데 그러기에는 수업도 대부분 겹치고 같이 다니는 무리도 겹치는 터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가 나를 다른 친구들 정도로만 대해 주길 바라서 노력했다. 지금이야 선진이를 잘 아니까 그 당시 선진이의 태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 선진이에게 나는 친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자기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고 나는 그 범주에 끼지 않은 그저 수업을 같이 듣고 자주 보는, 같은 과 동기에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나는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워지지 않는 선진이와의 관계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만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던 그 손을 놓기로 했다. 

지금이야 몇 문장으로 정리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나를 괴롭게 했던 결정이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누군가의 손을 놓아본 적은 없지만 이제는 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좀 외로워져도 혼자 다니는 게 훨씬 속이 편했다. 선진이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먼저 손을 놓았던 사람이다. 

여기까지가 우리 관계의 1막이다. 




한 번도 마주 잡은 적이 없었던 선진이의 손을 나 혼자 놓고 돌아선 후 우리 사이는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 없이 몇 달이 흘렀고 어느 날 선진이가 메신저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기를 잘 챙겨주고 마음 써준 걸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고 나만큼 자기를 신경 써준 사람이 없었는데 미안하다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그 맥락까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그 메시지를 보고 아 내 진심이 뒤늦게나마 닿긴 닿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라도 진심이라면 언젠가는 통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그건 닿을지도 안 닿을지도 모르는 마음을 보내야만 했던 누군가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 


나는 사실 마음을 너무 많이 쓰고 지쳐서 손을 놓은 상태였다고... 너와 친해지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아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당시에 내 마음을 정말 솔직하게 선진이에게 이야기했고 만난 지 2년이 지나고서야 우리는 "친구"가 됐다.   


내가 손 잡으려 할 때 선진이는 내 손을 피해 거리를 두었고, 내가 뒤돌아 떠나려는 순간 선진이가 내 손을 잡아 이어진 관계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뒤돌아 떠나려고 결심했던 순간 나는 이미 선진이와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애쓰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었다. 

지금은 선진이가 나의 몇 안 되는 절친 중 하나이지만 이 마음엔 변함이 없다. 

여전히 선진이는 좋은 친구고 이 관계를 내 의지로는 깰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선진이가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돌아선다면?...

지난 15년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기에 이런 가정을 할 필요도 없었는데, 최근에 한 달이 넘게 선진이에게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짐작이 가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를 묻고 싶지는 않다. 


에너지 넘치던 학창 시절, 싸우고 삐지고 토라져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화해하고 매일 얼굴을 마주했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손 붙잡을 힘도 의지도, 왜 그러는 거냐고 싸울 수 있는 에너지도 사라져 버린 지금의 나는 그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정류장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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