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테이프"나 "LP"를 사서 "속지"를 보면 "B면" 맨 마지막 곡에 "건전가요"가 여지없이 있었다.
어쩌면 요즘 분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 같은 말일 수도 있을 듯 하나,
사실 이 표현은 불과 30년전 정도 전 대한민국에서 모두가 이해가 가능했던 표현이다.
* 건전가요: 위키
건전가요는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장르 가운데 하나이다.
제4공화국, 제5공화국 때 썼으며, 당시 발표되었던 대중가요 음반 말미 끝 트랙에는 이 장르의 곡을 반드시 넣어야 했다. 노래의 내용은 건전하고 밝지만 이들 내용의 실질적인 공통점은 특정 정권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었다는 것이다. 이 장르의 경우 1988년 직선제가 시행되고 제6공화국이 출범됨과 동시에 더 이상 의무적으로 실리지 않게 되었다.
의무적으로 실어야 했던 만큼,
보통 찍어낸 기성품 같은 "시장에 가면"이나 "아 대한민국" 등을 성의 없게 싣는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리스너의 입장으로는
내 가수의 소중한 앨범의 일부 지분을 차지해버린 "건전가요"가 웬만큼 성가시고 짜증 나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상상해보라.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듣고싶어 없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산 앨범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한곡 한곡 얼마나 소중했을까. 그런 마음에 앨범을 쭉 취해 듣다가, 갑자기 초등(나때는 국민)학교 시절의 국민체조나 군대시절 도수체조 때 들려지던 음악과 비슷한 스타일의 반주가 쿵짝쿵짝 나을 때의 그 느낌.
그야말로 맥빠지는 경험이며, 요즘 말로 "갑분싸"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카세트테이프로 앨범을 듣는 경우,
B면 맨 마지막곡인 건전가요를 스킵하고 싶으나,
스킵해서 A면으로 돌리면 건전가요의 길이만큼은 돌려진 상태로 A면을 듣게 되는 것이니 A면 첫 번째 곡의 코러스나 간주 정도 되는 부분부터 들을 수 있었고,
(보통 A면 첫 번째 곡은 타이틀 곡인 경우가 많아, 어느 부분도 놓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FF 버튼으로 카세트테이프의 맨 마지막까지 돌려서 듣기에도 하루 종일 버텨줘야 하는 "워크맨" 배터리 때문에 쉽지 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놈의 "건전가요" 때문에 생겼던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억지로 "건전가요"를 들으며 의도한 대로 "홍보"나 "세뇌"되어지거나,
형광펜이나 볼펜을 카세트에 끼워 뺑뺑 끝까지 돌려 듣거나,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통 앨범 한 면에 대략 20분 정도의 길이로 기억되는데,
그중 1-2분 내외의 곡들이 대부분이었던 건전가요로 이런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되니,
"건전가요"가 더더욱 싫게, 또 밉게 느껴졌던 것 같다.
건전가요도 때론 좋아요.
그런 반면, 건전가요 마저 듣고 싶게 만드는 그런 앨범도 있었다.
나름 가수가 정성껏 불러 건전가요조차 앨범을 차지하는 당당한 한곡으로 느끼게 해주는 그런 앨범,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이문세 님의 "어허야 둥기둥기"는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노래가 썩 내 마음에 든 것은 아니나,
이문세 님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리워진 건전가요는 굳이 스킵까지는 안 해도 되는 곡으로 생각되어 그냥 들었던 것 같다.
들국화에서 많은 곡들을 작곡했던 최성원 님의 1집("이별이란 없는 거야"라는 곡과 많이 리메이크되었던 "제주도 푸른 밤"이 실렸던)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