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스너", 혹은 "가요 애호가"로서의 나름대로의 내 “커리어”에 몇 차례 “공백기”가 있는데,
그중 가장 길고 암울했던 시기는,
바로 군대에서 소위 말하는 짬이 안 되었을 때일 것이다.
내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있었던 오디오가 없었으니,
내 취향대로의 음악을 찾아 들을 수도 당연히 없었고,
그저, “선임”들이 자기들의 취향에 맞게 내무실에서 크게 듣는 곡들을 내무반 바닥을 치약을 짜가며 청소하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듣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군대에서는 "치약"이 양치질 이외의 수많은 곳에서 사용된다.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당시 히트치던 “가장 핫한 노래”들만 매일 들었던 것이니,
지금으로 치자면,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들의 실시간 챠트들에 있는 곡들만 매일 주구장창 들었던 때일 것이다.
#2. 이 당시 우리 부대에는 휴가 복귀를 할 때면, 당시에 유행하는 CD를 한두개씩 사서 들어가,
내무실에 휴가 복귀 선물을 하던 전통이 있었는데,
당연히 그 당시에 1-2위 앨범을 사서들 들어왔을테니,
내무실의 CD장은 몇년 간의 1위 가수들의 앨범을 모아놓은
히트앨범 창고 같은 곳이었고,
간혹 나처럼 “약간 다른” 취향의 휴가자가 복귀할 때 사온 CD들은,
“전곡이 한번도 제대로 틀어져보지도 못한 채”
CD장 뒤쪽으로 넘겨져 먼지가 쌓여져가고 있었다.
#3. 워낙 짬이 안 돼 내무반 오디오 근처에도 가지 못하던 이등병 시절이었을 것이다. 고참들은 자유를 한껏 느끼는 "자유시간"이었지만 난 "자유시간"임에도, (반)자의에 의해 내무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오디오에서는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고참 한 명이 틀어대는 "핫한 곡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짬이 안 되니 정보가 부족해 가수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곡 제목은 몰라도, 하두 들어서 노래는 마음 속으로 흥얼거릴 수 있는 곡들을 마음 속으로 따라부르며, 난 내무반 정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스타일의 곡이 나온다. 요즘 듣던 곡들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듀엣곡이구나. 우리 내무실에 이런 음악의 CD도 있었던가. 왜 한 번도 고참들은 이런 곡들을 틀어주지 않았을까. 내가 고참이 되면 이런 노래들만 틀어주리라. 뭔가 작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실낱 같은 마음으로 난 일부러 오디오 쪽 근처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한 이삽십여초쯤 했을까? 음악을 튼 고참의 쌍욕이 섞인 거친 저평가와 함께, 이 곡이 들어있던 CD는 CD케이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곡을 무조건 찾아내리라, 그리고 이 씨디를 휴가 때 꼭 사서 들으며, 그 고참의 쌍욕으로 상처받았을 그 곡을 위로해 주리라 하는 결심이었다.
그렇게 간절히 정보를 알고 싶었던 내가 획득한 정보는 "빨간" 빛깔의 CD 케이스의 음반이라는 것 뿐...
#4. 첫 휴가,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음반가게에 가는 것이었다. 강남역의 타워레코드, 그냥 쌓여있는 음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빨간 씨디, 그리고 남녀 듀엣곡, 트랙 상 서너번째 곡이었었고... 이 초라한 정보들로, 난 "그곡"찾기 대작전을 시작했고, 난 결국 이 노래를 찾았고 이 씨디를 사왔고, 남은 휴가를 이 앨범만 들었었다.(물론, 나도 휴가 복귀할 때는 가장 핫한 댄스앨범을 사서 들어갔다.)
#5. 대중적인 히트곡을 몇 곡 남기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 곡은 참으로 깊숙히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요즘 들어도 참 좋은데... 영화 같은 것에 쓰이면 너무도 좋을 음악... 내가 영화나 드라마 관련 일을 한다면, 이 곡은 가장 최적의 장면을 찾아 무조건 삽입했을 것이다. 혹은 이곡을 위한 장면을 만들던지...
내 기억이 맞다면, 모자이크의 멤버 중 하나였던 박문수 씨는 친구들이라는 팀, 박문수 독집 등으로 내가 좋아했었고, 나중에 본인이 불렀던 슬픈추억을 권인하씨께 줘서 히트시키고(시간 관계는 헷갈리기는 하다), 김준범 씨도 작사/작곡을 참 많이 했다. 지금 보니 백경수 씨도 있었나보다. 훌륭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1집, 참 좋았었는데.... 지금은 다들 어떤 음악을 만들고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