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트랙] 오래된 친구 by 어떤날

by 스파씨바


#1.

취미로 모아온 음반들,

그 중 가장 많이 모았던 것은 카세트테이프였다.


LP나 CD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기도 했고,

LP나 CD처럼 거실에 나가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책상 위에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나 워크맨으로 들을 수 있었던 접근의 용이성 때문이기도 했다.


정확한 개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천여개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많아지는 카세트테이프를 보관하라고 어머니가 사주셨던 내 가슴 높이의 "파란들 5단 서랍장"의 각 단을 2층으로 빼곡히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공간까지 썼을 정도이니....


사고 싶은 것들을 사지 않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지 않고

그렇게 용돈을 모아서 몇년간 사모았고,

내가 힘들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나를 다독이던 음악들이 가득한 카세트 테이프들인 만큼,

내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워낙 음악을 찾아듣던 나라, 당시 유명했던 앨범들 이외에도,

아무도 모르는 가수의 희귀 음반들도 많았던 터라,

음악 애호가인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다.



#2.

도저히 공간이 안 나왔다. 좁은 신혼집에 먼지 쌓인 오래된 테이프들이 켠켠히 쌓여있는 5단 서랍장이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참으로 아끼던 소중한 물건들이지만,

공간이 부족한 곳에서 괜스레 주인인 내 눈치를 보고 있느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서,

내가 받았던 감동을 전해주며, 그 감성을 전해주며, 원래의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훨씬 낫겠지 하는 생각에,

정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너무 양이 많아 리스트업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전체 테이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기로 하고,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희귀 음반들은 좀더 잘 보이도록 위치를 조정까지 해가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올렸다.


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구나.

여러 번 나눠팔기도 여의치 않아, 전체를 일괄 구매하는 조건으로, 단돈 5만원으로 가격을 정했다.



#3.

"제가 내일 가서 바로 사겠습니다. 몇시까지 가면 되나요?"

판매 글을 올린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바로 댓글이 달린다.


워낙에 아꼈던 터라, 전체적으로 관리가 아주 잘 된 상태이기는 했으나,

음반 상태나, 희귀음반 등에 대해서는 아예 묻지도 않고 무조건 바로 오신다고 했다.


음악을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겠구나...

내일 판매하며 아끼는 음반 몇개에 대해서는 간단한 설명도 드려야지...

가격을 너무 저렴하게 내놨나...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실, 이별할 준비가 미처 제대로 안 되었는데...

너무도 빨리 이별을 하게 되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잘가, 내 오랜 친구들...

음악 좋아하는 좋은 분께 가는 것이니,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자, 우리.



#4.

다음 날, 약속한 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 한 주차장에서 그 분을 기다리는데,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시면서 파란색 봉고 트럭에서 내린다.


"빠른 구매 감사 드려요. 음반 상태 보여드릴게요. 제가 잘 관리해서, 나쁘진 않을 거에요. 카세트 몇 개 제 차로 가지고 가서 틀어보셔도 되구요"

"됐어요"


음반을 같이 차에 옮기며, 음반 소개를 좀 해드릴까 싶었다.


"아,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 음반이 있는데 설명 좀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5장을 꺼내 주신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출발하신다.


뭘까?


음악이 필요했던 분일까?

카세트 테이프로 다시 판매를 하실려는 건가?

폐품을 모으시는 분인가?


떠나는 트럭의 뒷모습을 보며,

정말로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내 학창시절 나의 전부였을 만큼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수 백개의 카세트테이프를,

만원짜리 지폐 5장에,

정체 모를 분께 판매하고

제법 큰 상실감을 느꼈고,

자신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에 보낸 내 카세트테이프들에게 한껏 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오래된 친구 by 어떤날

https://youtu.be/G7Typ2Adp2U

발매일: 1986.12.10

작곡: 조동익

작사: 조동익

편곡: 조동익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아마도 1986년쯤이었고, 저녁 시간이었으니, 배철수의 음악캠프 전신이었던 손석희 앵커님의 <젊음의 음악캠프>, 혹은 고 박원웅 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스트로 그당시 엄청나게 잘 나가기 시작했던 들국화가 나왔었고, 본인들의 곡 이외에 추천하고 싶은 곡을 소개해 달라는 DJ의 부탁에, "어떤날"이라는 팀을 전인권씨가 소개했었다. 그리고 난, 바로 다음 날 따끈따끈하게 발매된 어떤날 1집을 카세트테이프로 사왔다.


우리나라 최고의 베이시스트 중 한 명인 조동익과,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이병우, 이 두 사람이 만든 팀 <어떤날>.


그 어느 곡도 부족한 곡이 없을 만큼 앨범 전체가 다 좋은 명반 중의 명반,

35년정도 된 앨범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멜로디, 가사, 편곡,

서로 너무도 다르지만, 각 곡들과 최고로 잘 어우러지는 조동익과 이병우의 보컬,

표지부터 속지까지 디자인적인 요소도 그 당시의 다른 앨범들과는 결을 달리한 앨범,

내겐 바로 어떤날 1집이다.


정체 모를 아저씨에게 넘겨진 카세트 테이프들에 들어있던,

어떤날 1집과 어떤날 2집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날 1집의 또 다른 곡,

"너무 아쉬워하지마"의 가사가 떠오르는 날이다.


너무 아쉬워 하지마...

우리의 지친 마음으로 그 전부를 붙잡을 순 없잖아...

너무 슬퍼 하지마 네곁에서 떠나간 모든 걸....

너무 아쉬워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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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ixabay.com/ko/photos/%EC%9D%8C%EC%95%85-%EC%B9%B4%EC%84%B8%ED%8A%B8-%ED%85%8C%EC%9D%B4%ED%94%84-%EC%B9%B4%EC%84%B8%ED%8A%B8-128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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