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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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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적인 성우 씨 Apr 13. 2019

퀴즈가 있어 다행이야

어디다 대고 지적질


몇 년 전 대학에서 단체 카톡방이 문제가  있었다. 남학생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함께 공부하는 여학생들의 얼굴 평가, 몸매 평가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점수와 순위도 매겨졌다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S대, K 등 이른바 명문대 학생들의 대화 수준은 참으로 낯 뜨거웠다. 이후  학교 모두에서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들키지 않았을 뿐 얼마나 많은 학교에서, 또 친구들 사이에서, 그 수많은 단톡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일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번엔 서울 경기지역의 교대를 비롯 청주, 대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대에서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함께 공부하는 여학생들을 외모로 평가해 책자로 만들어 선배들에게 돌렸을 뿐 아니라 노골적인 성적 농담(?) 욕설은 폭력이라 할만한 수준이었다고.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엔 '여학생들을 집단 성희롱한 해당 남학생들이 초등교사가 되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성희롱 가해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예비교사여서, 아이들에게 잘못된 성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옳고 그름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뉴스엔 사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주째 계속되고 있는 모 연예인들의 카톡과 몰카 공유,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성접대 실태를 보자. 누구와 누구를 편 갈라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덜 도덕적이어도 된다고 말하겠나.      


해가 가도 참 변함없이 한결같은 뉴스를 보자니 이젠 화가 나기보다 짜증스러워 TV를 껐다. 그리고 예전 블로그와 카페 등을 둘러보다가 사촌 남동생이 대학생이었을 무렵 썼던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블로그가 한창 핫하던 시절, 사촌들끼리 사이가 돈독한 우리는 가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나이 차가 꽤 나는 막둥이 남동생이 있는데, 사촌들 모두가 '내가 업어 키웠다'고 주장하는, 어릴 적부터 모두의 예쁨을 받던 동생이다. 나는 오랜만에 막둥이의 전화를 받았고,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던 이 놈이 느닷없이 여자 얘기를 꺼냈다.          


동생 : 누나, 키 174에 비쩍 마른 여자애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

누나 : 진짜?? 어떤 앤 데? 어디서 만났어?

동생 : 학교에서 같은 강의 듣는 애야.

누나 : (걱정스럽게) 또 괜히 너 혼자 오버하는 거 아니야?

동생 : (정색을 하며) 아니야. 진짜야.

누나 : 진짜? 근데 키가 174야???

동생 : 응. 걔가 맨발로 다녀도 나보다 크단 얘기지. 진짜 짜증 나.(참고로 우리 동생은 키가 170입니다)

누나 : 짜증은 무슨. 걔가 좋다면 감사하지. 잘해봐 인마.

동생 : (진짜 짜증 나는 말투로) 난 싫어. 키도 크지만, 진짜 약간 별로야.

누나 : 왜, 성격이 영 니 스타일이 아니야?

동생 : 아니, 뭐 딱히 그렇다고는. 성격도 괜찮고, 얼굴은 약간 귀여운 스타일이야.

누나 : 근데?

동생 : 근데 누나, 웃을 때 잇몸이 보여. 웃을 때마다 잇몸이 다 드러나.

누나 : 야, 동생. (가슴 아프지만 솔직하게)

니 키에, 니 얼굴에, 174센티미터 키에 성격 좋고 얼굴도 귀여운 여자애가 단지 잇몸이 드러나는 게 거슬려?? 야, 너는 걔가 보면 온 몸이 거슬려. 온 얼굴이 거슬려. 어디다 대고 지적질이야. 혹시, 미친 거야???

동생 : ... 누나. 너무하는 거 아니야? 어쩜 평생을 동생 외모에 대해 그렇게 말을 하냐.

누나 : (정말 가슴 아프게) 우린 또 인정할 건 인정하잖아. 너 그러다 벌 받는다. 내가 보기에 넌 그 여자애 잇몸이 이보다 더 많이 보여도 감사해야 돼. 그럼, 감사해야지.

동생 : 에이~ 끊어...!!!!               


통화 후 나는 사촌들이 함께 하는 가족 블로그에 위 대화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두 가지 퀴즈를 냈다.          



문제 : 위 대화에서 '동생'의 태도를 나타낸 사자성어로 맞는 것은?     

1. 조삼모사

2. 고진감래

3. 어불성설

4. 진퇴양난

5. 일구이언         

정답 : 3. 어ː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음. 말이 되지 않음.     


문제 : 위 대화와 관련한 예문 중 내용과 부합하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누나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2. 동생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3. 동생은 그녀의 잇몸이 아무리 보여도 감사해야 한다.

4. 동생은 양심이 없다.

5. 누나의 지적은 정확하며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정답 2. 3. 4. 5.          


주말 내내 블로그엔 정답 행렬이 이어졌고, 모두들 웃으며 한 마디씩 했을 뿐이지만 그 어떤 꼰대적 잔소리보다 현실적이고 이른바 '먹히는 지적'이었다. 사촌 동생은 그 이후로 절대 외모에 대한 어떤 평가도 지적질도 하지 않는다. 그저 늘 감사만 한다.


안되면 미리미리 가르치자. 내 아들, 내 동생은 아니겠지 방관하고 웃어넘겼다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괴물이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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