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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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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적인 성우 씨 Apr 30. 2019

다행이야, 손이 두 개뿐이어서.

강박에 대한 고백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의학적인 질환으로 명명되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박은 너무도 흔하고 사소한 것들이라 우리는 이걸 질환으로 보기보단 “예민함”이나 “유난함”으로 보곤 한다.


의학적으로 강박증이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나 장면, 혹은 충동이 떠올라 이로 인해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일정 행동을 하게 되는 질환이다.


예를 들어 큰 이모는 외출하시기 전 꼭 가스밸브를 확인하시는데, 잠겨있어도 밸브를 돌려 열었다가 다시 잠그신다. 그건 내 동생이 문 잠기는 소리를 듣고도 꼭 두 번씩 문을 다시 열어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강박, 확인 강박이라 하겠다.

내 친구 미정과 방송인 노홍철은 줄과 열을 맞춰야만 맘이 편하다고 하고, 사촌오빠는 사물이 정해진 위치에 있어야만, 자신의 룰대로 정리되어있어야만 맘이 편한 정리벽이 있다. 모두 정렬 행동의 일종이다.  

큰 고모는 뾰족한 물건이나 벽에 무엇이든 걸려있는 것에 몸서리치고, 후배의 와이프 중에는 원형 모양이 많이 모여 있거나 같은 모양의 패턴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보지 못하기도 한다. 강박적 생각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일정 수준의 불안과 걱정이 있고 그런 불안감 때문에 특정 행동을 할 수 있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다리미 전원을 끄고 나왔는지 봐달라고 하는 엄마의 경우, 이런 행동 한 두 개를 보고 강박증으로 진단하진 않는다. 강박증은 특정한 행동이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에 질환으로 의심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의 강박은 오염·청결 강박에 속한다. 비슷한 사람들을 지켜본 바 여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먼지를 참지 못하는 사람, 세균을 두려워하는 사람, 끝없이 씻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강박들이 있다. 나는 내 강박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남의 손을 타는” 걸 참지 못한다고 얘기하는데, 예를 들어 이사를 가면 나는 제일 먼저 문 손잡이와 스위치를 닦고 소독을 한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살 때도 제일 아래쪽의 책을 빼서 사고, 마트에서도 마찬가지며, 사 온 물건은 모두 집에 오자마자 바로 알코올 솜으로 닦아낸 후 사용한다. 내 방에서 나 혼자 있는 경우에는 며칠이건 청소를 하지 않아도 전혀 아무렇지 않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버스, 빌딩 의 손잡이, 커피 전문점의 벨 등을 만지는 것은 아주 고역이다. 때마다 손을 씻어야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손가락 끝이 다 갈라지고 거칠어지는 게 날이 갈수록 심해져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선생님은 커다란 돋보기 밑에 손을 넣어보라 하고는 찬찬히 살피더니, “무슨 일 하세요?” 한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하자, “혹시 화학약품에 손 담그는 일 하세요?” 한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럼 하루 종일 물에 손 담그는 일은요?” 한다. 역시 아니라고 하자, “근데 이상하네” 하며 그 커다란 돋보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의사선생님께 나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실 제가, 아주 약.간.의 결벽이 있는데요.”     


그제야 아, 하며 작은 탄식과 함께 돋보기에서 눈을 뗀 의사선생님은 그 이후로는 내 손은커녕 내 얼굴도 보지 않고 모니터만 주시하며 뭔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으시죠? 손 씻지 마세요” 한다.


내가 손을 하도 많이 씻어서 손에 있는 유분과 수분이 다 빠져나간 거라는 엄마의 말이 맞았다. 의사 선생님은 별다른 처방을 할 게 없다며 손을 씻지 않는 게 힘들면 손을 씻은 후 핸드크림을 바르고 면장갑을 끼고 있는 버릇을 들여 보라고 한다. 알겠습니다, 하고 일어나는데 마지막 한마디,

“다음엔 병원 오지 마세요.”

바삐 돌아가는 대학병원에서 너무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뺏었단 뜻일까.  


집에 오는 길에 면장갑을 스무 켤레 샀다. 집에 와서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면장갑을 꼈다. 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살만 했다. 진작 이럴 걸 싶었다. 그러다 택배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내 방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사님이 건네는 택배 상자를 받아 든 순간, 이 장갑은 못쓰는 장갑이 되었다. 남의 손이 탄, 더구나 어느 물류창고에서 누구누구를 얼마나 거쳐온 지 모르는 상자를 만진 장갑은, 내 기준으로 보자면 단단히 오염된 것이므로 더 이상 끼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하루를 지내보니, 아니 오후부터 잠들 때까지 10시간 정도 지내보니, 장갑 여덟 켤레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장갑 스무 켤레를 만원 주고 사 왔는데 일주일이면, 한 달이면 이게 얼만가.


다음날부터 나는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비닐 재질의 위생장갑을 꼈다. 면장갑은 하루 하나씩 쓰고, 위생장갑은 필요할 때마다 바꿔 끼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처음엔 너무 똑똑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이틀을 지내고, 쓰레기통 밖으로까지 수북이 쌓여있는 버려진 위생장갑을 보자, 환경을 생각한다며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그것도 그만두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강박의 강도도 심해진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찰만큼 그 정도가 심한 날도 있다. 샤워를 끝내고 손에 핸드크림을 발랐다. 샤워 전 안경을 닦지 않은 게 생각나 폼 비누로 안경을 닦고 다시 손을 씻었다. 이제 앉으려는데 화장실 불을 끄지 않았다. 불을 끄고 또 손을 씻었다. 잠깐 앉아 있으려니 남편이 비타민을 먹었냐고 챙긴다. 냉장고에 있는 약들을 챙겨 먹고 난 또 손을 씻었다. 공기청정기를 취침모드로 바꾸고도, 핸드폰에 내일 아침 알람을 확인하고도, 나는 한 가지 일이 끝날 때마다 손을 씻었다.


중간에 한두 개는 남편의 손을 빌렸는데도 그 잠깐 사이 나는 몇 번이나 손을 씻었는지 모른다. 나중엔 이런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서 내일도 이지경이면 이번엔 진짜 병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입이 댓 발은 나와 침대 속으로 들어가니, 남편이 눈치채고 토닥이며 말한다.    


"그래, 그나마 손이 두 개뿐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그나마 손이 두 개뿐이어서 다행이지, 사람의 손이 여러 개였으면 어쩔 뻔했냐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그래도 이번엔 상담을 시작해 봐야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얼마 후 오랜 기간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의 가정의학과 선생님께 문의드렸다. 상담을 하면 꽤 오랜 기간이 필요한데, 근본적인 원인이란 게 워낙 복합적인 거라 특정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한다. 결국 상담을 한다 해도 문제가 무엇이라고 딱 찾아내서, 그걸 없애기만 하면 나의 강박도 깔끔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강박을 가진 채로 살고 있다. 예전엔 내 “유난함”으로 남에게 불편을 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들키지도 않게 조심조심 지냈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와 친한 사람들만 만나는 지금의 나는 별 스트레스 없이 내 모습 그대로 지낼 수 있다. 그저 친구들보다 몇 번 더, 조금 더, 오래 손을 씻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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