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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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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적인 성우 씨 May 21. 2019

시녀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자발적 시녀들의 애잔함에 관하여

‘공주병’이란 말은 학창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시녀병’이라는 것도 있는지는 그때 처음 들었다. 모 커뮤니티에서 유명했던 한 사진작가는 개인 블로그에서 유명세를 탄 이후, 책도 출간했고, 유튜브나 학교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했다.


그렇게 인기가  높아졌을 때쯤, 친구의 권유로 알게 되어 나도 그가 주도하는 커뮤니티에 발을 들인 적 있었다. 우린 동호회 보단 더 전문적이라는 그의 강의를 듣는 방법을 택했는데, 유료 강의여선지 온라인에서의 폭발적 반응에 비해 의외로 아주 소규모의 강의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이제부터 그를 ‘전문가’라고 부르자.




첫 수업에서 우린 그 수업이 보통의 강의라기보단 팬미팅에 가까운 수업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몇 안 되는 수강생 중, 그를 좋아해서, 그와 인맥을 쌓고 싶어서, 혹은 그와 쌓은 인맥을 지속하고 싶어서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찍어 나눠보고 얘기하는 수업이었는데, 그중엔 사진을 아예 찍지도, 가져오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전문가의 옆 자리에 앉아 그의 말에 동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한 말을 다시 되짚는 질문만 하다 수업을 끝내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전문가는 진짜 전문가는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곤 했는데, 지난주 자신이 한 말과 정반대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칠판에 적어가며 강조했던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오류'를 일주일 만에 자신이 스스로 범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의아해하기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는 그들, 시녀들은 지난주와 모순되는 수업 내용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직업도 학력도 번듯한 그들이 정말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번째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물었다.

“그 사람, 왜 나오는 걸까? 사진 수업인데 사진은 찍지도 않고, 남의 사진에 대해선 내내 전문가 말만 따라 하고 있잖아”

시간 낭비처럼 보였다. 적은 나이도 아니었기에.

친구는 말했다.

“아마 수업 끝까지 그러다 말지 않을까 싶어. 애초에 강의를 들으러 온 게 아닌 거 같으니까”

“아무리 팬이어도 그렇지,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거면서 왜 수업을 들어? 동호회에 가면 되지.”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시녀병이겠지, 뭐”     


시녀병(하녀병)이란 말은 그때 처음 들었다. 공주야 되고 싶어서 병에 걸렸다지만 시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나. 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시녀병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주로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에게 불만족한 사람이 겪게 되는 병이라고 했다.

 

셀럽들의 곁엔 항상 시녀들이 있는데, 낮은 자존감 때문에 논리나 이해와 상관없이 공주의 기분을 맞추려고만 노력하고, 무엇보다 공주의 '눈에 들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게 그들의 '주된 일'이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공주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을 옆에서 함께 누리고, 거기에 자신들도 일조했다고 믿으며 자존감을 높인다고. 


내가 본 시녀들이 동호회에 가지 않고 굳이 유료 강의를 듣는 것 또한 동호회에 있는 수많은 팬들보다 전문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사진은 찍지도 않고 배울 마음도 없으나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전문가에게 자신의 '충성도'를 더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녀들 덕분에 수업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수업과 다른 말을 할 때마다, 전문가의 말에 오류가 발견될 때마다, 앵무새처럼 그 말에 동조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쉴드를 치는 시녀들 덕분에 그 수업은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역량보다 훨씬 더 수준 낮은 수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문가 역시 그걸 인지하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문가이긴 하지만 초보강사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공주와 시녀의 합이 찰떡으로 잘 맞아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는 게 그들에게만 보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녀들은 자신들이 꽤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지, 전문가를 위해 치는 쉴드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지는 않도록 나름 머리를 쓰곤 다. “어머, 저도 똑같은 거 경험한 적 있는데”라며 문가의 오류를 상쇄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인양 다른 얘기를 덧붙이기도 하고, 내용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맥락과 상관없이 전문가가 원하방향의 말만 하기도 하면서. 그걸 즐거움으로 보람으로 생각한다니 할 말은 없다만, 그렇담 그 의도를 남들에게 빤히 들켜 서로가 민망한 상황은 되지 않게 진짜 머리라도 좀 좋으면 좋았으련만.

  

전문가가 자신의 수업에 대해 철저한 준비만 되어 있었더라면, 사람인지라 할  있는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려아니 고민하려는 태도만 보였더라도, 수업과 상관없는 시녀들의 쉴드를 제지시켜 자신의 수업을 스스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었더라도, 전문가는 그의 능력만큼,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더 발전하는 수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잠시나마 인기를 누렸던 수업 결국 얼마 가지 못했다. 안 좋은 뒷말만 남긴채. 점점 수강생이 줄었고, 부실한 수업 내용에 대한 항의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나는 갑자기 유명해진 커뮤니티라든가, 검증되지 않은 너무 소규모의 강의는 절대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물론 그 다짐은 종종 지켜지지 않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커뮤니티에 굳이 가지 않아도 새로운 사람들은 만나게 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결이 다른 시녀병도 보게 되는데, 모든 시녀가 자존감이 낮거나, 상처가 많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내면에, 혹은 그들도 모르는 무의식 속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들이 원하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만 철저히 시녀노릇을 하는 그들은 못 배운 사람도, 없이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전문가(셀럽)'와 친해지고 싶고, 인맥을 쌓고 싶고, 그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과한 사람, 그게 사랑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감정이 '과잉'인 사람. 그리고 돌아서면 자신이 공주가 되어 자신을 떠받들어 줄 시녀를 원하는, 이중적인 사람일 경우가 많았다.      


친구나 동료라는 명목으로 시녀들을 거느리고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는 공주들에게도 원죄가 있겠으나, 공주에게만 납작 엎드리고, 돌아서선 다른 시녀를 거느리고 싶어 하며, 무엇보다 공주 외의 사람에겐 무례하길 서슴지 않는 이중적 그들이 더 재수 없다고 하기엔, 또 너무 불쌍하고 애잔하다고 하면 이것도 이중적인가.


아예 자신이 시녀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걸 행복으로 여기다 가면 다행이겠으나, 결국 우린 시녀병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질받는 그들을 목격하게 되고, 때론 50이 넘은 나이에 더 이상 '시녀 짓'이나 '박수부대'는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하며 뒤늦게 열등감 폭발하는 선배들도 보게 되니, 이게 보통 일은 아니구나 싶기는 하다.      




잘 보이고 싶은 전문가(셀럽)에게 필요한 동료라고 인정받기 위해 강박적 노력을 하든, 자기희생을 수반한 소모적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며 어리석게 시간을 낭비하든, 남의 인생에 더 이상 무슨 사족을 더하겠나. 나와 내 지기들이 그들과 다르게 살고 있음을 감사할 뿐.


다행히 자라면서 큰 결핍 없이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다행히 머리 커가면서 만난 친구들이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다행히 사회에 나와서 알게 된 선배와 동료들이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얼마일지 모르는 인생의 남은 한두 시간도 아깝게 소모하지 않고 있으니, 기껏 키워주신 부모 앞에, 늘 함께 곁을 지켜온 친구와 동료 앞에,      


시녀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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