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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Feb 21. 2019

7. 축제를 기다리며


봄이 오면 지역축제로 꼴뚜기와 갑오징어 축제가 열린다. 이름하야 ‘꼴갑축제’. 어느 공무원이 지었는지 이름 한 번 잘 지었네. 꼴뚜기는 살짝 데쳐 먹어도 되지만 싱싱할 때 회로 먹어도 아주 달고 맛있다. 꼴뚜기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만 한다면 끝없이 계속 집어먹게 되는 별미. 갑오징어도 살짝 데쳐 먹으면 초고추장 없이 그냥 먹어도 짭짤하면서 쫄깃한 맛이 있다. 주꾸미도 이때가 철인데, 알이 꽉 찬 주꾸미를 맛보려면 4~5월을 놓치면 안 된다. 주꾸미 알은 꼭 밥알처럼 생겼는데 씹다 보면 꼬순 맛이 배어 나온다. 처음엔 샤부샤부로 먹다가 막판에 먹물을 터뜨려 칼국수까지 말아 먹으면 당분간은 주꾸미, 낙지, 문어 생각이 절대 나지 않는다. 가을에는 자연산 전어 축제도 있다. 전어는 뼈째 썰어 회로 먹기도 하고 통으로 구워 먹기도 하는데,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만 돌아오는 게 아니고 온 동네 고양이들이 죄다 모여들어 아주 난리가 난다. 잔가시가 조금 거슬리긴 해도 고소하고 기름진 맛에 가을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한참 전어 철이었던 가을, 10년지기 고등학교 친구들과 부모님 집에 놀러갔다. 맑은 공기, 다락방이 있는 이층 집, 귀여운 강아지 네 마리, 야외에서 구워 먹는 바비큐라니. 회사생활에 쩌든 직장인들(심지어 당시 한 명은 고시생이었다)에겐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1박 2일이었다. 잔뜩 들뜬 상태로 용산역에 모여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역에 먼저 도착한 한 명이 간식거리를 사놓겠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용산이 아닌 서울역 빵집에서 유유히 빵을 고르고 있었다는 아찔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전설같은 스토리.


부모님은 알찬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 도착하자마자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굴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지역 특산품인 한산모시 박물관에 들렀다. 할아버지들이 입는 삼베옷이네, 했는데 가격을 보고 다들 0 하나를 잘못 붙여서 봤나 하고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모시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아주 비싼 옷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 추노 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에서는 관광객 냄새 잔뜩 풍기며 이병헌 사진 옆에 서서 다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저녁에는 집 앞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선선한 저녁바람에 살랑거리는 들꽃을 구경하며 오리고기도 먹고, 산낙지도 먹고, 제철인 전어도 잔뜩 먹었다.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구운 전어는 겉 껍질은 꽁치구이처럼 바삭하면서 속살은 야들야들하니 배가 불러도 계속 들어갔다. 친구 머리카락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 겁 없는 작은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한 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미친듯이 헤드뱅잉을 해도 머리카락을 동아줄 삼아 꽉 잡고 안 떨어지던 개구리는 황당하게도 젓가락에 잡혀버렸다. 나무 젓가락에 잡힌 개구리를 잠시 구경하다가 풀밭에 놓아주었다.


배가 터지게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강아지들과 동네산책을 했다. 사실 산책을 나서기 전에 혼자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 동네에서 ‘개’는 보통 앞마당에 묶여있는 존재이고 백구 아니면 황구 아니면 흑구가 전부라서, 오종종한 요크셔테리어와 푸들이 시골길을 산책하는 장면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옷까지 입히면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하는 거의 서커스 수준의 볼거리. 그치만 그 날 친구들과 함께 우리집 강아지 네 마리는 당당히 논두렁을 걸었다.


다락방에 대자로 누워 낄낄대면서 ‘우리도 나중에 알록달록한 등산복 입고 다 같이 단풍구경을 가게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진중하게 토론하고는 했는데, 이제 슬슬 주꾸미 철이네, 새조개 나올 때네, 빨리 가을이 와서 대하 먹었으면 좋겠다, 하고 제철음식으로 한 해를 기획하고 정리하게 되는 걸 보니, 등산복 입을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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