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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Apr 09. 2024

계획대로 흘러가면 여행이 아니지!

실패라는 커다란 이름 뒤의 과정

아이들과 2박 3일간 부여 여행을 다녀왔다. 요즘 개근을 하면 개근 거지라고 한다고 했던가. 아이들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지만 00 이는 학교 쉬고 여행을 다녀왔단다. 00 이는 제주도에 다녀왔단다. 00 이가 나보고 "아직도 비행기를 못 타봤어?"라고 했다. 등등 

여행에 대한 아이들의 요구는 항상 있었다. 


나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극도에 달하여 어디든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여행을 서둘러 잡아보라고 했고. 2달 전 특가로 나온 부여의 유명 리조트를 예약했다.


사실은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기에 강원도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특가에 눈이 먼 나는 계획과는 상관없이 덜컥 부여로 숙소를 잡고 말았다. 남편은 당황했지만, 역사 탐방 여행도 좋다고 내가 우겨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이번 여행은 부여로 정해졌다.


장소 선정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았었다는 걸 지금 발견했다. 2달 전부터 신난 나와 아이들에게 갑자기 여행 3주 전 남편이 휴가를 못 낼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다. 


나는 살짝 "주일날 교회를 안 가고 출발할 계획을 세워서 인가?"라는 생뚱맞은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건 차선책으로 기차와 고속버스를 예매하고 대대적인 계획 수정을 하고 새로운 루트를 선정하는 등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다. 다행히 휴가가 수락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결국 장소 선정부터 출발 전까지 계획이 조금씩 어그러진 부분이 있었지만 여행의 묘미는 거기에 있지 않겠는가?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점.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하지만 계획성이 철저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상황이 온다거나, 혹은 행복한 일이 생기면 차후에 생길 나쁜 일을 생각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 뒤에 있을 더 나쁜 일을 생각하는 극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먹으며 생긴 변화는 그것이 인생을 크게 나쁜 쪽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전전 긍긍하지 않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처리하면 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게 되자 어떤 상황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내가 떠난 여행 중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냥 대충 정한 대로 움직이고 식사도 주변에 맛집으로 소문난 곳 중 갈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대로 가고 일정도 컨디션에 따라서 다녔다. (하지만 첫날 10킬로 걸었다는 것은 비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구토를 한 둘째 때문에 일정이 좀 늦어지자 아이는 불안해하고 울기 시작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며 우는 아이의 모습에서 미안한 모습을 봤다. 

아이에게 건네줄 수 있는 나의 가장 큰 위로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였다.


네가 토할 것도 길이 막힐 것도 일정 전체가 약간 어긋나는 것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거기에서 그냥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고. 엄마 아빠는 언제든 그 뒤에서 기다릴 수 있다고.


나에게도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저 과정일 뿐이니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그러고 보면 실패가 어디 있을까? 실패라는 커다란 이름 뒤에 가려진 과정이라는 순간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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