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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써 봄 Jun 26. 2024

산후 조리원의 서열

천국 아닙니다.

조리원 출산을 하기 전 가장 기대되는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조리원에 갈 때일 것이다. 

다들 조리원은 천국이니 두고두고 누리고 오라고 하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조리원을 고르는 것은 마치 예식장을 고르는 것과 비슷했다. 후기가 많아야 할 것,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살펴볼 것, 밥은 잘 나오는가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다지 꼼꼼하지 않은 나도 열심히 검색한 뒤에 우리 집 형편에는 조금 버거운 조리원을 선택했다. 그곳을 선택한 것은 딱 한 가지. 식사가 개인 방에 제공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랍스터 유후~

내성적인 나로서는 몹시 끌리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밀어붙였고 임신 시절 서운하게 하면 평생 간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었던 남편은 오케이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사랑은 자연분만과 모유라는 재미있는 생각을 가졌던 임산부 시절. 모유는 다 나오는 것이니 그냥 주면 된다는 생각이 나의 큰 착각이었다는 것은 조리원에서 곧 알게 되었다. 출산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잠긴 수도꼭지처럼 모유는 좀처럼 나올 기미가 없었다. 아이는 수유할 때 모유를 주면 젖꼭지를 퉤! 뱉어내며 온몸으로 나를 거부했다. 초보 엄마는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누가 조리원이 천국이라 했던가. 조리원은 초 산모에게는 천국이 아니었다. 절개된 회음부 때문에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수유 실장님의 전화를 받고 불려 간 수유실은 비명이 난무하는 무서운 곳이었다.      


수유 마사지를 받고 모유가 돌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젖을 빠는 아이는 서툴러 먹지 못하고. 주는 나의 자세는 엉거주춤한 데. 꽉 찬 모유를 아이가 먹질 못하니 통증이 엄청나다.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면 내 생각과는 달리 30분을 유축해도 버릴까, 싶을 정도로 바닥에 깔린 모유에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수유실에는 모유를 모아놓는 바구니가 있는데 산모의 이름을 적어 유축된 모유를 넣어둘 때 모유가 적은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서둘러 뛰어나왔다.     


문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젖병을 가득 채워온 산모와 마주할 때면 어깨가 좀 더 움츠러든다. 조리원의 서열은 나이순이 아니라. 모유 양의 순이다.     


모유의 양이 모성의 양과 같다고 여겼던 초보 엄마 시절. 방으로 돌아와 남몰래 눈물 흘리던 30살의 엄마는 이제 42살이 되었다. 이제는 내 품을 멀어져 가는 그 아이에게 오늘도 사랑을 건네 본다.


카드만 주면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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