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잘 살아요.
오전 4시 14분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어제처럼 3시경부터 잠을 설치고 4시에 몸을 일으키며 '오늘도 갓생 살고 있군' 속으로 생각했지만 4시는 좀 피곤한 시간이긴 하다. 어제도 운동도 못했고, 잠시 30분은 잤으니 말이다.
예전 같으면 계획했던 바를 지키지 못한 나에게 끝도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들었을게다.
과도한 죄책감, 무리한 책임감, 언제나 내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던 불안함
나에게 오는 우울증은 그런 형태로 나타난다.
언제나 불안했다. 나쁜 일이 있으면 불안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나쁜 일을 생각하느라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책임들은 모두 회피하고 싶었다. 그것이 주는 중압감은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삶을 갉아먹은 것은 출산 후였다. 첫아이와 조리원에 있는데 문득 '이 조그만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생명이란 게 그리 쉬 끊어지는 게 아니건만 그 당시에는 무섭고 떨렸다. 방에 앉아 밥을 먹으며 드라마를 볼 때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냥 나는 눈물 얼마 후 비 이성적인 사고가 저절로 드는 게 우울증일 수 있다는 말에 '산후 우울증'이구나 했다.
그러나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아는 우울증이란 하루종일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엄마, 설거지가 산처럼 쌓여있고, 아이들은 방치되고, 자신감 없는 작은 목소리,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들 그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키웠고, 목소리도 밝고 쾌활했다.
세 아이를 낳았고 참 씩씩하게 육아를 했다. 쌍둥이 육아가 처음엔 눈물 나게 힘들었지만, 조금 키우다 보니 두 녀석의 애교도 귀여웠고 콩나물처럼 쑥쑥 커가는 그 아이들이 마냥 대견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좁은 집에 넷이 복작이며 많이도 화를 냈고, 울었다. 감정의 쓰레기통 마냥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괴물같이 무서웠을 아이들
지구의 일은 참았던 우울증을 폭발하게 했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자괴감, 죄책감등이 섞여 신체화 증상이 나타났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돌덩이가 하나 얹어진 그 느낌.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순간이 오자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온 국민의 정보통 맘카페에서 평이 좋은 정신과를 방문한 날 '나는 정신과를 두려워하지 않아'라는 쿨한 마음으로 찾아갔건만 문 앞에 서니 '왜 왔냐고 하는 거 아냐? 지극히 정상이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간단한 문진과 체크를 마치고 나온 진단은 '우울증' 선생님께선 "노동을 많이 하면 관절이 약해져서 쉬어야 해요. 뇌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뇌신경이 약해져 있는 거니 회복하면 돼요"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약을 처방해 주셨다.
작은 알약 세알이 도움을 준다니 약간 허탈했다. 나약한 자신에 대한 현타랄까?
그런데 그 아이들은 슈퍼파워였다. 복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속에 있던 돌덩이들이 사라지고, 파도가 치지 않았다. 화는 났지만 그것이 자신을 잠식하지 않았다.
남들은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니? 이 상태라면 그냥 평생 약 먹고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삶의 질이 올랐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면 환한 얼굴로 "어서 와요"라고 해주시는 선생님
"힘든 일은 없었어요?"라고 물으시고 이야기들에 경청을 해주시는 분 아이의 정신과 선생님이 전적으로 아이 편이셨다면 나에게도 편이 하나 생겼다.
그 후로 3년. 아직도 우울증 환자지만 그냥 별일 없이 산다. 화도 냈다가, 짜증도 냈다가 애들이랑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예전엔 이런 내 삶이 한없이 불만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냥 이것이 인생이려니 한다.
누군가 마음속 괴로움에 지쳐있다면 용기를 내어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정신과는 해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