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얘기예요.
뚝방에 살았다. 셋집이 옹기종기 살던 무허가 건물. 옆방엔 혼자 사시는 아저씨, 가운데 우리 집, 태균이 오빠네 이렇게 세 가구가 살던 곳.
푸세식 화장실 가는 길은 어둡고, 쌓인 연탄은 숨이 막히게 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끝없어 보이는 뚫린 변기. 빠질까 두려움에 휩싸여, 아주 급할 때 아니면 갈 수 없었던 화장실. 세 가구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그 화장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초2까지 살았던 그곳에서 변비를 얻었다. 꾹꾹 참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무서운 화장실은 학교 화장실도 마찬가지였기에, 편안한 배변 활동을 돕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화장실에 대한 강박이 생긴 것은 그 때문이다. 집 밖에서는 소변 외에는 참는 버릇 때문에 3박 4일 가는 수련회에 가면 빵빵한 배를 부여 쥐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쌍둥이가 다니는 학교는 내가 초2까지 다니던 곳이다. 뚝방길을 걸어 도착했던 학교. 내가 다녔던 학교에 아이가 다닌다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다. 다시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곳. 내가 등교하는 것처럼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학교의 첫인상은. 그대로네? 였다. 난간도 그대로. 복도 바닥도 그대로. 외관은 조금 변했으나 35년 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은 당황스러움을 주었다.
학교는 내가 다니던 당시에도 꽤 오래된 학교였는데, 세월의 흐름만큼 온통 조각도로 팬 책상을 쓰다가. 전학 간 학교에서 흠집하나 없는 책상을 보고 문화충격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학교의 풍경은 나를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고. 그 시절 흔적이 있는 난간이 왜 불편했는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지구와 같은 2학년 시절 할머니처럼 보였던 담임은 노골적으로 촌지를 바라던 교사였다. 1학년 선생님께 사랑받고 2학년에 올라갔던 나는 나름대로 똘똘했지만 자기 자리 정돈도 잘 안되고, 글씨도 개발 새발 쓰던 (지금 생각해 보면) 산만한 아이였다.
빨간 줄이 좍좍 그어진 일기장을 받아 들고, 수업 시간마다 지적을 받는 생활은 1학년때 칭찬만 받던 삶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점점 소심한 아이가 되어갔다.
어느 날, 동그란 연필이 자꾸 떨어졌다. 한번, 두 번 자꾸 떨어지는 연필을 줍지 않을 수는 없어서 연필을 주우려 허리를 숙였는데.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척추의 통증이 느껴졌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얇은 나무 막대기로 내 등을 때린 담임. 그날의 공기, 분위기, 수치스러움, 숨이 막혔던 경험. 35년 동안 절대 잊히지 않았던 그날.
펑펑 울며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무허가집 사는 우리 형편에도 부랴부랴 봉투를 준비해서 학교로 찾아갔다.
그날 이후의 생활은 모두의 예상대로, 평온해졌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주변에 사는 아이들의 형편도 다들 비슷했을 텐데 꼭 거기서 그렇게 돈을 바라야 했을까? 아직도 의문이 든다. 지구 담임 경력이 32년이라고 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교사였을 그녀. 촌지가 당연하고, 폭력이 당연했을 시절 교사를 했었을 그 사람.
마음속 불편함의 연결 고리가. 오늘에서야 풀렸다. 같은 2학년 비슷한 학대를 겪은 나와 아이. 학교 나무 난간이 손톱밑의 가시처럼 아파 보였던 이유를 알게 되니 후련해졌다.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놓아줄 차례이다. 그 시절 나는 잘못이 없다. 연필이 떨어지면 잃어버릴까 봐 염려했던 순수한 아이였을 뿐.
아침에 지구가 일어나면 뜨겁게 안아줘야겠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