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라.

by 마음 써 봄

나는 화장도 꾸밈도 전혀 없이 다닌다. 아니 다녔다. 빛나도록 아름다운 20대 시절도 그랬다.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한 옷만 입고 다니는 나를 엄마는 매우 못마땅해했다.


물론 직업적 요인도 있었다. 아이들과 얼굴을 비비고 살아야 하니 화장을 안 하는 것이 더 좋긴 했다. 철퍼덕 앉아 아이들과 놀아야 하니 치마보단 바지가 편했고.


하지만 그건 핑계다.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꾸몄는데 안 예쁘면? 나는 콤플렉스가 많았다. 굵은 허벅지도, 튼실한 종아리도. 쌍꺼풀 없는 눈도, 작은 키도 모든 것이 별로였다.


'나는 외모에 관심 없어.'라는 자기 합리화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다. 관심이 없어서 안 한다는 건 좋은 핑계였으니까.


엄마들이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더 안 한다고 한다 왜냐면 열심히 했다가 결과가 안 나오면 바로 '바보인증'이기 때문이란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나왔을 때의 실망감을 노력을 안 함으로써 감추는 마음 백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시절에 빠진 것은 '나'였다. 나에게는 '내'가 없었다.

끝없는 비교와 불만, 불평들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비겁하게도 남 탓으로 돌렸지만.


아마도 나의 우울은 꽤 오래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일로 폭발적으로 나왔을 뿐.


우울증 약을 먹고 제일 먼저 머리를 자르고, 파마와 염색을 했다. 미용실 가는 비용이 아까워 계속 기르고 있던 머리. 가슴까지 오던 머리가 어깨로 잘리던 그 순간 이전의 삶도 함께 잘려 나갔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본능적 노력이랄까.


두 번째로 한 일은 눈썹 반영구와 속눈썹 연장이었다. 두 가지만 해도 화장을 한 효과가 났다. 눈썹연장은 서너 달 받고. 망가지는 눈썹에 그만두었다.


세 번째로 한 일은 네일 아트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예뻐진 손톱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까지 꾸준히 받으며 한 달에 한번 힐링 시간을 갖는다.


결과론적으로 예뻐졌냐? 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나를 챙긴다는 것이 좋을 뿐. 남들에게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노력=결과 가 되면 가장 좋다. 그런데 결과가 없으면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걸까?


결과에 따라서 노력한 시간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몸에 남아있는 노력의 흔적은 언제고 다시 나와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자신의 삶을 잘 꾸려 갈 수 있는 재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발휘하게 하는 힘은 바로 '나' 그리고 '나를 돌봄'에 있다.


나를 돌보는 도구는 다양하지만 요즘은 글쓰기를 이용한다. 글쓰기에서 나오는 강력한 돌봄은 요즘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오늘 아침 나와 아이들에게 한마디 건네본다. 어제도 수고했어. 오늘도 잘 살 거야. 너에게는 네 삶을 꾸려가는 '재능'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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