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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Jun 29. 2022

_간이역과 폐철선-3

: 네번째이야기.




2014년, 27살


   봄 학기가 끝났다. 여자 친구는 이번 여름방학을 뉴욕에 있는 친척집에서 보낸다고 했다.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그 시간이 네게 자주 오지 않는 좋은 기회라는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출국 날이 다가왔고 나는 너의 집 앞으로 갔다. 우리는 앞으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잠시라도 시간을 멈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상상도 잠시, 떠나야할 순간이 다가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있는 힘껏 앉아주며 나의 온기를 전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너를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홀로 침대에 누웠다. 한참동안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 듯 현실을 지각했다. 

"이제 내일부터 뭐하지?"



  

   어느덧 20대 중반이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스무 살 같다. 철없이 꿈꾸며 공상 속에 빠져 살고 해야 할 것도 잘 안하면서 하고 싶은 것만 많다. 20대 초반의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하다가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내 나이를 실감한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친구들과 이제 돈이나 직장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맞닥뜨리며 사회에 막 적응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불안한 내가 있다.

   불안한 마음은 항상 내 시선을 집 밖으로 돌리게 했다.  그러나 도시라는 거대한 숲,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층빌딩들 속에서 난 또 다시 갈 곳을 잃는다. 마음을 잃는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내 의지대로 한걸음 내딛기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이리저리 치이다가 문득 주변사람들을 둘러보면 약속이라도 한듯 모두들 무표정의 차가운 얼굴들. 그들은 보란 듯이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음으로써 애초에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주제는 사랑과 자유일 텐데 정작 그들의 선택은 현실에의 속박, 모두들 앞만 보고 걷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항상 왜 이렇게 바쁘고 반복되는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냐고 투덜대며 매일 여유 있는 즐거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이런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막상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일상생활을 핑계로 아쉬워한다. 거짓말을 한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불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현실의 쾌적한 틀에 속박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하는 것이지 예측 불허한 삶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삶을 이른바 ‘안정된 삶’이라고 부른다. 이 사회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안정된 삶’을 강요한다. 유형화된 행복과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학습시키고 사회적 성공과 그에 따른 보상을 홍보함으로써 다양성이 아닌 제도화된 삶을 지향한다.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방향으로부터 벗어난 자신의 불안한 모습을 참지 못한다. 다수가 공감하는 사회적 기준과 실제로 본적도 없는 성공사례들을 들먹이며 자신의 욕망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다. 애써 외면한다. 

   그렇게 꿈 대 현실의 줄다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편에 선다. 물론 여기에 정답은 없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 이렇게 누군가 닦아놓은 길만을 걷는, 이른바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형태로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 아니, 오히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꿈을 좇는 사람을 바보취급하며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너도 언젠간 변할 거라며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실패와 불안함을 감추고는 자존심에 목소리를 높이는 비겁한 사람들이 싫었다. 비록 허상일지라도 나는 매일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남들이 앞만 바라볼 때 나는 목표를 바라본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었을 때 느껴지는 그 순간 순간의 희열!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함과 고독함으로 가득한 외로운 싸움이지만 그렇게 힘들고 좌절하고 절망할수록 나는 절실한 무언가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꿈인지 허상인지 모를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자신의 불안과 맞서는 것도 결국 모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그러나 행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은 행복을 대단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앞에 놓인 행복을 알아채지 못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로 평가된다. 그 결과 행복 역시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견뎌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돈 많고 능력 있는 소수만이 도전하여 쟁취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나는 이번 여름, 다시 한 번 기차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홀로 있는 지금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나만의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책장 속에 갇혀있었던 간이역 여행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동안 도전해보고 싶었던 여행지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번에 떠나려고 하는 곳은 폐철선이다. 단어 그 자체가 갖는 의미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다양한 잡지에 소개된 아름다운 풍경과 직접 마주하며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신비에 경탄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운무가 흐르는 깊은 산속 사찰의 툇마루에 앉아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냄새를 맡으며 느긋하게 눈을 감고 졸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스란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의 한 카페에 앉아 달콤한 음료를 하나 시켜놓고 평소에 읽기를 미뤄두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폐철선을 가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폐철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 또는 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폐철선은 말 그대로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공간이다. 하지만 쓸모없다는 표현자체가 사실은 주어의 판단기준이 작용한 편향된 시각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합리와 이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를 ‘쓸모’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좋은 것들이 사실은 좋아 보이는 것일 뿐 실상은 거짓된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는 그 사실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그러한 사람들 중 한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외면했던 것들이 사실은 새로운 가치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쓸모없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가 내가 발견한 것들을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다시 발견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내가되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낸다면 언젠가는 하나의 흐름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는 간단한데 그냥 내가 믿고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태도 혹은 방식 때문이다.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오직 두 다리만으로 직접 대지 위를 힘차게 걸어 나갈 때 나는 일상에서 얻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앞으로의 나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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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산역에 도착했다. 원래는 통리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그곳은 이미 폐역 처리가 되어서 열차로는 갈수 없는 곳이 되었다. 사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존의 통리역에서 이루어지던 모든 업무가 이곳 동백산역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텅 비어있는 역사 안에는 우렁찬 매미울음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용히 역을 빠져나온 나는 일단 통리역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버스를 타기에는 애매한 거리였다. 오후에는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하늘이 제법 파랬다.

   한참을 걷다보니 도로를 따라 걷는다는 게 알고 보니 철길을 따라 걷는 것이기도 했다. 나무에 가려서 잘 안보였는지 우측 낮은 언덕 위에는 철로가 놓여 있었다. 문득 자동차와 기차가 다니는 길 사이에서 두발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 도로에는 보행로는커녕 갓길조차 없었기에 나는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차선 위를 걷고 있었다. 

   주변에 볼만한 것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나쳤던 풍경의 절반정도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지였고 나머지는 갈 곳을 잃어버린 건축자재들이 아무렇게 쌓여있거나 아니면 잡초로 가득한 땅위로 딱 봐도 쓸모없어 보이는 돌덩이들이 쓰레기들과 함께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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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가 아닌 도보로 도착해서 그런 것인지 통리역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볼품없는 초록색 어닝 아래에는 무언가가 잔뜩 붙어있는 유리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애초에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버려진 창고 같은 느낌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역사 내부에 들어가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역 주변에는 역시나 문이 닫혀있는 상가들로 가득했다. 비닐 따위로 가려진 유리창 안쪽은 아무래도 오래전에 인적이 끊긴 듯했다. 여관이나 머리방, 소주방과 같이 오래되어 버려진 단어들이 적힌 간판이 여전히 걸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도시재생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들과 함께 어서 이곳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되기를 바라는 바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제는 열차도 서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버려진 역사 하나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선뜻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길을 따라 서있는 남루한 시멘트담장 안쪽으로 무성한 잡초들에 가려진 철로가 보였다. 어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자갈 따위의 공사자재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본래 여기서부터 폐철선을 따라 이동하려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도로로 이동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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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곧바로 폐철선으로 진입했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에는 잡초들이 무성하다. 오래된 콘크리트 전봇대를 하나둘씩 세어가며 걷다보니 어느새 나 홀로 이곳에 서있다. 눈앞은 험준한 산줄기로 가득하고 양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뻗어있는 선 위로 오롯이 서있는 내가있다. 지금의 기분을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오와 열을 맞춰서 서있는 사람들 틈 사이를 나 혼자 빠져나와있는 기분? 아니면 모두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나만 번쩍하고 일어난 느낌? 이것은 일종의 짜릿한 해방감 같은 것인데 단순히 일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새로운 느낌을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잔뜩 신이 난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철로 위를 걸었다. 침목을 하나씩 밟아 건너기도 하고 선로위에 올라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처음 보는 표지판이 보이고 곧 눈앞에 터널이 나타났다. 정말로 새까만 터널이었다. 그곳에는 존재하는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핸드폰 불빛을 믿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열걸음쯤 걸었을까?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새까만 어둠이 나의 온몸을 휘감았고 그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무서워졌다. 핸드폰 불빛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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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그곳에서 도망치는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다시 건널목으로 돌아온 나는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도망쳤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번 여행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버려진 터널은 말 그대로 버려져있었을 뿐이었고 그 안에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자연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에 대해 감상적인 정서를 이야기하고 색과 비례와 조화로움을 찾아내며 아름다움을 찬미하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잠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던 나는 다시 한 번 도로를 통해 심포리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사이 하늘에서는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오지 못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야 했다. 그 이외에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커다란 철문이 굳게 닫힌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창문이 덜렁거리는 폐가들이 보였다. 길가에는 유리가 깨진 진열장이나 삭아서 흐물거리는 널빤지 등의 버려진 것들로 가득했으며 길을 따라 흐르던 실개천은 근처의 공장이라도 있는 것인지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잿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사실 이 길을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이나 도망칠 수는 없었고 그곳에 무엇이 있든 일단 한번은 끝까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걸었던 이 길의 끝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도로를 가로질러 걸려있는 녹슨 쇠사슬이었다. 더 이상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 그 너머에는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한 흔적들이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돌아서는 나의 뒷모습은 분명 초라해보였을 것이다. 비에 젖은 배낭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고 내 주변의 모든 낯선 것들은 호기심이 아닌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내리던 빗방울로도 실개천의 물빛은 맑아지지 않았고 음산한 회색구름들은 여전히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시야가 좁아진 나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체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었다. 어차피 길은 하나밖에 없었고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도계역까지 걸어야했다. 버스를 탈 수도 있었겠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원래 가려고 했던 나한정역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곳 또한 내가 지나온 곳과 다르지 않았다. 판자촌을 방불케 하는 거뭇거뭇한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오래전에 비워진 듯 했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공사판의 모래더미들 사이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역사가 보였다. 철로는 이미 철거되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잔뜩 녹이 슨 철제구조물들만이 이곳이 본래 철로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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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시 걸었다. 쉬지 않고 걸었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실이 별로 서운하지는 않았음에도 저 멀리 있는 집에서 나를 발견한 개가 컹컹하고 짖었을 때는 괜히 반가운 느낌이 들긴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최종목적지였던 도계역에 도착하면서 나의 폐철선 여행은 끝이 났다. 흠뻑 젖은 티셔츠에는 비릿한 비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다음 행선지를 향한 열차표를 끊고는 비어있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쉴 새 없이 걸었던 다리는 몰려오는 피곤함으로 잔뜩 경직되어 있었고, 하루 종일 배낭을 짊어졌던 어깨도 이제야 그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고 어느새 비는 그쳤지만 한번 찌푸려진 하늘은 맑아질 줄 몰랐다. 한산한 역 안에는 동네 아저씨들만 종종 들락날락거릴 뿐 특별히 눈길이 머물만한 곳은 없었다. 시원한 음료수가 그동안의 갈증을 달래주기는 했지만 찝찝한 마음까지 개운해지지는 않았다. 텅 빈 역사의 창문 밖에는 정체된 풍경들이 있었고 그 틈으로 축축한 바람만이 흘러들어왔다. 나는 그 속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된 것일까.

나는 무엇을 바랐고, 기대하고 있었을까.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내가 그곳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막연한 기대와 낭만이었던 것 같다. 과거에 존재했던 물리적인 공간들이 시간이 흘러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오늘날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곳은 철저하게 버려져있었다. 말 그대로 ‘폐’철선이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본 것은 전국의 많은 폐철선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에 내가 확인한 것은 결국 자본에 의해 많은 것들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사실이었다. 폐철선의 일부는 새로운 자본에 의해 관광사업으로 변했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파괴되거나 방치되어있었고 그 주변에는 같은 부류의 소외된 사람들만이 머물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내가 외면했었던 인류의 역사이자 빛나는 문명의 그림자이며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연스러운 것’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나라는 한 인간의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며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은 여전히 있는 그대로 ‘자연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삶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하던 내게 이 세상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고, 그 안에서 나는 늘 불안해했다. 나의 불안은 허상을 낳았고 행복의 욕망은 그 허상을 좇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허상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불안은 그 허상을 믿고 싶다는 욕망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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