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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Jun 30. 2022

_간이역과 폐철선-4

: 네번째이야기.




2020년, 33살

  


A.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들이 나를 반긴다. 겉옷을 체 벗기도 전에 어디선가 뛰어온 도랑이는 다짜고짜 이마부터 들이밀기 시작한다. 내가 밖에 있는 동안 희미해진 자신의 채취를 다시 한 번 내 몸 여기저기에 묻히려는 것이다. 그사이 낭랑한 울음소리로 반가운 인사를 전하던 도담이는 어느새 내 앞에 자리 잡고 누워 뽀얀 배를 드러내며 뒹굴 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아직 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어서 자신을 쓰다듬어달라며 한껏 애교를 부린다. 나는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이들의 애교를 흐뭇한 표정으로 받아준다.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같이 얼굴을 문대기도 하면서 서로의 체온과 냄새를 공유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를 마친 고양이들은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원형 스크래쳐 안에 동그랗게 몸을 말아 넣고 못 다한 잠을 다시 이어가기도하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창턱에 올라앉아 바깥구경을 마저 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야 겉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놓고는 잠시 침대에 누워 숨을 돌린다. 이불 위가 따뜻한걸 보니 오늘은 여기서 하루 종일 낮잠을 잔 듯하다. 당연히 별생각 없이 여기서 잠든 것이겠지만 나를 위해 하루 종일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놓았다고 상상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나는 다시 일어나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특별히 대단한 식사를 차려서 먹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라도 먹으려면 밥솥에 밥도 안쳐 놓아야하고 어젯밤 게으름을 피우며 미뤄두었던 설거지도 해야만 한다. 가장 간편한 것은 밖에서 사먹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이겠지만 혼자서는 한 끼에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먹다 남은 음식을 내일도 먹어야한다고 생각하면 그리 선호하는 선택지는 아니다. 눈대중으로 1-2인분 정도 되는 양의 쌀을 밥솥에 대강 담아내고 흐르는 물에 적당히 씻어낸 후 전기밥솥에 밥을 안친다. 30분이 걸린다는 음성안내가 들려오고 그 시간동안 나는 어질러진 집을 정리한다. 오늘은 마침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불 털기를 할 생각이다. 자주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막상 하려면 귀찮기도 하고 또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는 고양이들이 이불 위에서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자주하지 못한다. 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양이털이 잔뜩 묻어있을 이불을 어깨위로 둘러업고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나의 갑작스러운 커다란 행동에 놀란 고양이들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지만 나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밖으로 나가 펄럭펄럭 소리를 내며 있는 힘껏 이불을 털어낸다. 그렇게 털어낸 이불을 침대위에 던져놓고 나는 다시 한 번 그 위에 털썩 누워 숨을 돌린다. 잠시 두 눈을 감고 오늘 하루 있었던 많은 일들도 머릿속에서 개운히 털어 내고나면 곧 취사가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B.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하루의 끝을 향해가던 내게 문득 책 한권이 눈이 들어온다. 파란 하늘색 바탕에 조금은 촌스러운 글씨체로 커다랗게 쓰여 있는 제목 「간이역 여행」.  언제부터 저 자리에 꽂혀있었던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내용의 책이었는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20대 초반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충동적으로 샀던 책이었는데 그 이후로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었다. 아마도 먼 과거의 어느 날 내가 자취를 시작하면서 이 책을 집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날 이후로 몇 번의 이사를 다니는 동안 여러 책들 사이에 끼인 체로 그냥 그렇게 여기까지 딸려왔을 것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어느새 2년이 되었으니 적어도 저 자리에서만 꼬박 2년은 가만히 있었던 셈이다. 여전히 침대위에 누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바라보던 나는 오늘은 왠지 저 책을 한번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호기심이 생겼다거나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냥 무심하고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탓에 책 표지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휴지로 대강 털어내고는 손 가는 대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속에는 서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운 기차역들의 이름들로 가득했다. 그 이름들을 곰곰이 되새겨 볼 때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이 책을 살 때만해도 여기에 있는 기차역들은 모조리 다가봐야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이 책에 수록된 40여개의 기차역들을 다 가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찾아갔던 역들을 하나둘 새어보니 철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치고는 그래도 꽤 많은 간이역들을 다녔던 것 같다.(참고로 이 책의 저자는 철도동호회 운영자이다.) 그중에는 글쓴이처럼 간이역 자체를 찾아 떠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을 여행하면서 간간이 한 번씩 들려보는 식으로 찾았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간이역에 대한 나의 관심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간이역이었기에 책속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사진들은 반갑고 익숙했지만 막상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은 희미하고 흐릿하기만 했다. 그렇게 어둡고 오래된 기억 속에서 한참을 더듬거리며 헤매이다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간이역이 2017년 강원도 정선에 있는 나전역이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울림이 순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한 나는 당시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예전의 기록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열어보지도 않는 서랍장과 박스들을 마구 뒤져보다가 결국에는 아이클라우드 속에 나열된 수천 장의 이름 없는 사진들 사이로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다보니 마치 오래된 무덤 속에서 유물들이 출토되듯 학생시절의 잡다한 기록들로 가득한 노트들이 책상위로 건져 올라왔고, 모니터 속에는 어디서 무엇을 찍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당시에 찍은 사진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이런 것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후회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찾아보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대부분의 간이역들이 그러하듯 나전역 또한 탄광산업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러다 A-Train이라는 이름으로 쇠퇴한 정선선 구간을 되살리기 위한 관광열차가 개통되면서 A-Train의 구간 여행지로 선정되면서 폐쇄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2017년에는 관광열차의 경유지였던 만큼 역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컨텐츠나 볼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의 한가롭게 펼쳐진 자연풍광과 작은 마을의 느긋한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이렇게 말끔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게 방문했던 여행지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시의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전역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제는 기차역 자체가 지역에서 운영하는 카페 공간으로 변모하였으며 지역특산품을 응용한 상품들과 함께 공연, 전시 등 다양한 컨텐츠를 담아내고 있었다. 기록이 많지는 않아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몇몇 블로그에 수록된 후기의 내용을 읽어보니 그래도 좋은 공간으로 여러사람들에게 잘 이용되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방문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공간도 아니었지만 마치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이번 기회에 11년전 작가에 의해 이 책에 수록되었던 간이역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제 대부분의 간이역은 갈수 없는 곳이 되어있었다.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역사가 통째로 사라지거나 아니면 철로만 먼저 철거되고 역사는 갈 곳을 잃은 체 홀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사례들을 찾아보니 대게는 특별히 지역 관광상품과 연계되거나 아니면 문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기차역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행정절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철거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갑작스런 현상은 아니었고 지난 11년간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직접 목도했던 광경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전국에 있는 수많은 이름 모를 간이역들이 마주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현실적인 이유’ 또는 ‘어려움’으로 비참하게 사라져가는 간이역들을 바라보면서 한때는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세상의 잔혹함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않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리고 지지하는 어른들을 지극히 경멸하곤 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오랜만에 발견한 간이역들이 여전히 처절하고 쓸쓸한 말로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음에도 나는 화가 나거나 착잡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과거의 경멸하던 어른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고 현실의 부조리함에 분개하던 과거의 내 모습과도 거리가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체 가만히 서있었다. 그저 로드뷰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간이역의 모습들을 하나씩 비교하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2009년, 내가 처음으로 방문했던 간이역 갈촌역에는 더 이상 철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이제 자전거도로가 나있었고 이따금씩 장거리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만이 이곳에 잠시 머물 뿐이었다. 역사에 앉아 가빠진 숨을 돌리던 그들도 나처럼 호기심에 잠시 역 밖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여전히 노란빛의 가을을 담은 은행나무가 과거의 나를 반겨주었든 그들도 반겨주겠지.     



C.

   고양이는 본래 야행성 동물이다. 예민한 청력과 어둠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시력은 초저녁이나 동트기 전에 사냥을 해오던 본능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러나 주행성 동물인 집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집고양이들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집사의 생활패턴에 거의 맞춰지곤 한다.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12시즈음에 잠자리에 드는 편인데 오늘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 조금 시간이 늦어지는 날에는 오히려 나보다 고양이들이 먼저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있다. 물론 하루에 18시간을 자는 고양이들에게 잠자리에 드는 행동 자체가 매우 빈번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주변에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으면서 온화하고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잠에 들 시간이 온 것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는 서로 술래잡기를 하며 우당탕탕 뛰어놀기도 하고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며, 아니면 내 근처를 서성이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는데 그러다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내 앞으로 뛰어와서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책을 볼 때는 책 위로 올라오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으면 모니터를 가리거나 키보드 위로 올라가서는 아예 드러누워 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잠에 들 시간이 다가오면 종종 내가 누워야할 침대 한가운데에 떡하니 똬리를 틀고 먼저 잠에 들곤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빠를 기다리다가 먼저 잠든 아이와 같은 느낌이어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도 더 이상 오늘 하루에 대해 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야행성이라는 자신의 본능을 포기하고 나의 일상에 맞춰 변해왔듯이 나도 그들의 일상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한때 이러한 일상을 단조롭고 지루한 속박된 삶이라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존재 자체를 극단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고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집과 학교만을 반복하던 내게, 일상은 나의 호기심과 욕망을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학업이라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틀 안에서 정해진 답만을 찾아내야하는 공교육의 폐쇄성은 나로 하여금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반항심을 야기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된 나는 어항에서 풀려난 물고기 마냥 세상이라는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휘젓고 다녔던 세상 속에는 그동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꿈과 현실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삶에 대한 경험이 적었던 내게 현실과의 타협은 종종 굴종과 포기로 느껴졌으며 타성과 나태함으로 해석한 적도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은 현실에 안주하는 삶으로 치부되었고 나는 새롭고 변화무쌍함 삶에 대한 끝이 없는 갈증에 목말라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간이역은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담아내고 시간이 흘러도 가장 변화하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나는 오히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며 이곳을 즐겁게 거닐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간이역을 찾아다녔다. 내가 다녔던 간이역들이 모두 다 좋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시간들이 아깝거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오랜 시간동안 그 공간을 걸어 다니면서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삶의 지혜’와 같은 것들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체득해왔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문답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서 나를 일깨워 준 것은 바로 변화와 일상, 일상과 변화에 대한 생각들이다.

   지금은 느껴지지 않겠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은 조금씩 변화해간다. 다만 그 속도가 서로 다를 뿐이어서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뿐이다. 늘 그렇듯, 이 모든 변화로부터 나도, 그리고 우리도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이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 나의 일상이 있다. 늘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일상이지만 사실은 지나간 모든 변화들의 결과물이 지금 이순간의 일상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일상을 꾸려내었나, 또 앞으로 어떤 일상을 만들 것이며,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날의 나의 일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잠시 뒤돌아봤을 때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납득할만한 ‘변화’가 그날의 ‘일상’에 담겨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내가 간이역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간이역을 가지 않게 된 것도, 지금은 사라져서 볼 수 없어진 간이역들에 대해 그 시절처럼 분노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 그렇게 변화해왔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다. 자신의 일상이, 그리고 지금 존재하는 세상 무언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변화’라는 흐름을 타고 소중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간 것들에 대해, 사라질 것들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자. 조금은 서툴지라도 자신이 믿고 바라는 변화를 지금 나의 일상에 작게나마 담아낼 수 있다면 그 작은 파동이 언젠가 나의 삶에 커다란 물결이 되어 흐르지 않을까.






나전역





나의 일상, 도랑이와 도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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