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비, 10대와 생태적 삶을 노래하다
耕田南山側(경전남산측) 남쪽 산모퉁이에 밭을 일구고
結廬北山曲(결로북산곡) 북쪽 산굽이엔 오두막을 지었네
朝出到壟上(조출도농상) 아침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暮歸理書策(모귀리서책) 저녁엔 돌아와서 책을 읽네
傍人笑我勤(방인소아근) 주변에선 나의 고생 비웃겠지만
我自以爲樂(아자이위락) 내게는 더없는 즐거움이라네
始知請學稼(시지청학가) 이제야 알겠네, 농사일 배우는 게
猶勝問干祿(유승문간록) 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장유, <歸田漫賦(귀전만부)> 중 제 5수
이번 시간에는 상촌 신흠과 더불어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계곡(谿谷) 장유(1587~1638)의 전원시(田園詩: 시골 일을 노래한 시)를 살펴볼까 합니다. 시인은 볕 잘드는 남쪽 산모퉁이에는 밭을 일구고 북쪽을 등지고 오두막 한 칸을 지어서 살고 있습니다.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지면 글공부를 합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함)의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장유의 삶의 철학을 잘 알 리 없는 주변 친구들은 왜 벼슬하면서 편하게 살지 않고 ‘사서 고생하느냐’고 비웃지만 자연의 리듬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임을 그대들이 오히려 잘 모르고 있다며 지인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농사일 배우는 게/벼슬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현대 사회는 눈 뜨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힘겹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을 챙겨먹고 나가기 무섭게 정해진 일과에 따라 그날 수업을 꼼짝없이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늦잠을 잤을 경우 아침밥은 건너 띈 채 학교로 달려갑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의 삶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보다 먼저 일어나서 가족의 아침을 챙긴 뒤에 여러분을 깨우고 본인의 출근을 서두릅니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나마 아내와 남편, 아이들이 출근한 뒤에 약간의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 생활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쁘며 또 이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까요? 조금 더 깨어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일부러 귀농과 귀촌을 해서 도시 생활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달리하여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랏일이나 회사 일, 학업에 얽매이다 보면 정작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소홀하기 십상입니다. 깨어 있는 삶, 내면이 충만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시인은 나랏일에 해방되어 전원(田園)에서 삶이 고되긴 하지만 남에게 양보하기 싫은 즐거운 삶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곧 남의 지시에 따른 삶이 아닌 스스로가 계획한 일정에 따라서 땀흘리고 흙과 생명을 돌보며 자연의 이치에 따른 순환적인 삶, 느린 삶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자 내면의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골에 살면 누릴 수 있는 혜택 또한 다양합니다. 신선한 공기와 사시사철에 따라 피는 꽃과 나무, 열매, 곡식, 날짐승과 들짐승이 친구가 되어 주고 커다란 그늘 밑과 시원한 계곡 속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 걱정, 탐욕, 물욕(物慾: 물질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구, 질투와 원한 등에서 자연히 멀어지게 됩니다.
낮에 열심히 밭일하고 밤에 책을 읽다 보면 현대인의 고질병인 수면 부족과 우울증, 스트레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 자연스레 하늘을 닮은 자연을 닮은 내면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0대 생각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은 직장인처럼 아주 바쁘게 안 살아도 되고 자연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을 먹으면서 ‘내가 농사를 아주 열심히 참 잘 지었구나’라는 만족감과 함께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다.
· 밭일을 하는 것을 남들은 비웃지만 지은이가 만족하는 것처럼 내가 미래에 할 일이 비록 남들이 비웃는 일이여도 내가 만족하면 된다는 것을 느꼈다.
· 나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맑은 공기가 있는 시골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높은 벼슬을 가지고 풍요롭게 사는 것보다 직접 농사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만족하며 살 줄 아는 글쓴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 농사일을 배우며 농사짓는 일은 머리의 잡생각을 없애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살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직접 가꾸어낸 밭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 것 같다.
· 직장생활은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매일 일을 하기에 지루하고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농사일은 매번 맑은 공기와 좋은 풍경을 보면서 편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농사는 나에게 마음의 휴식을 주며 수확물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마음의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 같다.
· 자연에 리듬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몸이 건강해지고 지위와 일에 얽매이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일 또한 적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면 부지런하게 살아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 농사짓고 사는 사람이 직장생활을 하며 사는 삶보다 좋은 점은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자신의 내면을 더 잘 가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직장생활은 내가 계획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타인이 세운 계획 아래에서 그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하므로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해소하기 어렵다. 반면 시골 생활은 오직 내가 원하는 때에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할 수 있으니 나의 욕구와 바람이 충족되며 온전히 내가 중심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농사를 지으며 살면, 자연에서 주는 행복과 감사함을 몸소 느낄 수 있고, 그것의 감사함을 깨달았으니 타인에게 감사하는 법도 자연스레 스며들게 되고, 나의 욕구와 바람을 해소하며 생활할 수 있으니 보다 큰 만족감이 들며 욕구 불만으로 인한 화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 이 글을 읽고 나니 내게 큰 로망이었던 ‘어른이 되어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삶을 만끽하는 것’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바람이 솔솔 부는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공부하거나 대청마루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는 일이 왠지 모르게 그리워지고 그런 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
· 직장생활은 사람들과 맞춰가며 지내야 하지만 농사일은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만큼만 지으면 되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만족감이 클 것 같다. 자연을 벗 삼아 살면 내가 겪는 힘든 일은 이곳에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 삶이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농사짓고 사는 삶이 기후 위기 시대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자연의 흐름에 따라 농사지으며 사는 삶이 나에게 어떤 만족감이나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