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비, 10대와 생태적 삶을 노래하다
寄者寓也(기자우야) 부쳐 산다는 것은
或有或無(혹유혹무) 혹 있기도 하고 혹 없기도 해서
去來之未定者也(거래지미정자야) 오고 감이 일정치 않다는 뜻이다
大禹有言曰(대우유언왈) 옛날에 우임금(중국 하나라의 시조)은
生寄也(생기야) “삶은 부쳐 있는 것이고
死歸也(사귀야) 죽음은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信乎生非吾有(신호생비오유) 참으로 삶이란 내 소유가 아니고
天地之委形也(천지지위형야) 하늘과 땅이 잠시 맡겨 놓은 것일 따름이다.
-신흠, <기재기(寄齋記)>
기재(寄齋, 부쳐 사는 사람의 집)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의 호이다. 상촌 신흠과 오랜 세월 관료 생활을 함께하며 동료로서 의리와 정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기문(記文,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 기록한 글)은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계축옥사(癸丑獄事,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대북(大北)이 영창대군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기 위해 신흠이 벗인 박동량에게 삶과 자연의 무상함을 성찰하면서 지어 보낸 글이기도 합니다. 신흠은 “내가 기재 영감과 죄를 같이 얻어 나는 두메산골로 귀양 오고, 영감은 바닷가로 귀양살이 갔는데 나 역시 산골 내 집에다 여암(旅菴, 나그네의 암자)이라고 편액을 달았다.”고 하며 벗을 위로하였습니다.
풀이 무성했다 하여 봄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나무가 잎이 졌다고 가을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나그네를 면하고 부쳐 사는 생활을 청산하는 것 역시 조물주에게 맡겨둘 뿐 자신과 박동량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자신이 나그네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벗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으리라 여긴다고 기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당나라 때 시선(詩仙:시에 관한 한 신선)이라 불리던 이백(李白, 701~762)은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봄밤 복사꽃과 오얏꽃 핀 정원에서 형제와 친척들이 모여 시 짓기 모임을 개최하는 것을 기념하여 지은 서문))>에서 “무릇 천지는 우주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夫天地者 萬物之逆旅(부천지자 만물지역려), 光陰者 百代之過客(광음자 백대지과객)]”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은 우주 만물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관이며 세월은 그 여관에 머무르는 잠시 머무르는 손님입니다. 우리네 삶 또한 내 것이라고 여기고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조선 중기 시인인 신흠은 “내 소유가 아니고 하늘과 땅이 잠시 맡겨 놓은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지구별에 잠시 왔다 사라지는 인류이긴 하지만 짧은 시간 우주 대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행동규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도 출신의 영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생태운동가, 녹색 성자라고 불리는 사티시 쿠마르는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상호연결과 하나됨의 정신입니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 지역에 태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하는 이론이 나비 효과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도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고 하는 연기설(緣起說)을 말합니다. 내가 오늘 버린 쓰레기와 생활 하수 등으로 인해 주변 사람과 자연, 동식물들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지구 생명공동체가 함께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둘째, 순환의 정신입니다. 지구공동체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주머니’가 아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라도 더 심어 놓고 갈 줄 아는 지혜와 회복의 삶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는 후손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될 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재생가능하고 회복 가능하며 순환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셋째, 다양성이라는 가치의 실천입니다. 사람도 각양각색의 피부색과 눈, 생김새, 성격 등이 다양하듯 지구공동체에 살아가는 구성원들도 그 모양이나 역할이 다양합니다. 나름 지신의 존재 가치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나무 한그루만 보아도 햇볕을 받기 위해 가지를 휘어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스팔트와 바위 속에서도 한 생명 꽃피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벌과 나비는 꽃과 서로 도와가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새들은 노래하고 꽃은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며 물과 공기는 조건 없이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연의 모습과 생태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교훈을 얻어 지혜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과 자연물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더 아름답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와서 하늘과 땅, 우주, 천지 대자연, 우주 만물이 잠시 부여한 지구라는 시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가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다양한 삶과 존재 방식에 대한 물음과 그 해답을 여러분 마음속에 이미 가지고 있지 않나요?
10대 생각
· 지금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새로운 것을 보고 깨달으며 살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다.
· 앞으로는 다른 사람이나 생물, 인공지능과도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요즘 동식물에게 인간이 많은 피해를 끼치고 있는데 그런 일을 자제하고 서로 피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 대자연이 내어준 삶을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 기후 재난 및 인공지능 시대에는 그것과 함께 살면서 항상 새로운 것,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더 발전해 나가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자연이 부여한 삶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고도 생각한다.
· 로봇이 많이 발명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과 자연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 인공지능이 발달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꿈,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으므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내 꿈과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고 할지라도 인생의 의미와 목표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연이 있어 감사하다.
·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로봇이 할 수 없는 직업을 택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삶은 하늘과 땅이 나에게 준 것이기 때문에 바르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로 수동적이기보다 자동적인 시스템이 많이 나오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사고가 나면 누구의 책임인지 도덕과 법 사이에 명확한 규정이 필요할 것 같다. 자동 시스템이 많아지면서 요즘 사회인들이 게을러지고 있으니 앞으로의 시대에는 ‘성실함’이란 덕목이 요구될 것 같다.
·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기에 나를 잘 알고 자신을 아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나는 인공지능 시대에 로봇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이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 자연에 늘 고맙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인공지능 시대에는 사람을 대체할 로봇 개발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우주와 대자연에게 바람직한 모습은 그것을 아끼고 보호하며 봉사하는 자세일 것이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기후 재난 및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2. 기후 위기 시대에 지구 생명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삶의 자세와 모습에는 어 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