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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붓 사랑

우리 선비, 10대와 생태적 삶을 노래하다

by 은은



此筆那輕擲(차필나경척) 이 붓 어찌 함부로 던져 버리랴

能成宰相身(능성재상신) 나를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었는데

今吾頭亦禿(금오두역독) 이제 내 머리도 똑같이 벗겨졌으니

兩老合相親(양로합상친) 두 늙은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이규보(李奎報, 1168-1241), <희제구필(戱題舊筆)>



우리는 ‘물건’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실을 둘러봐도 연필, 지우개, 빗, 볼펜, 샤프 등이 주인을 잃은 채 아무 데나 널부러져 있되 정작 그 주인인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줄 모릅니다. 다시 사면 되기도 하고 그만한 애정을 깃들일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궁핍함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옛 선현들은 사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땠을까요? 이번 시간 함께 공부할 시는 고려 중기 시인이자 철학자인 이규보의 <오랜 세월 함께한 붓 친구를 재미로 노래하다[희제구필(戱題舊筆)]>입니다.


요즘 서예를 배우기 위해 붓 한자루를 구입하려면 ‘한글 쓰기용 붓’은 3만원이 넘어가고 ‘한자 쓰기용 붓’은 5만원 정도 합니다. 학생 신분으로 붓을 구입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물건이지요. 예전 시대에는 필기구가 붓뿐이며 웬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대부 집안이 아니면 쉽게 그것을 쓰다가 버리지는 못했겠지요.


이 시를 보며 어릴 때 읽고 들었던 자린고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돈이 없어서 먹을 것을 아낀 것이 아닌 생활 습관 자체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그 자린고비입니다. 반찬을 아끼기 위해 천장에 굴비 한 마리를 매달아 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밥 한술 뜨고 ‘아이고 고놈 맛있겠네’ 하고 또 한술 떴던 그 이야기입니다.


저 자신 또한 교직 생활을 하며 생활인으로서 미래를 대비하고자, 자녀 양육과 교육을 위해, 재테크를 위해 남에게 베풀어야 할 때 제대로 베풀지 못하고 쓸 돈 쓰지 않으며 인색한 삶을 살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또 다른 관점인데요. 물과 종이, 석유 아껴쓰고 사용 절제하기, 옷가지 아껴입고 고쳐 입기, 차량 운행하지 않기, 새 옷과 새 신발 사 입지 않기, 욕망과 유행에 따라 필요 없는 물건 구입하지 않기, 가까운 거리는 걷고 먼 거리는 버스나 기차 이용하기, 생명 함부로 대하지 않기, 겨울을 나는 동물을 위해 감나무에 감 다 따지 않기, 들고양이 집 만들어 주기, 불필요한 쓰레기 만들지 않기, 샤워 오래하지 않기, 틈날 때마다 순환과 재생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 보기 등은 사물과 타자에 인색한 것이 아닌 베풂과 나눔의 실천이자 지구공동체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후손과 뒷세대를 위한 책임 의식이자 사랑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낙서를 위해, 밑바탕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수학 문제도 풀고, 영어도 쓰며, 글쓰기도 할 수 있는, 다양한 우리의 표현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필기 도구에게 오늘부터라도 자신만의 빛깔로 감사의 표현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누가 알는지요? 나만의 필기구를 소중히 다루다 보면 이규보처럼 자신의 꿈을 그것이 실현시켜 줄지를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건 눈에 잘 보이거나 띄진 않지만 혹시 압니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와 태도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우리와 지구 생명공동체 구성원들을 기쁘게 하는 작은 기적을 불러올지를요

검소와 검약이 인색이 아닌 나와 타자(자연, 미생물, 물, 모든 생명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예의이자 같은 지구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물자가 넘치는 시대, 돈이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 나의 욕구와 욕심에 반대되는 행동을 실천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가 지구 온난화 시대에 요구되는 덕목이자 자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공동체, 나와 타자를 자세히 알게 되면 그것을 아끼게 되고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요?


10대 생각


· 중요한 가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에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물은 우리 집이다. 포근하고 아늑하며 우리 가족의 쉼터가 되기 때문이다.


· 여태껏 학용품을 함부로 대했는데 이 글을 읽고 그것을 아껴쓰고 소중히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날 우리가 기록할 수 있도록 샤프, 연필, 지우개 등을 만들어 주신 분들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궁금한 것도 찾아볼 수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패드가 내가 아끼는 사물이다.


· 오늘날의 우리는 물건을 잘 아껴 쓰지 않지만 옛사람들은 사소한 물건 하나라도 아껴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사물을 아껴 썼으면 좋겠다.


· 필기구는 수업 자료에 쓸 수 있고 잘못 썼을 때 지울 수도 있다. 다양한 색깔로 자신을 표현하듯 우리들도 다양한 빛깔과 모습으로 자신을 빛냈으면 좋겠다.


· 내가 평소에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만 아끼고 다른 물건을 헤프게 썼던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아끼는 물건들을 떠올려 보고 그 물건과의 추억들도 떠올려 보게 되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어 여러모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 색연필은 내가 그림 연습할 때마다 함께 한 동지이고 점점 깎이면서 나의 작품들, 나의 성취감과 그림 실력도 나날이 늘어가게 해주었다. 그림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 고마운 물건이다.


· 필기구는 내가 수업 시간에 필기할 때 함께 하면서 지식을 채워주고 그림을 그릴 때도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도와주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앞으로도 같이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아나가기를 바라본다.


· 내가 아끼는 사물은 피아노다. 어렸을 때부터 그것과 장난도 치고 대회 연습, 그냥 연습 등 피아노를 많이 쳐서 정이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피아노 의자에 일기장을 숨겨놓고 그것에서 먹고 자고 하는 등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았다. 또 부모님께서 그것을 버리려고 하셔서 싸우며 말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이유로 피아노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여러분이 아끼는 사물은 무엇이며 그것을 아끼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2. 여러분에게 ‘필기구’는 어떤 의미인지요? 지구 사랑과 관련하여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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