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비, 10대와 생태적 삶을 노래하다
百轉靑山裏(백전청산리) 푸른 산속 굽이굽이 백 번을 돌아
閑行過洛東(한행과낙동) 한가로이 낙동강을 지나가누나
草深猶有路(초심유유로) 풀이 깊어도 길은 있나니
松靜自無風(송정자무풍) 소나무 고요해 바람도 없다
秋水鴨頭綠(추수압두록) 가을 물은 청둥오리 머리처럼 푸르고
曉霞猩血紅(효하성혈홍) 새벽 노을은 원숭이 피처럼 붉다
誰知倦遊客(수지권유객) 누가 알리 자연 속 쉬어가는 이 나그네가
四海一詩翁(사해일시옹) 천하의 시인인 줄을
-이규보(李奎報, 1168-1241), <행과낙동강(行過洛東江)>
공자는 “시에서 도덕적 마음을 흥기시킨다[興於詩(흥어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산과 강은 시심(詩心: 시에 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을 길러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규보는 영남의 어느 산길을 지나며 낙동강을 굽어보며 시심을 길어올리고 있습니다. ‘푸른 산속’, ‘강’, ‘풀’, ‘소나무’, ‘바람’, ‘가을 물’, ‘청둥오리’, ‘새벽 노을’이란 시어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선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호연지기(浩然之氣: 너르고 크며 올바른 기운)와 시심을 기르고자 산수 유람을 하였습니다. 산과 강은 그 자체로 경이의 대상이었으며 ‘또 다른 나’이자 만물을 길러주고 보듬어주는 부모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크건 작건 간에 내면에 시심과 생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풍경을 마음 속에 갈무리하고 삶이 허전하거나 혼돈스러운 느낌이 들 때 가벼이 우리 산하 순례를 떠나보면 어떨까요?
벌써 40년 전의 일입니다. 부산일보가 <낙동강, 늦기 전에>라는 특별 기획 기사를 81년 9월부터 82년 4월까지 55회 연재하면서 <오염으로 시드는 7백리, 그 실태와 처방>을 통해 낙동강 오염의 실태를 밝혔습니다. 아래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억겁의 세월을 두고 이 땅에 풍요로움을 안겨 준 낙동강. 조상의 얼이 담겨 흐르는 이 강이야말로 영원한 민족문화의 요람이다. 이 강가에는 이제 고도산업 사회의 기적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의 강이 지금 날로 가속되는 수질 오염으로 서서히 죽음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낙동강이 황폐하고 죽음으로 이르렀을 때 주변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상해보라. 거기엔 인공 사막이 있을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너무 늦기 전에 치유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박태순, 《국토와 민중》, 1983, 324쪽에서 재인용)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낙동강과 주변에 몸담고 있는 수생식물, 조류, 사람을 포함한 대자연의 생명은 하루도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낙동강 개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60~70년대 박정희 정부 때의 근대화와 공업화, 지난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공사로 인해 우리의 젖줄이자 생명수인 낙동강의 수생식물과 조류, 주변 마을, 농경지, 사람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원래 있던 곳을 떠나거나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농민들과 주변 생명들은 어미 잃은 아이가 되어 농경지와 서식지를 빼앗기고 낙동강 주변의 문화와 정신적 유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생태적 지혜와 감수성마저도 잃어버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물과 강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며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삶의 지혜와 터전을 우리 스스로 파헤치고 오염시키고 물의 흐름을 강제로 조절하려는 오만함을 부린다면 그 폐해는 우리 세대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시심(詩心, 시를 짓고자하는 마음)을 내고 무엇에 감동하고 감탄할 수 있을까요? 회색빛 아파트에 둘러싸여 낙동강 보와 녹조, 죽어가는 물고기와 새들을 바라보며 생명의 근원과 신비, 생태적 감수성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까요? 강과 이 땅의 생명들과 후손들에게 미안하고 두려워지는 요즘입니다.
10대 생각
· 산과 강이 나에게 주는 포만감이 마음속 깊은 안정을 찾아주는 것 같았던 감명 깊은 시였다. 신비하고 평화로운 자연이 마치 가족이라는 큰 포근함이 나를 감싸는 느낌을 받아보고 싶어 시를 읽을 때 노력했다.
· 한 글자 한 글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시이지만 자연의 풍경과 이미지가 생생하고도 절로 떠올랐다. 시어처럼 마음이 복잡할 때 자연의 풍경을 보면 이치대로 흘러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밖을 잘 나가지 못해 자연 친화적 활동을 못 하는 것이 안타깝다.
·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마다 그 자세한 형태와 결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고민을 덜어주고 누군가의 마음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고 누군가의 화를 사그라들게 하는, 어찌 되었건 평화로운 바람이 부는 마음밭으로 바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시대를 안고 있는 이로운 것들이 생각난다. 시대를 크게 볼 수도 있겠지만 작게 보면 나의 추억을 가진 장소로도 생각이 된다.
· 차 안에서 높은 빌딩과 지나가는 차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 산과 강을 내 발로 직접 밟아보면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 들고 포근해진다. 산과 강으로 가면 힐링이 되고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 걸어서 우리 산과 강을 밟아보는 일은 우리의 건강에도 좋을 것이고 또한 우리가 전자 기기에서 벗어나 상쾌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은 나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것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해수욕장과 등산을 즐겨 다니며 노닌 나에게는 산과 강이 참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 걸어서 우리 산과 강을 밟아보는 일은 우리의 마음 밭에 자유의 느낌과 함께 편안한 영향을 줄 것 같다. 산과 강은 우리에게 자랑스럽고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 자연이 있어 힐링을 하며 살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그것 없이는 못 사니 지구를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
· 걸어서 산이나 강에 가면 걸어갔다는 뿌듯함과 자연경관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될 것 같다. 나에게 산과 강은 갈 때는 귀찮고 힘들지만 막상 가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개운한 기분이 들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다.
· 자연은 참 신기한 존재이다. 멀리하려야 멀리할 수 없고 그것 속에 있으면 생각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다시 한번 더 많이 볼 수 있을때 둘러봐야 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차가 아닌 걸어서 우리 산과 강을 밟아보는 일은 우리의 마음 밭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 같나요?
2. 우리의 산과 강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