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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열심히 고전산문을 읽습니다

by 최다을

<오빠는, 열심히 고전산문을 읽습니다>


<1> 영화 <알라딘>을 보러 가야 된다고 했어요. 동생은 싫대요. 너무 귀찮대요. 영화관까지 가는 게 너무 피곤하대요. 아니. 오빠가 돈을 다 내준다는 대도 싫다니. 독자님. 독자님이라면 누가 영화비 내준다고 하면 갈 거죠? 그것도 특별관인 데요. 한두 번 오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영화관에 가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고 말하고 짜증을 내도 같이 걸어서 영화관에 갔어요. 팝콘은 항상 사줘야 해요. 이건 기본이더라고요. 특히 캐러멜 팝콘이요. 물론 콜라는 빼먹지 말고요.


<2> 저는 동생 방 앞에서 고전시가와 고전산문을 읽습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시작하여 기승전, ‘전’에서 폭풍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심청전’을 읽다가 제 목소리가 갈라져, 심청이의 인당수를 만들어 냅니다. 아니면 어부가를 읽습니다. 또는 관동별곡을.


독자님들은 궁금하시겠죠. 왜 굳이 그렇게 영화를 보여주는지. 영화값이 보통이 아닌데. 한 번 가면 신사임당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데, 왜 그렇게 돈을 쓰면서까지 영화를 보는지. 또 왜 그렇게 고전을 읽는지. 안 그래도 ‘고전’이라면 싫을 나이의 학생에게 왜 그렇게 고전을 읽히는지. 이건 소음공해라고, 어떤 분은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동생이 핸드폰만 하니까요. 매일 핸드폰만 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막 꿈을 펼치려고 노력할 때에 핸드폰 안에 꿈을 심었으니까요.


저는 일찍이 동생 교육을 위해 교육심리학을 이수했습니다. 대학 강의를 들려주는 K-mooc에서 교육심리학을 두어 달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서 이수했죠. 여기서 공부한 바로는 이 나이 때의 학생들은 무엇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른다고 합니다. 옆에서 아무리 핸드폰이 안 좋다고 해도, 하게 된다고 해요. 그렇긴 하죠. 남학생들에게 아무리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해도 어떻게든 하려고 하잖아요. 게임이 ‘무조건’ 안 좋다는 게 아닙니다. 본인의 일, 공부나 학원 등원이나 운동 약속이나 그런 것들을 안 하고 게임‘만’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영화를 보러 나가면서라도 다른 쪽으로 시간을 빼고 싶었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핸드폰의 손아귀에서 한 학생의 자유를 보존하고 싶어서요. 핸드폰은 자신의 범위 안에 있는 이들을 ‘중독’으로 내몰아, 유튜브를 보거나 SNS를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하면 순식간에 1시간을 빼앗아 가니까요. 그래서 이 핸드폰을 손에 들면 자유도 빼앗기는 것이죠. 정작 ‘자유’롭다고 하지만, 그것은 핸드폰 속에서의 자유지, 본인의 의지로 자유로운 게 아니죠. 핸드폰 때문에 버스를 놓치고, 핸드폰 때문에 행인과 ‘스킨십’을 하고, 핸드폰 때문에 내야 될 과제를 못 내고. 이것은 모두 본인의 의지가 아니잖아요. 즉, 자유가 묶인 것이죠.


그런데요. 제가 매일 고전산문을 읽으니 동생이 화를 냅니다. “그만 좀 하라규!” 아, 제 동생은 이 오빠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예요. 목이 정말 아프거든요. 한두 시간 읽어봐요. 물을 몇 잔은 마셔야 목소리가 나온다니까요.


근데, 왜 고전 소설인지 짐작하셨어요? 아날로그 시대 때 작품이라서요. 폰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고전작품이 딱 좋은 것이죠. 그러다 지루하면 현대소설을 읽긴 해요. ‘소멸하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담은 책들이요.


동생은 또 말해요. “언제까지 읽을꼬야!”

저는 성공한 것일까요? 핸드폰의 지배에서 한 소녀를, 감성의 세계로 구출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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