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서, 독서를 권합니다>
여기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 책은 책이지만 ‘책’이 아닙니다. 일단, 이해의 원활한 교환을 위해, 앞에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놓여 있다고 해보죠. 이 책은 아시다시피 유명한 책입니다. 모르는 이들이 극히 없는 책이죠. 그런데 누군가는, 글쎄. 이 책을 냄비받침으로 쓴다지 뭡니까. 책이 ‘책’이 아닌 것이죠. 아니, 잠깐만요. 그대는 왜 이 책을 ‘수면용’으로 사용하십니까? 물론, 읽다가 잠이 드는 건 뭐라 할 거리가 아닙니다만, 시작부터 ‘수면용’으로 정해두고 쓴다면, 책이 ‘책’이겠습니까?
한국 사람은 1년 동안 극히 적은 책만 만난다고 합니다. 찾지를 않으니 읽을 기회도 생기지 않고요. 지나가다가 아리따운 여성 분께 “책 읽는 거 좋아하세요? 최근에 읽은 책이 뭐예요?”라고 물었는데 답이 없다면, 저는 참으로 속상할 것 같습니다. 물론, 잘생긴 남성 분께 똑같이 물어서 같은 답이 나와도 그럴 거고요. 외면이 뛰어난 이들일수록 내면의 탄탄함을 보존해야 된다고 보니까요. 외면이 출중하면 되려 내면이 위협받기 십상이거든요. 이에 대한 예시는, 굳이 들지 않을래요. 사고력의 상상을 위해. ‘무한한 저 너머를 위해’
그렇다면, ‘거리’에서 지나가는 분 말고, 지금 이 쪽에서 지나가는 분. 당신께 여쭙겠습니다. “책 읽는 거 좋아하세요?”
저한테도 물어봐 주세요. 주고받는 게 있어야죠. 네! 저는 책 읽는 거 좋아해요. 특히 고전이요. 요즘은 셰익스피어에 빠져있답니다. 아니면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등등등.
근데요. 남매는 다른가 봐요. 제 동생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강요하냐고요? 물론, 그렇다고 어떻게 억지로 책을 읽혀요? 괜히 그러면 다투기만 하죠. 그래서 저는 같이 읽었어요. 매일 저녁 9시에 식탁에 앉아 서로 다른 책을 30분 정도 읽었죠. 그렇게 두어 달 ‘저녁 9시는 독서’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은데. 참, 이게. 시험 기간이 되어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드니, 이 시간이 또 미뤄지지 뭐예요? 시험 기간만 지나고 읽기로 했는데, 글쎄. 1년이 넘었네요.
굳이 그렇게까지 독서를 시킬 필요가 있는지 물어보실 것 같은데, 제 의견이 납득되는지 한 번 봐주세요. 아시겠지만,
독서가 중요하니까요. 요즘 공감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잖아요.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런데 책 읽기가 공감능력을 향상하는 데에 탁월하다는 건 몰랐죠? 책 속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잖아요. 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집필자의 주장을 들으면서 그렇게 다른 이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죠. 책을 안 읽던 이들이 책을 읽으면 어떤지 아세요? 상대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든대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괜히 짜증이 난대요. 근데 그런 분들도 책을 조금씩 읽다가 어느새 생각이 바뀌는 경험을 하더군요. 기존에 지니고 있던 ‘고집’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주위에서는 그렇게 보는 이들이 많더란 말이죠.
독서가 중요하니까요.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서 그 재미를 알았으면 해서요. 무엇이든 처음부터 재미있는 게 많을까요? 저도 책을 처음부터 즐겨 읽지는 않았거든요. 발전을 하고 싶어서 읽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다다르게 된 거죠. 처음에는 저도 읽는 게 어찌나 싫던지. 눈꺼풀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니까요? 그렇게 습관을 들였더니, 어느새 책 읽는 게 재미있어지지 뭐예요? 그리고 알았죠. 그 책의 재미를 알기 전에, 일단 찾아서 봐야 된다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자물쇠가 ‘딴’하고 열려서, 학습의 장이 형성된다고요. 책을 안 읽어 보면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요.
독서란 중요하니까요.
저는 이렇게 미래를 위해 노력해주고 있어요. 책을 읽음으로써 더 넓은 세계를 찾아보기를 바라죠. <미녀와 야수>에서 엠마 왓슨, 즉, 미녀가 그렇게 책을 좋아하잖아요. 제가 괜히 그 영화를 가족끼리 보러 간 게 아니었다니까요.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요. 지금 우물 안에 있는 세상을 ‘모든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요. <미녀와 야수> 속 마을 사람들은 미녀와 달리 그 마을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잖아요. 그렇게 사고가 편협해지고, 아집의 눈동자가 불을 밝히며, 꼰대의 씨앗이 자라나는 거죠.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고 해봐요. 그 책이 단순히 이야기만 나열돼있으면 좋은 책으로 칭찬받을까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는 많은 ‘지식’이 있어야 좋은 책이 되잖아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경험과 배움을 지니고 있는 책이어야 말이죠. 더하여 각주가 많아야죠. 각주가 많은 책이 읽기에는 불편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내공. 저자가 집필하면서 참고한 노력의 증표가 있는 게 아닌가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도 책을 읽히고 싶은 거예요. 많은 이들이 밟고 간 시간을, 본인의 인생에 담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