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의 중재자가 있어서요.
<폭식의 중재자가 있다는 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크게는 좋고 안 좋기로 나뉘겠네요. 좋은 방법에는 보통 운동이나 공부, 수다를 들면 좋겠습니다. 안 좋은 방법에는 화를 내거나 이것저것 막 먹거나 그런 식이 있겠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막 먹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사놓고 막 먹는 것이죠. 이건 정말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결국 악의 고리에 '자아'와 '자유'가 묶이고 마니까요.
저는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은, 스트레스에 못 이겨 과자를 잔뜩 먹어 댑니다. 운동을 하지만 그 운동에 버금가는 열량을 섭취하죠. 아니, 운동하여 덜어낸 칼로리를 족히 1.5배는 능가하는 정도의 열량을 섭취합니다. 그러고 나면 저는 꼭 후회합니다. 괜히 그렇게 먹었다고, 저는 빈 과자 봉투를 보면서 한 숨을 내쉽니다. 다음 날 아침 체중계 위에 써진 숫자는 단언컨대 그 날 하루를 아주 못 쌀 맞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옆에서 보던 동생은 곧잘 말합니다. “그만 먹어, 초콜릿!”, “오빠 살찌잖아?”, “내가 방에 숨겨둘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얼굴에 걱정이 쓰여있다는 것입니다. 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게 보인다는 것이죠. 동생은 초콜릿을 뺏어갑니다. 그만 먹으라고요. 살이 찐다고 내일 아침 체중계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요즘 많이 먹는 게 보인다고요. 저는 그때마다 머리가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또 식탐에 나의 영혼을 빼앗겼구나, 하고 말이죠.
저는 착한 오빠일까요? 동생이 제게 그렇게 먹지 말라고 하면 저는 일단 안 먹게 되더군요. 완전히 제어는 못 할지라도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게 됐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과자를 찾지 않게 되더군요.
생각해보면 이것은 오빠에 대한 간섭으로 비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기분이 나빠야 될 수도 있는 것이었죠.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여러 날 고찰해봤어요. 11살 많은 오빠에게, 이것 먹지 말라, 저것 먹지 말라 그러면 그건 너무 무례한 일이거나 과한 참견이 아닐까 하고 요. 또 오빠가 너무 미련해 보여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모르는 일이지만, 본인이 다 먹으려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근데 마지막 ‘고찰’은 절대로 아니더군요.
물론 압니다. 진심이란 말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보인다는 것을요. 동생은 나쁜 뜻으로 제게 과자를 먹지 말고, 치킨도 덜 먹으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물어보니, 오빠가 건강을 챙기기를 바라서 그런다고 하더란 말입니다. 오빠가 이런 거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고, 칼로리를 생각해서 먹으면 좋겠다고요.
누군가 중재자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입니다. 사람이란 어떤 면에서는 해이해지는 면이 있는데, 그때에 중도를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매우 고마운 일이죠. 그리고, 그런 이들의 말을 듣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먹고픈 과자나 빵이나 치킨을 먹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칼로리를 생각지 않고 막무가내로 섭취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네. 누군가의 진심이 들리면 그것을 듣는 것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진심을 아는데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 수명은 많이 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