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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Oct 03. 2023

세상을 실제로 바꾸는 건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가벼운 시도다

라스에 허경환이 초대됐을 때, 희극인실에서 난처했던 에피소드 얘기하는 걸 봤다. 갓 개그맨이 됐을 때 밥 먹다가 다리 꼰 일로 선배에게 찍혀서 앞으로 이 생활을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때 김원효가 구세주로 등장했다. 사람은 착한데 좀 개념이 없었다면서, 회의실에 들어오는데 질겅질겅 껌을 씹으면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동기들은 난감해 하고, 선배들은 황당해했다. 태도를 지적 받은 김원효는 잠시 주춤하더니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그 자리에 있는 선배와 동기들에게 껌을 하나씩 나눠줬다고 한다. 그 뒤로 권위주의적인 허례허식이 많이 완화되어 희극인실 분위기가 한결 평등하고 편안해졌다고 한다.


비록 작은 희극인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에피소드는 세상이 바뀌는 건 어떤 과정을 통해서인지,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다리를 꼬기만 해도 버릇 없는 행동으로 인식되던 사회에서 그 권위주의를 허물어 뜨리는 사람은 김원효처럼 바로 그 앞에서 그 행동에 기죽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악을 쓰며 반발하지도 않으면서, 권위주의적 지적을 기꺼이 그리고 동시에 가볍게 받아들이는 반응으로 대응한다. 자기 행동을 꺾지 않는 건 그 행동이 당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태 문화와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는 힘도 마찬가지다. 명절 때 힘든 부엌일은 여자만 하고 남자들은 티비 보면서 놀고 먹기만 하는 게 부당하다면, 그 문화를 바꾸는 건, 그 자리에서는 그 분위기에 순종하고서는 나중에 친구들이나 인터넷에 불합리한 여성차별이라고 불만 터트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또는 조금 편한 남성 친족에게 간단한 일부터 부탁하는 그런 작지만 실질적인 행동이다. 믹서기 작동이 잘 안 된다면서 남자들에게 녹부를 갈아달라고 부탁한다는가 하는 식의, 기계 고치고 만지는 것에 프라이드 갖는 남자 심리를 이용한다든지와 같은 일에서 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다른 정치/사회적인 변화도 전부 같은 원리다. 칼럼니스트나 작가 같은 글쟁이보다 피부에 부딪혔을 때 작은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 세상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건 그와 같은 '행동'이다. 글은 사실상 그런 변화가 실질적으로 일어날 때 비로서 누군가가 문자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그런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 그 용기란 그렇게 클 필요도 없다. 김원효가 그랬듯이 너무 심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개선되어야 할 지금의 구태를 받아들이는 마음에서부터 너무 심각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해도 일단 시작은, 바뀌면 좋고 안 바껴도 할 수 없다는 가볍고 경쾌한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그런 행동을 시도하기도, 상대방이 그 행동을 받아들이기도 쉽다. 


그 어떤 돌도 처음부터 무거우면 굴러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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