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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 아찔한 어른의 높이

유년의 빨간구두

by 일상 여행자

여덟 살 무렵 고모네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해외건설 현장에서 일하게 된 고모부의 부재로 고모가 남매를 데리고 친정으로 오게 된 거였다. 고모와 사촌들은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을 차지했고,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지내게 되었다.

서울 살림을 옮겨온 고모네 방에는 시골 세간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전축이라 불리던 오디오였다. 우리 집의 가전이라고는 고무줄로 친친 감은 나무토막 같은 건전지와 한 몸이 된 라디오가 유일했다. 텔레비전도 귀하던 시절에 오디오 세트는 그야말로 신문물이었다. 스피커는 우렁찬 소리를 내뿜으며 창문을 들썩였다. 바늘을 올린 레코드판에서는 우리가 듣던 노래와는 차원이 다른 음향이 흘러나왔다.

반짝이는 유리 장식장 위에는 고모부가 해외에서 돌아올 때마다 가져오신 색색의 자동차 미니어처들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고, 한쪽 벽에는 커다란 거북이 표본이 살아있는 것처럼 붙어 있었다. 변변찮은 화장대도 없던 해묵은 우리 집 장롱에 반해 고모네 가구들은 세련을 덧입은 듯 유난히 반질거렸다.

그러나 좋은 건 그냥 좋은 것일 뿐이었다. 어린 우리는 세상 물정 깜깜한 철부지였다. 유난한 깍쟁이였던 고모와의 한집살이에서 감내했던 어른들의 속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저 사촌들이랑 함께 뒹굴고 노는 게 신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고모네 방에서 마시는 코코아의 달달함에 푹 빠졌고, 두꺼운 전집으로 담을 쌓은 종이집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며 놀았다. 그 겨울 아랫목에 쌓아 올린 우리만의 성에서 짧은 하루들과 한 철을 함께 보냈다.

그중 내 마음을 홀딱 뺏은 건 고모네 방문 앞 마루턱에 놓인 하이힐이었다. 엄마의 펑퍼짐한 고무 슬리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이로 우뚝 솟아있던 하이힐은 뒤가 트인 뮬 스타일의 슬리퍼였다. 앞바닥만 4센티가 족히 되는 높이에 뒷굽은 8센티가 넘었다. 한껏 멋을 부린 디자인이었음에도 용도가 슬리퍼였던 까닭에 고모가 외출할 때면 집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호시탐탐 멋쟁이 하이힐을 신어보고 싶어 안달을 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쫄랑거리며 몰려다니는 강아지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현기증 나게 아슬아슬한 그 층계에 오를 기회가 찾아왔다.

한 발을 신발 위에 살며시 얹는 순간 몸이 기우뚱 한쪽으로 쏠렸다. 얼른 나머지 발도 마저 넣어 기울어진 균형을 맞추었다. 8센티 위로 올라온 높이만큼 시야도 넓어졌다. 그러나 마천루 같은 공중에 적응하지 못한 몸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바닥만 불안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은 발은 커다란 배에 올라탄 어설픈 노꾼 마냥 쩔쩔매고만 있을 뿐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잠시 멈춰 서서 순식간에 올라선 높이에 적응한 후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디뎠다. 허리와 엉덩이는 뒤로 빠진 채 다리를 당기면서 신발을 끌기 시작했다.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하이힐을 신고 마당을 오가는 한참의 리허설을 마치고, 자신감으로 채워진 허리를 곧추세웠다. 어른들이 하듯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본격적인 워킹 흉내 내기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내 걸음에서 나오는 구두 소리는 우아한 힐에서 들리던 청량한 또각임이 아니었다. 힐과 바닥이 엇갈리며 투닥이는 둔탁한 아우성만 질질 끌려 나왔다. 아무리 반복해도 무거운 하이힐은 익숙해지지 않았고 아찔한 높이는 도무지 친절할 기미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발에 맞지 않는 슬리퍼를 끌고 다니다 보니 여기저기 부딪혀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를 멋지게 뽐내줄 줄 알았던 하이힐이 족쇄처럼 느껴질 무렵 인기척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들킨 도둑마냥 우다다 달려 마루로 냅다 뛰어 올라갔다. 오래도록 마음에 고이 품고 있었던 어여쁜 슬리퍼는 마루 밑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그날 빈집에서 펼쳐진 하이힐 도전기는 아무도 모르는, 지극히 사적인 추억으로만 남았다.

세상 무겁고 불편하기만 했던 하이힐은 이후 나의 동경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가끔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기 위한 조언으로 ‘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 보라’는 격언이 나올 때면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는 사람이 되었다. 어지러운 높이며 묵직한 무게는 화려한 외양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신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의 실상이었다.

언젠가 들춰본 가족 앨범에서 그날의 하이힐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다. 질척한 마당 흙을 묻힌 채 고모의 기다란 핑크색 홈드레스 자락을 살짝 받치고 있는 높은 굽이 나막신처럼 서 있었다. 대개 유년의 물건들은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면 믿을 수 없이 작거나 초라해지는데 그 하이힐의 높이는 여전히 만만치 않아 보였고, 외양의 스타일 또한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

어릴 적 고모네 방 신문물 덕분에 나름 시야가 일찍 트였다고나 할까. 나는 또래에 비해 반짝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차분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결단코 아름답지 않았던 아찔한 하이힐에서 서둘러 내려온 뒤로 어른의 스타일을 넘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편안한 나만의 높이를 되찾아준 아찔한 하이힐은 허영의 가벼움을 깨닫게 한 유년의 빨간 구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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