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설 명절이 채 사흘도 지나지 않은 정월 초, 아우네가 상경하기도 전인 연휴 끝자락이었다. 김밥집 지인과 반가운 새해 안부를 주고받던 엄마가 갑자기 외출 채비를 하고 나섰다. 그날따라 유난스레 들뜨고 허둥지둥하시던 엄마였다.
집을 나선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정초부터 때아닌 사고로 놀란 가족들은 그나마 심각한 인명사고를 면한 데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가 수습되고 엄마는 갑자기 환자가 되어 입원하게 되셨다.
병원에서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안 본가 살림은 자연스럽게 내 몫으로 안겨졌다. 하루 세끼를 국방부 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차려드려야 하는 아버지는 라면 한 번 끓여본 적 없으시고, 설거지는 싱크대까지 빈 그릇을 가져다 놓는 것으로 아시는 옛날 사람이셨다. 여기에다 설 이후로 철석같이 못 박아 두었다는 엄마의 김밥집 아르바이트까지 메워야 할 처지가 되었다. 본가 살림에 아르바이트 대타까지 떠안게 된 나는 설 명절 때보다 더 경황없는 새해를 맞이했다.
엄마가 알바로 일하기로 한 분식집은 역 구내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이었다. 떡볶이가 메인이긴 했지만 김밥과 어묵, 튀김, 라면 등 분식의 기본 구색을 갖추고 있는 매장이었다. 김밥은 그중에서 손품이 가장 많이 드는 메뉴였다. 엄마가 이 젊은 프랜차이즈 매장의 알바로 낙점된 데에는 순전히 김밥 덕분이라고 할 만했다. 갖춰진 재료들로 신속 간단하게 조리하는 프랜차이즈 분식 메뉴 가운데 김밥만큼은 숙련된 손맛이 필요한 메뉴였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던 익숙한 분식들이지만, 프랜차이즈 특성상 정해진 조리법을 따라야 했고 낯선 것들 지천인 매장 룰을 익히느라 하루가 짧은 나날이었다. 여러 메뉴를 조리하는 중에도 하루에 몇 번의 밥을 안치고 몇십 개의 김밥을 말았다.
김밥은 기차를 타고나서는 길 위의 도시락이거나 나들이객의 간식이 되기도 하고, 거르는 끼니를 채우는 요기가 되었다. 고슬고슬 지은 밥에 참기름 간한 밥, 달걀, 햄, 맛살, 당근, 우엉, 단무지를 김으로 한데 싸서 먹는 이 절묘한 조합을 생각해 낸 사람이 샌드위치 백작만큼 대단하게 느껴졌다.
비빔밥처럼 한데 뒤섞이지 않고 재료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 독립성, 그러면서도 각 재료 최상의 어우러짐을 보여주는 김밥은 새삼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매일 같은 재료와 같은 손으로 싸는 김밥인데도 내 손으로 느끼는 맛은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밥이었다. 주문하는 손님에 따라 내 마음이 손에 담기는 그런 기분이랄까. 배고픈 이들을 맞이하면서 내 배가 부르면 안 될 것 같다는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밥을 거르고 출근하기도 했다.
내가 분식집 김밥 말기에 익숙해져 가는 동안 아버지는 딸의 밥상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 애를 먹고 계셨다. 그렇게 엄마가 부재한 일상에 적응하기 위한 한 달의 시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숙제처럼 다가왔다. 희망찬 각오들로 세운 새해 계획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답안지를 호주머니 속에 구겨 넣고 사는 듯한 답답한 날이 김밥처럼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엄마의 어깨 수술 날짜가 잡힌 날이었다. 진단결과 예상보다 까다로운 수술이었고 가족 모두 병원에 대기 중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가 있는 마음을 붙들고 분식집에서 김밥을 말아야 했다. 그날따라 분식집은 단체 손님들로 북새통이었다. 백암온천 관광 가는 엄마 연배 나들이객들이 쏟아내는 알록달록한 웃음과 수다로 매장은 장터 인양 왁자했다. 기차여행 전 점심을 김밥으로 정한 어머니들의 김밥 주문서가 소나기처럼 쏟아졌고, 수술실의 엄마를 염려할 새도 없이 김밥 제조기가 되어 헤아릴 수도 없는 김밥을 말고 또 말아냈다. 마치 무지개 같은 김밥을 다리 삼아 어두운 시간을 함께 건너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식구들의 식사와 손님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두 달여를 보내는 동안 엄마도 빠르게 회복되어 마침내 퇴원하는 날이었다. 바깥은 벚꽃이 한창이었고 계절은 이미 봄의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었다.
“엄마, 천 년 만 년 살 것 같지, 꽃이 내내 피어 있을 것 같지? 이런 날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오늘 가요, 꽃구경. 우리 김밥 싸서 소풍 가자.”
입원하는 동안 요양원 예행 연습한 것 같다 시는 엄마는 바깥바람 쐬자는 청을 예전처럼 마다하지 않으셨다. 정초부터 극적인 하루와 지난한 여러 달을 보낸 우리는 이제 더는 오늘을 내일로 미루지 않게 되었다. 매일 주어지는 소풍 같은 삶을 꽃처럼 봄처럼 소중하게 맞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