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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타협의 맛

갱시기죽

by 일상 여행자

그 시절에 드물게 할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만 하셨단다. 이모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음식을 비롯해 살림은 당신 몫이었고, 할머니는 글만 배우고 집안일과 무관하게 지내다 시집을 오셨단다. 서툰 할머니의 살림 솜씨는 집안의 타박감으로 오르내리다가 층층이 시집에서 눈 밖에 나버렸다고 한다. 대신 남달리 꼼꼼하고 눈썰미가 뛰어난 할아버지께서 김장을 담고 자잘한 집안일까지 챙기셨다고 한다.

입원하신 할아버지 간병으로 부모님께서 경황없이 병원을 오가시던 열 살 무렵. 정확하게는 잊히지도 않는 가을 소풍 때였다. 엄마가 할아버지의 중환자실을 오가는 동안 할머니께서 우리의 소풍 김밥을 싸게 되셨다.

내가 엄마 너머에서 꿴 김밥 재료를 대충 사 오고, 할머니께서 익숙한 듯 솜씨를 발휘하실 참이었다. 그런데 “나도 다 안다”시며 싸시는 할머니의 김밥이 영 미덥지 않아 보였다. 내가 알던 김밥 모양이 아니었다. 댕강댕강 손가락만 한 짧은 길이로 썰리는 김밥이 충무김밥의 크기에다 일반 김밥의 형태 사이 어딘가쯤에 속하는 울퉁불퉁한 주먹밥 같았다. 여태 내가 알아 온 김밥의 세계를 완전히 이탈한 새로운 광활함이었다!!

갑자기 사라진 부모 그늘도 휑뎅그렁한데 나름 나의 자부심이던 꽃밭 같은 엄마 김밥을 대신하는, 번지수도 모르겠는 얼렁뚱땅한 할머니의 김밥은 난감과 당황 그 자체였다. 여태 본 적도 없는 이상한 김밥을 싸서 가는 가을 소풍이 어찌나 내키지 않던지 소풍날 비만 잔뜩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심술이 날 정도였다(그해 가을 소풍날엔 진짜 비가 억수로 왔다).

이후에도 할머니는 결코 통일된 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를 한 데 쏟아부은 음식들을 종종 만들어주셨다. 가령 갈치조림과 김치찌개가 섞인, 된장찌개와 호박무침이 조려진, 우리가 보기에는 영락없는 잡탕 같아 보였건만 할아버지께서는 익숙하신 듯 무척이나 맛있게 잡수셨다.

그러나 음식 솜씨가 결코 뛰어나지 못하셨던 할머니의 음식 중에도 손꼽히는 맛있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일주일 동안 할머니네 장방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설탕 누룽지와 커다란 구름빵 같았던 폭신폭신한 술빵. 손주를 애지중지한 할머니의 애정과 마음이 담긴 간식들이었다. 그리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와 고모들에게서 말로만 듣던 커다란 홍두깨로 직접 밀어 만든 할머니의 손칼국수가 있었다. 모두 당시만 해도 귀했던 밀가루로 만든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셨다. 정확하게는 국수를 유난히 좋아하셨다. 저녁밥이 어정쩡하게 모자라거나 찬이 마땅치 않을 때면 엄마는 제안하셨다. “국수 먹을까, 라면 먹을래?” 열 번을 물어도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라면이었다. 라면 바라기였던 우리 못지않게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일편단심 국수를 애호하셨다. 그러면 엄마는 팽팽한 두 진영을 적당히 타협한 라면 국물에다 김치와 국수를 넣어 갱시기죽 같은 대접을 안겨주셨다.

라면도 아니고 국수도 아닌 예의 그 할머니 잡탕 같은 슬픈 국물. 이도 저도 아닌 짬뽕이 되어버린 ‘라면김치국수’는 모두의 욕구를 절반만 충족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린 적당하지 않은 타협이었다

이후 나는 경상도 사람들의 소울 푸드라는 갱시기 죽은 물론이고 한데 뒤섞는 비빔밥도 한동안 내켜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할머니의 잡탕 찌개에 깃든 사연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팔 남매 대가족의 끼니를 챙겨야 하는 할머니께서 식구들의 음식 취향을 고려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고, 그나마 삼시 세끼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시절에 맛과 모양을 추구하는 건 진정 사치였을 거라는 헤아림이 요리라는 걸 해보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커다란 술빵을 한솥 가득 쪄내도 금방 동이 나고, 감자 한 소쿠리는 그야말로 배를 채우기보다는 한 입 요기밖에 안 되었을 테였다. 그러니 남은 된장 시래기 국물에 몇 마리의 생선이 뛰어들기도 하고, 널린 푸성귀가 닥치는 대로 들어간 잡탕이 탄생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어림짐작.

그럼에도 넉넉지 못한 시절의 시대상을 반영한, 나의 이해를 가장한 너른 아량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창의적인(?) 음식은 역시 부족한 당신의 솜씨 탓이라고밖에 할 수 없음이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굳이 공개적인 흉을 보고 있는 손주의 되바라진 입바름을 어여삐 여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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