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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Nov 24. 2020

10. 엄마, 나 배가 너무 아파

또다시 무너진 주말

 오랫동안 폭식증을 겪으면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에 벅차 내 몸이 얼마나 망가져가고 있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단시간에 엄청난 음식을 밀어 넣음으로써 소화기관에 큰 부담을 줬고 수없이 이 행위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 몸은 철저하게 혹사당했다.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법이다. 폭식증 자가치료의 둘째 주, 정상적인 식사로 무난한 평일을 보내고 본가로 돌아간 주말이었다. 토요일 나는 갑작스러운 복통을 겪으며 그간의 폭식으로 내 몸이 얼마나 약해져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다음은 그 날의 아찔했던 기록이다.




 2018.4.7 토


 어제부터 먹으려고 벼르고 있던 빵들을 일어나자마자 모두 꺼냈다. 가위로 큼직큼직하게 잘라서 맛있게 먹었다. 크림이 듬뿍 든 빵들을 정신없이 먹을 때는 몰랐는데 다 먹고 나니 조금 느글거리긴 했다. 아침이라 그랬나 보다. 점심에는 아는 집사님이 햄버거를 사주셔서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상하이 치킨버거랑 평소 안 먹던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사주셔서 깨끗하게 남김없이 다 먹었다. 배가 불러 좋았지만 시간이 없어 급하게 먹었더니 속에 조금 가스가 찬 기분이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먹는 햄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오후 3시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는 동생 공부를 봐주러 그 친구 집에 가서 과외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배가 당기더니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전에도 배변활동이 잘 안될 때나 폭식으로 속이 안 좋을 때 가끔 이런 적이 있었다. 2~3번 정도 배가 아파 집에서 쓰러졌던 것이 기억났다. 집이 아닌 곳에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화장실을 잠시 빌려 들어간 뒤 배를 쥐고 들어앉았다. 남의 집에서 추한 모습 보이기 싫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힘겹게 목소리를 내 겨우 뱉어냈다. "엄마 나 배가 너무 아파. 병원 가야 될 것 같아." 엄마는 놀라 "괜찮아? 지금 나올래?"라고 말씀하셨다. 과외 중이어서 내가 그만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엄마에게 일단 참아보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3분 정도 쓰러질 것처럼 아프던 배가 조금씩 진정되어 1시간 남은 과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무서웠고 내 장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많이 아프고 약해져 있었구나.




 폭식증은 몸과 마음을 끝없이 고갈시킨다. 장기간 겪으며 몸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쌓여간다. 감히 그 모든 식이장애 환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지만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몸과 마음의 상처들에 위로를 건넨다. 비제거형 폭식증 환자인 나의 경우에는 다행히 토를 하지는 않았다. 워낙 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는 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다. 제거형 폭식증의 경우에는 구토로 인한 치아 부식과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고통 역시 뒤따른다고 한다.


 토요일의 갑작스러운 복통 속에 과외를 겨우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고 울었다. 내 몸이 너무 불쌍해서, 이렇게 아프게 만든 게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너무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다. 울고 나면 속이 좀 편해진다던데 우울한 감정만 더해지는 듯했다. 몸이 약할 때 마음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니까. 영영 폭식증을 치료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웠고 '내 몸이 어디까지 더 망가져야 이 모든 게 끝날까? 그때까지 내 몸이 버텨줄까?'라는 비관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약해진 마음과 우울한 감정은 또 음식에 대한 집착과 폭식으로 이어졌다. 정상적인 식사를 연습하며 즐거웠던 평일과 다르게 본가로 내려온 주말,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무언가를 계속 입에 넣어야만 이 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은 다시 무너진 주말의 남은 기록이다.




 2018.4.8 일


 9:00 아침밥으로 계란, 맛살, 단무지, 시금치 등등 색색 재료가 듬뿍 든 김밥 한 줄. 급히 먹어치웠다. 배가 불렀다.


 11:15 간식으로 술떡 3개, 요구르트, 삶은 계란 1개를 먹었다. 다 맛있었지만 아침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먹어서 조금 부대꼈다(사실 속이 부대낀 진짜 이유는 어제저녁의 폭식일 테지만).


 13:00 엄마가 싸주신 유부초밥과 손바닥만 한 주먹밥을 2~3개 먹었다. 후식으로 자색 고구마칩과 달콤한 단호박 칩을 2 봉지 몽땅 다 먹었다. 튀겨서 설탕 코팅을 한 것이라 2 봉지를 먹고 나니 조금 과하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00 아몬드가 콕콕 박힌 사탕 9개와 킨더 초콜릿 6개, 바닐라맛 웨하스 한 봉. 엄마가 옆에서 말려주신 덕분에 이 정도에서 끝낼 수 있었다. 달콤한 간식이 눈앞에 보이니 주체할 수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계속 먹었다. 이때부터는 '에이 모르겠다. 오늘 망했어.'라는 생각으로 달달한 주전부리를 계속 찾았다.


 17:30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자색 고구마칩 1 봉지, 단호박 칩 1 봉지를 또 모두 다 먹어버렸다. 오늘 그러니까 이 과자만 총 4 봉지를 먹은 셈이다. 엄마가 기숙사에 가서 먹으라고 따로 챙겨두셨던 것이었는데. 다 먹고 너무 후회스러웠다. 배가 정말 불렀다. 뽕 튀어나온 배에 계속 힘을 주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요즘 살 많이 쪘지?" 너무 많이 먹은 느낌이었다. 속이 달아 울렁거렸다.


 18:20 저녁으로 본죽에서 야채죽을 한 그릇 사서 엄마랑 반씩 나눠 먹었다. 과자 말고 밥이 들어가니 속은 조금 편했다. 하지만 그동안 먹은 것들 때문에 배가 너무 불렀다.


 19:00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기 직전이었다. 동생이 저녁을 못 먹어서 중국집에 가기로 했다. 이미 죽을 먹은 엄마와 나는 탕수육을 시켜 몇 조각 먹고 남은 것은 포장해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배가 터질 듯이 불렀는데도 탕수육이 나오자 또 정신없이 먹어 댔다. 빈그릇을 봐야지만 다 먹은 듯한 포만감이 들었다. 음식을 적당히 먹고 남기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동생이 시킨 짬뽕밥도 몇 숟갈 빼앗아 먹고 남은 탕수육도 모두 해치웠다. 이상하게도 배는 너무 부른데 무언가를 먹을수록 더 먹고 싶었다.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은 계속 무언가를 갈구했다. 탕수육을 다 먹고 나니 이제는 단 초콜릿과 빵, 젤리,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 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졸랐다. 엄마는 이제 정말 그만 먹으라고 하셨다.


 19:20 집에 가서 결국 딸기잼을 엄마 몰래 한 숟가락 떠먹었다. 집에 있는 초콜릿바와 초코파이가 미친 듯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한테 걸려서 못 먹었다. 그렇게 먹고도 엄마가 아니었으면 한바탕 폭식했을 것이 분명했다


 20:30 기차역에 도착했다. 배는 터질 것 같은데 눈 앞에 보이는 맛있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근대골목 단팥빵, 파리바게트, 앤티앤스 프레즐. 꾹꾹 폭식하고픈 마음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먹으면 어깨도 저리고 속이 안 좋을 거라는 것을 분명 아는데 나는 항상 왜 이럴까?


 22:16 오늘 먹은 것을 이렇게 적어보며 돌아보는 하루. 기차 안이다. 이제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다. 이대로 더 이상 먹지 않고 오늘은 잘 수 있을 것 같다. 이만하면 됐어. 더 이상 먹지 않으면 괜찮아. 스스로를 억지로 다독였다. 오는 일주일은 잘 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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