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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Nov 29. 2020

11. 계속 먹는 사람

음식 외의 관심거리 찾기

 폭식증이 심할 때는 무언가를 계속 입에 넣고 씹지 않으면 불안했다. 음식을 달고 살았고 '먹는 행위'를 멈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떤 걱정이나 불안감이 들 때 음식에 대한 집착은 더 커졌다. 나는 단 몇 시간이라도 먹는 것 말고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많은 폭식증 환자들이 어떤 이유에서 생긴 결핍과 그로 인한 욕구를 음식으로 채운다. 잘못된 습관임을 알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을 때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먹는 행위를 그만 두기 어렵다. 물론 사람마다 그 결핍과 욕구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불만을 느끼고 힘든 이유인 본질적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고 문제를 안다고 해도 해결이 어려우면 음식으로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려는 충동이 찾아오기 일쑤다. 내가 겪는 문제를 파악하고, 그로 인한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음식 외의 대안책을 찾아보자. 음식 외의 관심거리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음식이 아닌 해결책을 찾아보자. 나는 음식을 생각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리적으로 힘들 때 반사적으로 음식을 찾는 대신에 다른 것들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운동이었다.


 첫 번째 대안: 운동하기

 

 2018.4.2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의 거의 전부였다. 뭔가 몸을 움직여 활동량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컸다. 큰 맘먹고 헬스장을 한 달 끊었다. 꾸준히 내가 운동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폭식증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졌다.


 헬스를 시작한 첫날, 의욕 만땅으로 아침부터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러닝머신을 25분 정도 뛰고, 자전거처럼 생긴 기구에 앉아 페달을 돌리는 다리 운동을 15분 정도 했다. 윗몸일으키기도 20번 정도 했다. 정말 20번 했는데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저질체력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앞으로 건강을 위해 체력을 기르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아침운동으로 첫날을 시작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니 조금 피곤했다. 배고픔도 컸다. 공복 운동을 해서 그런 것 같아 했다. 결국 이 날 운동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 어제 산 호밀식빵 한 봉지(10조각)와 딸기잼 반통을 몽땅 비웠다. 오트밀도 몇 그릇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실망스러웠고, 어제 식빵을 사 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절대 다시 식빵처럼 많은 양의 빵을 한 번에 사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나는 작은 유혹에도 너무 약했다. 폭식을 하니 우울해졌다. 오늘 그래도 아침에 운동했으니까 조금 나을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 아, 헬스장에 가서 정말 거의 3개월 만에 몸무게를 재봤다. 약 5kg이 쪄있었다. 요즘 쪘다고 생각은 했는데 직접 숫자로 보니 충격이었다. 나 괜찮을까? 그렇게 그동안 먹어댔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체중계를 보니 슬펐다.)



2018.4.12


 운동을 시작한 지 거의 열흘 째다. 오늘이 주말과 금요일을 빼고 정확히 8일째다. 운동을 하지만 여전히 몸무게는 그대로고, 폭식하는 습관도 여전하다. 하지만 분명 달라짐을 느낀다. 사실 어제도 평소보다는 덜하지만 폭식을 했다. 오후 5시쯤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남겨놓았던 가나 초콜릿을 허겁지겁 다 먹었다. 사탕 몇 개를 연이어 깨물어 먹어대다가 제대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곡밥과 햄 김치볶음, 멸치볶음, 김, 약고추장으로 든든히 먹고 나니 배는 불렀지만 단 것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곧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옷장에 고이 넣어둔 커다란 쿠키 2 봉지를 먹고, 6~7 숟갈 딸기잼을 마구 퍼먹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먹어치운 후 후회했다.


 여전히 단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고, 더 먹고 싶어 불안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슈퍼로 달려가 빵, 과자, 요구르트, 젤리까지 4~5가지를 한 봉지 가득 사 와서 몽땅 먹어치웠을 상황이었다. 물론, 결국 지갑을 쥐고 슬리퍼를 대충 신고 슈퍼로 달려간 것 같았지만 딱 하나만 더 먹고 헬스장으로 가기로 했다. 운동하면 괜찮다고, 지금까지 먹어치운 달콤한 것들 때문에 나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였다. 헬스장은 폭식을 하다가도 멈출 수 있는 정지 버튼이었다. 그릭 요구르트맛 아이스크림 콘을 사서 단숨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대로 매점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은 더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그때 운동의 장점을 2가지 깨달았다.


 첫째는, 운동이 폭식이 더 심각한 상태로 가기 전에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나는 과자와 빵 몇 봉지를 먹어치우고 나면 또 폭식했다는 생각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곧 이전에 먹었던 것의 3~4배가 되는 양을 다시 먹어치우는 끝없는 식탐의 뫼비우스 띠를 걸었다. 하지만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폭식을 해도 조금이나마 무마하고 돌이킬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을 주었다. 뭐,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라는 마음이랄까. 덕분에 폭식을 하고 받았던 스트레스를 음식이 아닌 방법으로 풀 수 있었다.


 둘째는, 체력이 붙으며 일상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폭식은 일상생활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퉁퉁 부은 얼굴과 찌뿌둥한 얼굴로 아침마다 일어나, 어제의 폭식으로 쓰린 속에 우울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운동을 시작하며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저질체력이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윗몸일으키기를 고작 10번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조금씩 늘리다 보니 이제는 20번씩 2세트를 가뿐히 해낸다. 뿌듯했다. 윗몸일으키기 할 때마다 끊어질 듯 아팠던 배도 이제 제법 단단해진 듯하다. 운동하면 더 피곤할 줄 알았는데 개운함을 요즘 느낀다. 무엇보다 붓기 없이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하며 시작하는 하루는 정말 상쾌하다. 여전히 아침잠이 많아 아침운동은 아주 가끔 하지만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습관을 들여볼 생각이다.


아, 그래서 오늘 8일째 역시 운동을 했다. 오늘 먹은 것은 이러하다.
AM 8:30 검은콩이 듬뿍 든 콩밥 한 덩이, 김치 햄볶음, 멸치 볶음, 구운 김
 -저녁에 폭식하지 않고 자서 아침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조금 남은 밥을 점심때 먹으려고 김밥을 싸서 락앤락 통에 담았다


AM 11:20 싸온 김밥 1줄
-아침을 먹었는데도 곧 배고파져서 싸온 김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조금 양이 부족했다.


PM 1:20 벚꽃 체리맛 단팥빵
 -배고픔을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결국 무언가를 사 먹기로 했다. 컵라면, 삼각김밥, 젤리, 약과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래도 절제하자는 마음으로 빵 하나만 골랐다. 신상으로 나온 단팥빵이었는데 달콤하고 맛있었다. 390칼로리이었다. 빵을 먹고 나니 우유도 먹고 싶고 젤리도 먹고 싶고, 과자도 먹고 싶었지만 꼭 참았다. 여기서 터지면 멈추지 못할 것 같았다.


PM 5:00 레몬크림이 든 비스킷 1개


PM 7:30 밥 약속이 있어서 일식집에서 삼색 야끼도리 덮밥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간장 양념에 달콤하게 조려낸 닭고기, 탱글탱글한 빨간색 양갱 같은 젤리, 생선 튀김, 청경채, 연어 크림치즈 샐러드 등 갖가지 요리가 한데 나오는 세트 요리였다. 맛있게 먹었다. 꽤 배가 불렀다.


PM 9:00 밥을 먹고 후식을 먹으러 스타벅스로 갔다. 아까 꽤 많이 먹은 데다가 살이 요즘 많이 찐지라 아메리카노처럼 칼로리가 거의 없는 것을 먹을까? 정말 먹고 싶은 달콤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실까? 고민했다.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먹기로 했다. 딸기 요구르트 블렌디드를 시켰다. 부드러운 우유와 요구르트 살얼음에 달콤한 딸기잼이 섞여 너무 맛있었다. 정말 배가 불렀다. 더 먹으면 조금 불쾌할 것 같지만 딱 지금까진 기분 좋은 배부름이었다.


이렇게 먹고 기숙사로 가는 길, 헬스장에 들러 1시간 정도 가볍게 운동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도 조금 허전하고 심심한 마음에 매점에 가서 빵과 아이스크림을 세트로 꼭 먹곤 했다. 그런데 운동을 한 덕분인지 그런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는 시간 속에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참 좋다 생각했다. 운동을 마치고 시원한 파인애플 식초 한잔과 가루로 된 유산균을 1포 먹었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배부름이었다.

 

 운동은 생각보다 좋은 대안책이었다. 몸을 쓰면서 땀을 흘리니 걱정과 스트레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도 심리적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변화하는 스스로에 만족하며 나는 계속해 음식 외의 대안책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절실히 먹는 행위 외의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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