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시간은 지옥이었다
식이장애를 겪는 동안 내게는 '잠을 자는 시간'이 유일하게 무언가를 먹지 않는 시간이었다. 깨어있을 때는 계속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었다. 오후 1시쯤 폭식이 터지면 5시까지 죽은 듯 침대에 누워있었다. 속도 안 좋고 볼록 튀어나온 배에 앉아있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게 우울감과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유튜브를 보다 저녁이 돼서야 정신을 겨우 차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1-2시간쯤 다른 일들을 하다가도 다시 편의점으로 달려가 2차 폭식을 할 때가 많았다. 먹는 것 외의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어느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 내게 깨어있는 시간, 또다시 주어진 하루는 저주였다. 깨어있는 16시간 남짓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하루가 6시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생각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는 꺾인 지 오래였고 '이 비생산적인 폭식을 그만두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했다. 음식 외의 집중할 대상을 모색하며 시작한 첫 번째 대안이 '운동하기'였다. 시간을 그저 흘려버리기 위해 그때의 나는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두 번째 대안: 잠자기
깨어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잠을 잤다. 최대한 늦게 일어나기 위해 새벽까지 버티다 침대에 누웠다. 새벽 5시쯤 침대에 누웠고 오후 3시쯤 일어났다. 무기력한 감정이 들거나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시작하는 하루가 짧게 느껴져서 좋았다. 통제할 수 없는 나를 영원히 잠재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대안은 오래가지 못했고 궁극적인 해결책도 되어주지 못했다. 엉망이 된 수면 패턴 속에 뒤따르는 피로감과 새벽에 깨어있는 습관이 굳어지자 '새벽 폭식'이 시작되었다. 신체리듬이 뒤엉키고 겨우 붙잡고 있던 학교생활이 망가지기 직전이 돼서야 나는 삶을 저주하며 잠드는 일을 그만뒀다.
세 번째 대안: 넷플릭스와 유튜브
폭식으로 하루를 망치고 나면 그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간고사 전날 밤에 폭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험 당일 새벽 2시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ppt 자료를 보다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폭식증을 해결하기 전까지 인생에서 '생산성'을 논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시간을 때웠다. 하루에 8-9시간을 내리 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시간을 '버렸다'. 비생산적이고 더없이 잉여로운 생활임에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드라마 보는 동안은 폭식을 하지 않았으니까. 점심을 먹고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가 시계를 보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순삭 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폭식하지 않고 음식 외의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안도했다. 나중에는 거의 대부분의 넷플릭스 콘텐츠를 다 봐서 더 볼만 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비생산적인 하루에 안도하며 시간을 버리는 것에 만족했다.
네 번째 대안: 집 밖으로 탈출하기
집, 그러니까 정확히 기숙사를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활동적인 성격이 아닌 나는 남들과 시간을 보낼 때 에너지를 빼앗기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충전하는 전형적인 '집순이'였다. 그래서 수업이 없을 때는 기숙사에 항상 머물러 있었고 단조롭고 편안한 그곳에서 끊임없이 지루함과 외로움을 달래려 무언가를 먹었다. 가장 많이 폭식이 터졌던 공간이 기숙사였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몇 시간이라도 벗어나 생활에 활력을 얻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환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산책을 하러 기숙사 앞 공원을 걷기도 했고 근처 카페를 가는 둥으로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날은 삼성역에 혼자 가서 쇼핑을 하고 책을 구경하기도 했다. 예쁜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와 스콘을 먹는 즐거움, 예쁜 옷을 입어보는 기쁨, 걸으며 바람을 느끼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는 행복함은 폭식이 낳은 우울감을 잠시나마 지워주었다. 침체된 감정에 빠져 영원히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고 느꼈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다섯 번째 대안: 인터넷 강의 듣기
넷플릭스를 너무 많이 봐서 더는 볼 것이 없었을 때 나는 인터넷 강의를 하나 신청한다. 전부터 관심이 갔던 진로와 관련된 인강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넷플릭스에서 더 이상 볼만한 게 없어서, 그리고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남는 묘한 허탈함이 지겨워져서 결재한 강의였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강의를 하루에 6개 들었다. 물론 복습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인강을 틀어놓고 강사 선생님의 실없는 농담에 피식거리며 '하루 6개 듣기'라는 목표를 채우고 나면 스스로가 꽤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그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겼기에 이 알량한 만족이 소중했다. 그렇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생산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물론 이 대안은 딱히 추천하진 않는다. 그 목표와 생활패턴이 약간씩 어긋나면 이 알량한 만족감이 더 큰 패배감으로 찾아올 때도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계속 음식이 아닌 관심거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여전히 깨어있는 시간은 괴로울 때가 많았고 시도한 것에 겨우 붙은 관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떨어질 때가 많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길 기도하며 불안한 마음을 놓지 못했고 깨어있는 매 순간은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지만 다시 일어나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