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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Dec 08. 2020

13. 폭식증을 겪는 딸의 엄마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폭식증과 그로 인한 우울감을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미친 척 용기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상태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해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나 식이장애와 그 고통을 이해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지하는 순간 마음의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에 들지만 그때는 그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순모임 시간에 한 주간 있었던 일을 나누는 삶 나눔이라는 것을 하는데 나는 우울함과 폭식으로 채운 일주일밖에 말할 것이 없었다. 괜찮은 척 꾸며낸 일주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에 지친 어느 날 용기 내 털어놓은 이야기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는 누구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들도 한 주는 나의 푸념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눌 것이 부정적인 감정 밖에 없는 나의 폭식증은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속되었고 그들도 결국엔 지쳤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교회를 나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폭식증을 끝까지 숨겼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지금까지 잘 이어지지만 솔직히 털어놓은 이들과는 종종 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가족도 나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겪어보지 않은 이상 이것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내가 폭식증을 겪지 않았다면 식이장애 환자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줄 사람인 엄마도 나의 식이장애와 우울증을 이해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엄마를 이해했기에 원망할 수 없었지만 너무 외로웠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긴 시간이 걸려 엄마로부터 이해를 받을 수 있었을 때 당연하지 않은 사랑임을 알아 감사했다. 폭식증 초반에 엄마는 일종의 '충격요법'을 통해 개선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셔서 '네 의지를 통해 노력해.'라며 꾸중하시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먹는 것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인데 엄마까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고 화를 냈다. '엄마 때문에 내가 더 폭식하는 거야'라는 말로 논리 없는 원망을 뱉어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로웠고 속상했다. 끝없는 우울함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많이 먹었다. 먹고 나면 기분은 더 끔찍해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저녁마다 모두 먹어치운 후 엄마에게 힘든 감정을 토해냈다. 여러 번 울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정말 병원 가고 싶다고, 나 내가 너무 싫다고, 제발 정상적으로 먹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엄마도 그 시간에 나와 같이 많이 아팠구나라고. 매일 죽겠다고, 속이 쓰리다고 징징거리는 딸을 둔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가끔은 엄마도 지치고, 답답함에 한 소리할 때도 있었겠지. 그리고 나는 가끔 엄마가 모진 말을 뱉어낸 순간만을 잘라내 가슴에 새겼다.


 폭식증을 겪는 딸을 둔 우리 엄마는 그랬다. 폭식할 때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저리는 내 손과 발을 힘껏 10분이고, 20분이고 주물러줬다. 집에서 폭식을 많이 하자 기분전환을 위해 카페에 데려가거나 산책을 하자며 이끄셨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면 나아질까'라는 생각에 갖고 싶다고 조른 화장품을 십만 원 넘게 사주셨다. 매일 달고 먹던 빵 대신 먹을 건강한 간식으로 견과류, 즙, 고구마 말랭이, 쌀강정 등을 사주셨다(나중에는 이 음식들로도 폭식할 때가 많아 결국 그만두시지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끼니는 제대로 먹는지 항상 전화하신다. 폭식으로 손이 항상 저린 나를 위해 손지압 도구를 사주셨다. 소화에 좋다는 말에 파인애플 식초를 직접 담가주셨다. 조금 지나고 나서 안 사실인데 유튜브에 폭식증에 대해 검색해 이것저것 찾아보신 모양이다. 기숙사에서 든든히 잘 챙겨 먹으라고 매주 잡곡밥과 갖가지 맛난 반찬을 포장해 서울 가는 기찻길에 실어주셨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왜 절제하지 못하냐고 내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폭식해서 상한 마음을 토해낼 때도 괜찮다고 말해주신다. 그리고 내일은 더 잘 조절해서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주신다.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딸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폭식증을 이해해준 엄마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 이해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나 기댈 사람은 필요하니까. 나는 나의 감정과 상태를 솔직히 털어놓을 누군가를 그때 간절히 찾고 있었고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엄마는 내 곁을 항상 지키고 있었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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