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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Dec 09. 2020

15. 8가지 규칙과 시행착오

정해진 시간에 꼭 밥 챙겨 먹기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나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폭식증을 고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도들을 해왔다. 그 어느 것 하나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었다. 폭식을 멈추기 위해 스스로 정한 8가지 규칙 역시 실수와 실패를 거쳐 보완되고 다듬어졌다. 나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이유는 몇 번의 실수에 다시 일어서기를 영영 포기하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함이다.


 2018. 4. 22. 일


 며칠 새 조금씩 나아지나 싶더니 여전히 잘못된 식습관은 버리기 어려웠다.  먹기 싫어서, 혹은 지난밤의 폭식을 무마해볼 요량으로 걸렀던 끼니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기계적으로 정해진 식사시간에 꼭 밥 먹기. 이것부터 시작이다. 이를 위해 스스로 8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1. 아침식사는 am 7~9시 사이, 점심 식사는 pm1~2 시 사이, 저녁 식사는 pm 7~8시로 정하고 꼭 지키기.
 2. 삼시 세끼 모두 빵, 국수 등 밀가루 음식들로 때울 때가 많았는데,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밥 먹기.
 3. 간식을 먹어서 배가 부르면 밥을 잘 안 먹게 되니까 식사 사이에 다른 음식들은 먹지 않기.
 4. 하루 전날 내일 먹을 것을 직접 노트에 적어 계획을 세우기
 5. 식사는 최소 20분 이상,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꼭꼭 씹어서 먹기.
 6. 음식을 먹기 전에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서 얼마나, 어떻게 먹을 것인지 묻고 합의하기.
 7. 예쁘게 먹는다고 나를 칭찬해주기.
 8.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기도 꼭 하기.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절제력을 하나님께 꼭 구하기


 이렇게 나름의 8가지 규칙을 정하고 의지를 다잡았다.


 2018.4.23. 월
 

 전날 8가지 규칙과 계획을 세웠지만 오늘 저녁이 되자 또 무너졌다. 건강한 간식을 먹겠다고 주문한 다이어트 시리얼을 어제 몇 봉지나 먹어 치웠는지 모른다. 우울했다. 나는 절대 바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에도 다시 무너졌다. 하지만 다음날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고 또다시 시작했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처음에는 몇 주가 걸렸다. 넘어진 자리에서 흙을 털고 일어서는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희망을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다시 일어서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게 된다.

 

 2018.4.24. 화

 

 늘 폭식한 다음 날은 많이 먹어서 좋지 않은 속 때문에 아침을 거르고 뒤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공복을 유지하다 저녁에 폭식이 터졌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도돌이표 같은 폭식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식사가 내키지 않더라도 기계적으로 먹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쉽지 않겠지만 ‘정해진 시간에 꼭 밥 챙겨 먹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에 만든 8가지 규칙에 조금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점들을 보완해서 다시 한 주를 잘 살아내 보자 생각했다.


 1. 식사 시간으로 정한 것이 포괄적이고 두리뭉실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식사가 미뤄질 수 있다는 것', '유동적인 상황으로 갑작스러운 배고픔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것'은 내게 생각보다 큰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식사시간을 정해두기로 했다. 선으로 그린 시간들을 점으로 찍는 느낌으로 말이다. '아침 식사는 8시 30분, 점심식사는 1시 30분, 저녁식사는 7시로 딱 정하고 이를 지키기'로 수정했다. 

 2. 하루에 한 끼 이상은 밥을 꼭 먹는다는 규칙은 중요하고 필요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남기기로 했다. 폭식을 할 때 빵이나 과자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어도 밥을 먹었을 때 느끼는 편안한 포만감은 느낀 적이 없었다.
 3. '간식을 일체 먹지 않는다'는 기존에 정한 규칙 자체가 내게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규칙을 없애고 '배고프면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존 규칙에 나를 구속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건강한 음식들로 허기를 채우자는 규칙을 추가했다. 빵, 과자, 아이스크림 대신 두유, 계란, 고구마, 옥수수 등 건강한 간식 선택하려고 노력하기. 살펴보니 편의점에 은근 건강한 간식들이 많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조금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폭식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돈을 막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4. 무엇을 먹을지 하루 전에 미리 계획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에 강박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획과 다른 상황에도 당황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보다 스스로를 믿고 유동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오늘도 처음 계획한 식단과는 달랐지만 적절하게 조절한 덕분에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늘 원래 계획한 식단은 이러했다.

 아침-양배추즙 1팩/점심-소시지볶음과 잡곡밥/저녁-컵라면과 김밥


 그리고 실제로 먹은 식단은 이러했다.
 아침-양배추즙만 먹으니 배가 고파서 무첨가 두유와 식사대용 시리얼도 먹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점심-일이 생겨 학식을 먹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유와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야채가 듬뿍 든 샌드위치라서 식감이 좋았다. 배부르게 먹고 단 음식을 추가로 찾지 않았다. 포만감도 충분히 느껴졌다.
 저녁-어쩌다 보니 두 끼를 밥이 아닌 것으로 먹게 되어서 저녁은 꼭 밥을 챙겨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컵반 부대찌개와 핫바를 편의점에서 사 먹었다. 컵반이 생각했던 것보다 짜고, 양이 적었다. 그래서 아몬드 브리즈 1팩도 사 먹었다. 조금 밍밍한 듯했지만 건강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몸에 쌓인 나트륨을 배출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제 때 챙기려고 노력한 덕분이었을까? 오래간만에 폭식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 것이 감격스러웠다.
 

 5. 최소 20분은 음식을 씹자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조금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만뒀다. 그냥 맛있게 먹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되 규칙을 처음 만들 때 의도한 바와 같이 조급하게 먹지만 말자라고 규칙을 수정했다.
 6. 단 것을 먹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충동이 들 때 나와 충분히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생각했다.
 7. 귀찮아서 잘 지켜지지 않았던 규칙이다. 그래도 예쁘게 잘 먹었다고 거울 보고 꼭 얘기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바닥난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하기 위해 잘 지켜보자고 의지를 다졌다.
 8. 아침식사 때 자주 식사 기도하는 것을 까먹는 것 같다. 끼니때마다 잊기 쉬운 기도를 기억하고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주심에 감사하고 늘 절제력을 구하기. 나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기억하기


 수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그 다음 날도 정상적으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폭식 없이 마무리하는 하루가 참 좋았고 행복했다.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식이장애를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무너지는 순간이 또다시 찾아오겠지만 실패를 바탕으로 나의 방법들을 수정하고 고쳐나가기로 다짐했다. 내가 문제이고 고칠 수 없는 인간인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법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이를 수정함으로써 분명 나는 나아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자고 노트에 힘주어 또박또박 적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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